'부켈레·밀레이 모델' 순항에 잇달아 우향우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정치적 펜듈럼(Pendulum:시계추) 현상을 반복해온 중남미 대륙이 오른쪽으로 돌아서고 있다. 거센 '블루 타이드'(우파 집권 물결)가 감지된다. 검표를 남긴 콜롬비아 대선에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지한 우파 후보가 사실상 당선을 확정했다. 다음 달 중순 결과가 나올 페루 대선 결선투표에서도 우파 후보 당선이 유력하다. 두 나라 모두 좌에서 우로 정권 교체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전후로 중남미는 역내 강국 아르헨티나를 위시해 칠레, 코스타리카, 볼리비아, 파라과이, 에콰도르, 온두라스 등에서 우파 정권이 속속 들어섰다.

이제 중남미에서 정상적 선거 절차로 집권한 좌파 정권은 브라질, 멕시코, 우루과이만 남았다. 권위주의 좌파 독재국가인 쿠바, 니카라과, 베네수엘라도 있는데, 베네수엘라는 마두로 정권이 미국에 의해 붕괴한 후 과도적 혼란기를 겪고 있다. '서반구 영향력 확대'를 천명한 트럼프 정부는 중남미의 블루 타이드 확산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다. 베네수엘라는 이미 사실상 정리했고, 쿠바에 대해서도 경제적 압박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런 기조로 볼 때 향후 브라질, 멕시코, 우루과이 선거에도 영향을 미치려 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중남미 민심이 오른쪽으로 기운 이유는 단순하다. 좌파 정권들의 오랜 무능과 부패로 일상의 삶이 피폐해졌기 때문이다. 국가와 정부의 첫 번째 존재 이유는 국민이 끼니를 걱정하지 않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남미 좌파 정권들은 이런 의무조차 저버렸다. 마약 밀매 조직의 횡포와 강력 범죄가 횡행하며 치안이 극도로 악화했고, 포퓰리즘 정책은 초인플레이션을 유발해 생산과 소비를 마비시켰다. 밥 한 끼 먹는 일, 출퇴근길을 범죄 걱정 없이 다니는 일조차 어려워진 나라에서 국민들은 변화를 택했다.
특히 엘살바도르와 아르헨티나 우파 정권은 중남미 우향우 현상을 견인하는 상징적인 두 축이다.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은 '갱단과 전쟁'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살인율을 보이던 '범죄 지옥'을 정상 국가로 바꿔놨다고 평가받는다. 살인율을 비롯한 강력 범죄율이 기존의 5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인권 침해 논란도 있었지만, 범죄자들로부터 무시당하던 공권력을 회복하고 가해자보다 피해자 인권을 중시하는 행보로 국민 지지를 확보했다. 중남미에선 강력한 지도자가 등장해 범죄부터 근절하는 게 최선이라는 '부켈레 모델'이 성공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아르헨티나 트럼프'로 불리는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의 무기는 경제 개혁이다. 자원 부국이자 영토 대국이라는 축복에도 못 사는 게 신기한 '상습 부도 국가' 아르헨티나의 좌파 경제정책을 폐기하고 시장주의를 밀어붙여 불가능으로 보이던 인플레이션을 잡고 재정 적자를 줄여가고 있다. 이른바 '전기톱 개혁'을 통해 취임 무렵 220%에 달하던 살인적인 물가상승률을 최근 30%대까지 끌어내리며 거시경제 안정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 같은 성과는 경제난과 물가 고통에 허덕이는 다른 중남미 국민들에게 '밀레이 모델'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었다. '작은 정부'와 과감한 긴축만이 살길이라는 확신이 전파되면서 블루 타이드는 더욱 힘을 받았다.

이데올로기는 매혹적이지만 빵을 주진 않는다. 나와 가족의 안전도 보장하지 않는다. 길게는 20년 가까이 이어진 배고픔과 불안함은 중남미 국민들이 현실적 선택을 하도록 만들었다. 치안과 민생고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 세력이 오래 못 간다는 건 역사 속에서 반복된 교훈이다. 화려했던 옛 영화를 뒤로한 채 경제, 군사, 문화 등 모든 면에서 하락세로 접어든 유럽에서도 우경화 바람이 강해지고 있다. 세계사의 조류에 촉각을 곤두세울 때다.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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