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르펜 당선 대비 사임설…차기 ECB 총재 미리 뽑으려는 노림수?
라가르드, 거취 논란에 모호한 태도…'마크롱과 차기 EU수장 경쟁' 관측도

(베를린=연합뉴스) 김계연 특파원 = 유럽 통화정책 수장인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조기 사임할지를 두고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 차기 의장에 내정됐다는 소문이 돈 데 이어 최근에는 내년 프랑스 대선에 어떤 식으로든 관여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왔다.
스위스 일간지 노이에취르허차이퉁(NZZ)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21개국)이 프랑스 대선 출마를 선언한 극우 국민연합(RN) 마린 르펜 의원을 견제하기 위해 차기 ECB 총재를 조기에 결정할 수 있다고 20일(현지시간) 내다봤다.
조기 사임설이 나오는 이유는 르펜이 당선될 경우 내년 10월 교체되는 ECB 총재 선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해 차기 총재를 미리 바꾼다는 시나리오다.
라가르드가 총재직을 내려놓고 프랑스 대선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도 그 배경 중 하나로 거론된다. 본인도 내년 4월 프랑스 대선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그는 이달 초 경제지 레제코 인터뷰에서 특정 후보를 위해 뛰거나 직접 출마할 생각이냐는 질문에 "스스로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겠다"고 모호한 대답을 내놨다. NZZ는 이를 두고 라가르드 총재가 거취에 대한 추측을 스스로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라가르드는 논란이 커지자 며칠 뒤 "어떤 직책에도 출마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르펜이 정권을 잡기 전에 라가르드가 ECB 총재에서 물러날 수 있다는 관측은 이전부터 제기돼 왔다. 지난달 프랑수아 빌르루아 드갈로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가 임기를 1년 6개월 남겨두고 사임하면서 이런 추측을 더 키웠다.
드갈로 총재 사임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내년 5월 물러나기 전 후임자를 임명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마크롱은 곧바로 엘리제궁 비서실장을 지낸 측근 에마뉘엘 물랭을 후임 총재로 임명했다.

유로존 2위 경제국인 프랑스 대통령은 ECB 총재 선임에도 막강한 권한을 가진다. 2019년 프랑스 재무장관 출신 라가르드 총재와 독일 국방장관을 지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동시 선임도 사실상 독일과 프랑스 정부 합의로 이뤄졌다.
일각에서는 라가르드 총재가 일부러 모호한 태도를 유지하며 다음 자리를 알아보는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SZ)은 "ECB 총재 이후 이탈리아 총리를 지낸 마리오 드라기의 정치적 성공이 그에게 영감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며 라가르드가 차기 EU 집행위원장으로도 언급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한술 더 떠 내년 49세로 퇴임하는 마크롱 대통령도 차기 EU 집행위원장 자리를 노린다는 설이 있다면서 라가르드의 모호한 태도가 마크롱과의 이 같은 경쟁 구도에서 비롯했을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놨다.
라가르드 총재의 임기는 내년 10월까지다. 그는 지난해 4월 WEF 창립자인 클라우스 슈바프 의장이 성추문으로 사임할 당시 차기 의장으로 내정됐다는 보도가 나왔었다. 익명의 ECB 직원은 SZ에 "임기를 채울지 우물쭈물하는 태도는 ECB에 대한 헌신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라가르드 총재가 불확실한 태도를 보이면서 차기 총재 하마평은 작년부터 나왔다. 클라스 크놋 네덜란드 중앙은행 총재, 파블로 에르난데스 데코스 전 스페인 중앙은행 총재가 오르내린다. 독일에서는 유럽 최대 경제국이면서 ECB 총재를 배출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이유로 이자벨 슈나벨 ECB 집행이사와 요아힘 나겔 분데스방크(독일 중앙은행) 총재가 물망에 오른다.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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