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에 칠레·아르헨·페루 '빙하 호수 범람' 위험 급증
페루 팔카코차 호수 등 고위험군 지정…수백만 명 식수·에너지 위협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최근 히말라야산맥에서 발생한 네팔 대홍수를 계기로 남미 안데스산맥 일대 국가들에서도 기후변화에 따른 대형 '빙하 호수 범람'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구 온난화로 안데스 빙원이 녹는 현상이 가속하면서 아르헨티나·칠레·페루 등 남미 3개국이 파괴적인 홍수와 산사태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1일(현지시간) UPI 통신과 현지 언론 등의 내용을 종합하면 최근 산악 지대의 온도가 상승하면서 빙하가 녹아내린 자리에 불안정한 호수가 대거 형성되고 있다.
이에 따라 빙하의 융해로 지반이 약해진 암석 사면이나 빙벽이 무너지며 호수를 덮칠 경우, 막대한 양의 물과 토사가 하류로 쏟아져 내리는 네팔형 '빙하호 범람 홍수' 위험이 고조되고 있다.

아르헨티나 국립과학기술연구위원회의 후안 파블로 밀라나 연구원은 현지 매체 인포바에와의 인터뷰에서 "네팔에서 일어난 비극은 이미 남미에서도 발생한 적이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2005년 아르헨티나 산후안주의 에리소스 호수가 터지면서 단 67분 만에 3천100만㎥의 물이 쏟아져 나와 250㎞ 이상을 쓸고 내려간 바 있다. 다행히 해당 지역에 사람이 거의 살지 않아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현재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의 관광 도시 엘찰텐 등 주요 지역이 토레 호수 등의 붕괴 위협에 노출된 상태다. 또한 업살라 빙하 등 거대한 빙하가 녹아내리며 형성된 호수들도 잠재적 위협이 되고 있다. 예컨대 2013년에는 수압과 온도 상승으로 업살라 빙하 부근의 얼음벽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갇혀 있던 막대한 물과 빙하 조각이 오넬리 만 해역으로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며 쓰나미급 파도를 일으키기도 했다.

2만6천개 이상의 빙하가 분포한 칠레에도 비상이 걸렸다. 칠레는 파타고니아 오지뿐 아니라, 수도권과 중부 지역의 수력발전소와 광산, 수백만 명의 식수 인프라가 안데스 수계에 의존하고 있어 빙하 붕괴 시 심각한 경제·사회적 타격이 우려된다는 점에서다.
칠레 안드레스 베요대의 다리오 오르메뇨 지질학 교수는 최근 현지 라디오 인터뷰에서 "칠레의 빙하는 히말라야에 비해 규모가 작고 표고차(해발고도 차이)가 크지 않아 네팔급 대형 참사가 일어날 가능성은 작다"면서도 "하지만 산사태 자체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실재하는 위협"이라고 진단했다.
칠레 정부 기관들은 위성 영상과 레이더 기술을 활용해 국가 빙하 데이터베이스를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며, 빙하 호수의 확장과 안데스산맥 사면의 균열을 실시간 감지하는 등 조기 경보 시스템 강화에 힘쓰고 있다.

이처럼 아르헨티나와 칠레에 경고등이 켜졌지만, 가장 급박한 위기에 직면한 곳은 페루다. 페루 국립빙하·산악생태계연구소에 따르면 페루 내 528개 호수가 범람 위험을 안고 있으며, 이 중 58개는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특히 12만명 이상이 거주하는 우아라스시 상류의 팔카코차 호수가 최대 위험 지역으로 꼽힌다. 1천700만㎥ 이상의 물을 담고 있는 이 호수에 온난화 탓에 녹은 빙하의 일부가 떨어질 경우 거대한 파도가 둑을 무너뜨려 채 1시간도 되지 않아 도심 전체를 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1941년에도 같은 호수의 범람으로 도시의 3분의 1이 파괴되고 수천 명이 사망한 역사적 전례도 있다.

이 같은 위험 속에서 남미 각국 정부는 위성 감시와 수문 센서를 동원해 조기 경보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으나, 붕괴의 속도와 규모를 감당하기에는 기존 방재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기온 상승세를 꺾지 못한다면 산악 계곡을 타고 밀려드는 기후 재앙이 남미 주요 도시의 에너지·식수망과 주민들의 생명을 지속해서 위협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밀라나 연구원은 "네팔의 비극은 남미 안데스에서도 언제든 재현될 수 있는 현실"이라며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예방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산악 계곡을 타고 밀려드는 기후 재앙이 남미 주요 도시의 에너지·식수망과 주민들의 생명을 계속해서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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