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최측은 45만명 추산…전국서 행진, 교사·학부모도 동참
시위격화에 학생 215명, 경찰관 715명 부상…총리 "폭력엔 관용 없어"
중상자 속출에 과잉진압 논란…"평범한 행동으로는 정치인들 무반응"

(런던=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운 좋게도 우리 학교는 사정이 좋은 편이에요. 하지만 수많은 학교가 그렇지 못하단 걸 알죠", "기후변화, 전쟁, 인공지능(AI)… 내가 어떤 세상에서 자라고 있는 건가 미래가 너무 두렵습니다."
프랑스 파리 마레지구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17세 학생 아델과 사크레는 6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에 이렇게 말했다. 이 학교는 부촌에 있고 교원, 시설 등이 넉넉한 편이지만, 이들은 학교 밖으로 나서 시위에 동참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지난달 중순 시작된 학생 시위가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이들의 시위는 직접적으론 교육 인프라 부족이라는 열악한 교육 여건으로 인해 촉발되긴 했으나, 근본적으론 중동 전쟁에 따른 물가 상승, 국가 재정 불안과 AI 붐이 부추긴 채권시장 불안, 정치 불안정 등 사회의 혼란상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앞으로 사회를 끌어갈 청년들이 불안하고 불투명한 미래에 분노하고 있다는 것이다.

파리 도심에서 행진에 동참한 19세 릴리아는 AFP 통신에 "젠지(Z세대)가 일어서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며 마크롱 대통령이 귀 기울여 듣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는 교육 현장의 불만을 총체적으로 수집하고 해결해 나가겠다고 약속하면서 자제를 호소했으나 시위는 커지고 격해지고 있다.
대규모 시위가 조직된 6일에는 수도 파리뿐 아니라 마르세유, 리옹, 릴, 낭트, 스트라스부르, 렌, 툴루즈 등 전국 도시들에서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이날 시위는 이번 사태가 시작된 이후로 가장 큰 규모다. AFP, AP 통신에 따르면 프랑스 내무부는 이날 시위에 파리 5만6천명 등 25만6천명이 참여한 걸로 집계했다. 주최 측은 그보다 훨씬 많은 45만명이 참여한 것으로 추산했다.
오전부터 곳곳에 학생들이 몰려들어 시위를 시작하며 경찰과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많은 10대 청소년이 플래카드와 연막탄을 손에 들었다.

시위자들이 학교 앞이나 거리에 친 바리케이드에 불을 붙이고 진압 경찰관들이 이를 끄는 모습도 목격됐다. 일부 시위자들은 경찰관을 향해 발사체를 쐈고 경찰은 군중 해산 및 진압을 위한 최루탄, 물대포 등도 투입했다.
마르세유에서 시위에 참여 중인 학생 콜린은 BBC에 정부의 허울뿐인 약속이 신물 난다며 자신이 다닌 여러 학교가 갈수록 질이 떨어지고 학급당 학생 수가 늘어가는 모습에 불만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든 플래카드에는 "우리의 교과서 아래에는 분노가 있다", "정치인들은 어디 갔나? 우리의 존재를 알긴 하는가?" 등이 쓰였다. "국가가 국가교육을 죽이고 있다", "무시당하는 학교, 희생당하는 청년" 등이 적힌 플래카드도 있었다.
스트라스부르의 대입 준비생 위고는 로이터 통신에 "엘리트층과 우리 사이에는 큰 격차가 있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물론이고, 시위에 참여하는 자녀를 지원하기 위해 학부모와 가족들이 거리로 나선 모습이다. 툴루즈에선 학부모들이 행진의 앞줄에 섰고, 한 학부모는 티셔츠에 '부모도 나왔다'는 글귀를 붙였다.

경찰 과잉 진압 논란이 더해져 학생들의 분노를 부추겼다. 지난달 30일 16세 학생이 경찰과 대치하던 중 오른쪽 시력을 잃었고 지난 5일 15세 학생이 손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었다.
렌에서 동료들과 함께 시위에 동참한 교사 로맹 씨는 AFP 통신에 "동료 약 30명과 함께 우리가 목격한 경찰의 잔혹함에 대해 대화했고, 우리가 필요한 우리 학생들의 곁에 있기로 했다"고 말했다.
지난주 생우앙로몬에서 시위 도중 14세 남학생에게 최루탄을 쏴 중상을 입힌 혐의로 경찰관이 기소됐다고 AFP 통신은 전했다. 이 남학생은 치아 대부분을 잃었고 안면부에 상처를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로랑 누녜스 내무장관은 진압 과정에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는지 내사 중인 사건이 10건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이번 사태가 벌어진 이후 학생 215명과 경찰관 715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했다.
프랑스 내무부와 법무부에 따르면 이번 사태가 시작된 이후 체포된 사람은 6천100명이고 대다수가 미성년자다. 미성년자 1천483명을 포함해 1천800여 명이 기소됐다.
세바스티앙 르코르뉘 총리는 의회에서 "폭력에 관용의 여지는 없다"며 폭력적으로 변질된 시위를 비판했다. 그는 "학교를 불태우는 게 학교를 개선하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시위 주도 단체 중 하나인 고등학생연합(USL)은 현재 1천800개 고등학교가 봉쇄되거나 교육부에 의해 폐쇄된 상태이며, 대학의 90%가 봉쇄됐다고 말했다.
USL은 성명에서 학교 긴급 예산 100억유로(약 15조원) 배정, 교사 대규모 신규 채용, 고등교육 정원 15만명 증설 등 그간 해온 요구 사항을 거듭 강조했다.
USL은 "당국 청원이나 (평화적) 시위와 같은 다른 학생 행동만으론 우리 정치 지도자들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다"고 지적했다.
일부 정치인이 '폭력적인 소수가 학생들을 선동한다'는 식으로 사태를 몰아가는 것을 꼬집은 것이다.
르코르뉘 총리는 각 부처에 학생들의 주요 요구사항을 살펴보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막대한 국가 부채와 재정 적자로 긴축적 예산안을 준비하고 있어 교육 부문에 대대적인 투자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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