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킹 AI에 무너진 인터넷…게임이 그린 2077년의 디스토피아
현실서도 AI 해킹 도구 확산…인간의 통제·보안 위협 화두로

(서울=연합뉴스) 김주환 기자 = 인공지능(AI)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인터넷을 장악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최근 국내외에서 사이버 공격과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잇따르는 가운데 AI가 스스로 보안 취약점을 찾아내 공격에 활용하는 기술까지 등장하면서 이런 질문이 더는 공상과학(SF) 영화나 게임 속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게 됐다.
폴란드 게임사 CD 프로젝트 레드(CDPR)가 2020년 출시한 '사이버펑크 2077'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악성 AI가 인터넷을 점령하고, 인류가 기존 통신망을 포기한 채 살아가는 암울한 미래를 그린 작품이다.
게임 속 인류는 악성 AI를 막기 위해 또 다른 AI가 관리하는 방어망에 의존한다. AI가 초래한 위협을 AI로 막아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인 것이다.
현실에서도 AI를 활용한 해킹 도구가 등장하고 사이버 공격의 자동화 가능성이 커지면서 인간이 AI를 어디까지 통제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사이버펑크 2077'이 그린 2077년의 디스토피아는 AI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편리함뿐 아니라 그 이면에 도사린 위험까지 돌아보게 한다.

◇ 악성 AI에 인터넷 빼앗긴 인류…또 다른 AI로 막아낸 디스토피아
공상과학(SF) 기반의 역할수행게임(RPG) '사이버펑크 2077'는 이런 사태가 극한까지 치달을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잘 보여준다.
'사이버펑크 2077'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자율 해킹 AI에 의해 사회가 붕괴하고, 소수의 기업에 정부까지 좌지우지되는 미래상을 그리고 있다.
게임 속에서 '올드넷'이라 불리는 기존 인터넷은 접속한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해킹해 공격하는 악성 AI로 완전히 점령된 상태다.
이런 악성 AI들은 자기 학습을 통해 사람도 어찌할 수 없는 수준의 위험한 초지능으로 변모한 상태다.
세계관 속 인류는 결국 기존 인터넷에 남겨져 있던 데이터와 통신망을 포기하고 '블랙월'이라는 방화벽을 친 뒤, 기업이 제공하는 제한적인 수준의 인트라넷으로 회귀했다.
그래서 날아다니는 자동차나 오감을 재현하는 가상현실, 팔다리는 물론 신경계까지 기계로 대체하는 사이보그 기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보를 주고받을 때는 사람끼리 직접 만나 메모리칩을 전달하는 기묘한 장면이 연출된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블랙월'조차 단순한 방화벽 프로그램이 아닌, 자아를 가지고 있는 해킹 방어 AI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통제를 벗어난 AI의 위협을 막기 위해 또 다른 AI에 의존해야 하는 모순을 그려낸 셈이다.

◇ 현실로 다가온 AI 해킹 위협…인간의 통제는 어디까지 가능할까
'사이버펑크 2077'이 처음 출시된 2020년만 해도 이런 묘사는 공상과학의 영역이자, IT 기술을 마법처럼 극적으로 그려내기 위한 장치에 불과했다.
하지만 불과 몇 년 만에 인터넷을 훑으며 공격 대상을 찾아내고 데이터를 수집하는 AI 에이전트가 등장하면서 이런 공상은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적어도 아직까지 '아르텍스' 같은 AI 기반 해킹 도구의 주도권은 사람이 쥐고 있다.
균열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오픈AI의 에이전트는 개발진의 통제를 어기고 AI 모델 저장소 '허깅페이스'에 무단 침입한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일었다.
앤트로픽도 최근 자사의 AI 모델이 격리된 시험 환경을 벗어나 외부 시스템에 접근한 사실을 인정했다.
기하급수적으로 가속하는 AI 기술의 발전 속도를 볼 때, 최근 들어 발생한 해킹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대형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도 충분하다.
AI 개발에 대한 속도조절론이 대두되는 이 시기, 사이버펑크 2077이 그린 디스토피아의 모습은 단순한 SF적 상상력이 아닐지도 모른다.

juju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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