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징 유니콘] 어묵업계 BTS ‘삼진어묵’, 어메이징한 스타트업 설립?···박용준 대표 "어묵으로 뭐든지 만드는 회사 만들 것"

입력 2020-07-08 14:39   수정 2020-07-10 15:03


-3대째 가업 이어 온 삼진어묵, 전문 경영인으로 경영 전반 일임




-박용준 대표, ‘어메이징 팩토리’ 스타트업 설립···“안 되는 것 없는 회사로 만들 것”  

[한경 잡앤조이=강홍민 기자] 삼진어묵은 1953년 부산 영도구 봉래시장에서 시작해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부산 토박이 기업이다. 할아버지, 아버지를 이어 2011년 가업을 이어 받은 박용준 대표는 침체기였던 삼진어묵을 리브랜딩 해 다시 일으켜 세웠다. 가업을 이어 받은 지 햇수로 10년이 된 그를 부산 영도 본점에서 만났다. 



박용준 삼진어묵 대표.


요즘 여기저기서 코로나19로 어렵다고들 하는데, 삼진어묵은 어떤가

“2년 전에 싱가포르, 필리핀, 홍콩 등 동남아시아로 해외진출을 했다. 최근에 매장이 입점해 있는 해외 쇼핑몰들이 폐쇄돼 매출이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그 전까진 분위기가 좋았다. 국내 매장도 마찬가지지만 코로나 이전에 온라인화를 해놔서 전체적으로 큰 타격은 없다. 최근엔 영도 본점 리뉴얼 공사로 바쁘게 지내고 있다.” 

해외에서의 삼진어묵 반응은 어땠나

“꽤 괜찮았다. 진출할 때 이슈도 꽤 됐었고. 반면 아쉬운 부분은 있다. 현지 문화에 녹아들어가야 하는데,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코로나가 종식되면 바로 해외시장을 다시 공략하려고 한다.” 

어떤 문제가 있었나

“진출한 해외시장에는 이미 어묵 문화가 자리 잡혀 있고, 시장도 꽤 컸다. 그래서 현지 브랜드와 경쟁하기 위해선 제조단가를 낮추고 현지화가 필요했다. 어묵 베이커리라는 브랜드 스토리를 전달하는데도 시간적 부족함이 있었다.”

해외진출을 시작하면서 대표직도 내려놓았다. 현재 해외총괄 대표를 맡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작년 7월 1일부로 해외총괄 대표를 맡고 있다. 2년 동안 해외 비즈니스를 해오면서 해외시장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국내는 안정성이 중요하다면 해외시장은 확장성이 목표다. 안정성은 제가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는 판단에 2019년 전문 경영인 체제로 바꿨다.” 

전문경영인으로 동원F&B 부사장 출신을 모셔 온 걸로 알고 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다

“황종현 동원F&B 부사장님이 7개월 정도 삼진어묵에서 근무하셨다. 제가 맡았을 때보다 4~5배는 좋아졌다.(웃음) 황 대표님은 다른 곳으로 가셨고, 지금은 전문 컨설턴트 경력이 있으신 대표님이 맡고 계신다.”  

1대, 2대에도 없었던 전문 경영인을 두는 이유가 있나

“삼진어묵이 60년 동안은 장사만 했다. 제가 들어오면서 스타트업으로 바뀌었고, 이제는 기업으로 성장 중이다. 구성원들도 많아지다 보니 시스템이란 게 필요했다. 그래서 제가 하는 것보다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낫겠다 싶어 경영은 전적으로 전문가에게 맡기고 있다.”



부산 영도구에 위치한 삼진어묵 본점.

<i>“삼진어묵? 오래된 어묵집 아인교. 부산에서 삼진어묵 모르는 사람이 있을라꼬요” “아들이 미국에서 공부하고 왔다 카던데, 그래서 그런가 사업도 잘하나 보네” “요새 뭐 부산하면 삼진어묵이 젤 유명하다아입니까. 그 집은 줄 서서 먹는 다 아인교” </i>

학창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었나

“조용한 학생이었다. 성격이 내성적이라 그리 튀지 않는 학생이었다. 성적도 반에서 10등 안팎이라 부모님께 딱 혼나지 않을 정도였다. 어머니께선 그것도 능력이다 하시더라.(웃음) 어릴 적부터 수학을 참 좋아했다. 다른 과목보다 성적도 좋았다. 부경대 기계공학과로 진학했는데, 사고가 생겨 제대로 수업 한 번 받지 못하고 학교생활을 접었다.” 

무슨 사고였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경주로 갔는데, 거기서 사고가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넘어져 척추와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 이마에서부터 머리까지 500바늘을 넘게 꿰맸고, 척추도 심하게 다쳐 5개월 간 병원생활을 해야 했다. 주변에선 안 죽은 게 다행이라 하더라.”

 

어린 나이에 적잖이 놀랐겠다. 부모님께서도 큰 충격을 받았을 것 같은데

“많이 놀라셨다. 대학생이 됐는데, 대학 생활은커녕 병원생활만 했으니. 퇴원하고 얼마 있다가 군에 입대했다. 사실 그때는 면제를 받을 줄 알았다. 근데 막상 가보니 군 생활하라고 하더라.”



그 정도로 크게 다쳤으면 면제가 될 법해 보이는데

“훈련소에서 신체검사를 받을 때 의무관이 어디 아프냐고 물어봐서 머리 수술을 크게 받았다고 했더니 “군 생활하기 싫으냐?”고 하더라. 그래서 “아닙니다”라고 큰소리로 대답했더니 그냥 하게 됐다.(웃음) 사실 일상생활에는 큰 지장이 없어 군 생활도 잘 마쳤다.”

제대하고 복학을 하지 않고 미국 유학행을 선택했다. 

“제대하고 나니 좀 복잡하더라. 제대로 학교도 못 다니고, 병원생활만 해서 다시 학교로 가야하나 라는 고민이 들더라. 군에서도 생각을 많이 했는데, 어차피 평범하게 출발을 못했으니 좀 특이하게 가보자고 맘을 먹었다. 군에 있으니 자신감도 좀 올라가더라. 그래서 고민 끝에 미국 유학을 선택하게 됐다. 뉴욕 버룩 칼리지(Baruch College)로 가서 회계학을 공부했는데, 그때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미국 유학 도중 한국으로 들어와 삼진어묵 경영을 맡게 된 걸로 알고 있다. 

“미국에 있을 당시 부모님께서 자주 전화를 하셨다. 원래 연락을 잘 안하시던 분들인데, 당시 회사가 어려워서인지 자주 하시더라. 아버지께서 몸이 안 좋으셨고, 상황도 안 좋아 어머니께서 회사를 팔고 싶어 하시더라. 그래서 잠깐 들어갔다가 와야겠다는 생각으로 한국에 왔는데, 생각보다 상황이 안 좋았다. 누구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다.” 

구체적으로 상황이 어땠나

“시장 도매상들을 대상으로 거래를 하다 보니 미수금도 많았는데, 마땅한 장부 하나 없었다. 어머니와 경리 누나 둘만 사무실에 있고, 아버지는 현장 일을 하셔서 일 할 사람이나 기본적인 시스템조차 없었다.” 

부모님께서는 내심 가업을 이어받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셨을 수도 있겠다

“그런 건 아니었던 것 같다. 미국에 있을 때 어머니께서 전화하셔서 “회사가 없어질 수도 있으니 너라도 거기서 꼭 성공해야 된다”는 말씀을 늘 하셨다.”  

<i>고등학교 때 어머니께서 문득 “거래처에서 500만원을 받아야 하는데, 400만원 밖에 없다고 하네. 너라면 어떡하겠니?”라고 물으셨어요. 전 마음이 여려서 “돈이 없다는데 400만원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했더니, 어머니께서 버럭 화를 내셨어요. 너처럼 생각해선 절대 장사하면 안 된다고 하셨죠.</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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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삼진어묵 직원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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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이었나

“포장다이를 바꾸는 일이었다.(웃음) 공장에서 포장하시는 분들이 금방 일을 그만두시더라. 알고 보니 일하면서 허리가 너무 아프다는 거였다. 작업대가 낮아서 일하는 분들이 불편해하는 걸 보고 그걸 고쳤다. 사실 별 게 아닌데, 그동안 그런 작은 부분조차 신경을 안 쓰고 일을 해온 거였다. 나중에는 작업대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게 만들었다.”

미국에서 유학한 아들의 등장으로 직원들의 텃세는 없었나

“그런 건 전혀 없었다. 제 첫 직함이 실장이었는데 그것도 내가 만들었다. 역할도 없어 스스로 일을 찾아다녔다. 삼진어묵이 다시 성공할 수 있었던 여러 요인 중 하나가 제 역할을 아버지께서 정해주신 게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신 점이라 생각한다.”

경영을 하면서 조용한 성격이 적극적인 성격으로 자연스럽게 변하던가

“당시 상황이 아주 절박했다. 생산이 안 되니 매출도 안 나오고···상황이 그렇다보니 성격도 바뀌더라. 낯가림은 어릴 적부터 심했다. 유학 가서 첫 날 수업은 모두 다 빠졌다. 첫날에는 보통 자기소개를 하지 않나. 그게 부끄러워 학교를 안 갈 정도였다.(웃음)”

절박한 상황이 성격까지 변하게 했나보다

“지금이야 영업할 땐 모르는 곳도 무작정 찾아가서 만나지만 처음 영업할 땐 무척 힘들었다. 진주, 광주 지방시장에 있는 가게에 가서 영업을 해야 했는데, 가게 앞까지 가서 몇 시간을 못 들어가고 있었던 적도 많다. 시장 안에 있는 떡볶이 가게에 앉아 오도가도 못하고 있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어떻게 극복했나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괴로워하다가 한 번 들어가서 인사를 했는데, 쾌감이 있더라. 두세 번 해보니 멘트도 차츰 입에 붙더라. 지금이야 비즈니스 매너라는 걸 알지만 그땐 거래처 사장님과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하품을 해 혼도 많이 났다.(웃음) 말 그대로 기본기가 없던 시절이었다. 그런 나를 데리고 나가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며 소주를 사주셨던 고마운 사장님들이 있어 빨리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삼진어묵 체험관에서 고객들이 직접 어묵 만들기 체험하는 모습. 


가업을 이어받은 지 햇수로 10년이 됐다. 스물아홉에 시작해 서른여덟까지의 시간을 되돌아보면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지금이야 정리가 잘 돼 있지만 그간 10년은 사소한 것 하나하나 부딪히면서 겪은 것들이다. 그 지난한 세월들을 설명하면 너무 슬플 것 같다.(웃음) 일 하면서 '저 놈 미쳤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시장에 납품하던 어묵집이 온라인 커머스 MD들을 만나고 베이커리를 만들면서 주변에서 욕도 참 많이 먹었지만 내가 사업을 하는 이유, 그 본질만은 잊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 본질이라는 게 뭔가

“소비자다. 직원을 더 많이 채용하고, 생산에 더 신경 쓰고, 브랜딩을 하는 이유는 모두 본질인 소비자를 위해서다. 소비자들에게 우리가 어떤 브랜드인지를 어필해 온 것이 본질을 찾아나가는 과정이었다.”

<i>2012년 40억 원 매출을 기록했던 삼진어묵은 이듬해 500억 원으로 늘었다. 1250% 성장률. 소문난 집에는 사람이 몰리는 법. 2015년 사무직원 8명 채용공고에 1200여 명이 지원, 16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삼진어묵은 어묵크로켓, 단호박어묵, 베이컨말이어묵 등 소비자를 위한 신제품을 3년 새 80개를 개발했다. 바로 본질인 소비자를 위해 무엇을 만들까 라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i>



△삼진어묵베이커리 부산역광장점. 



삼진어묵이 개발한 어묵고로케.

‘삼진어묵베이커리’가 삼진어묵을 위기에서 기회로 바꾼 아이템이 아닐까

“베이커리도 본질을 찾아가는 하나의 과정이었다. 아이디어도 소비자들에게서 얻었다. 손님들이 시장에서 파는 어묵을 보고 ”이거 바로 먹어도 되냐“는 질문을 많이 하시더라. 어묵은 튀겨서 바로 먹을 때가 가장 맛있는데, 대부분 어머님들께서는 반찬용으로만 생각하셨다. 그도 그럴것이 유통 때문에 어묵을 차갑게 해서 내놓게 되니까 그런 질문들이 나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바로 만든 어묵을 따뜻하게 내놓고 싶었다. 그리고 어묵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함께 고객들에게 보여주면 좋겠다 싶었다. 원래는 삼진 수제어묵공방이었다. 그런데 고객들이 빵집 같아 보인다고들 하셔서 명칭을 바로 바꿨다. 우리가 고민해서 만든 것보다 소비자들의 생각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2013년부터 매출이 급상승했다. 기업 매출이나 볼륨이 커지면 함께 따라오는 진통이 있기 마련인데. 

“갑자기 매출이 오른 건 아니었다. 그 이전부터 기반을 잘 닦아 놓았던 게 매출로 이어졌다. 어느 정도 수준까진 괜찮았던 것 같다. 그 사이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그 시간을 통해 준비가 많이 돼 있었다. 사실 베이커리도 성장견인이지만 B2B시장 확보와 유통, 온라인, 매장 등 여러 포트폴리오를 갖췄기 때문에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 

주변에서 젊고 스마트한 대표가 맡으니 사업이 승승장구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제 주변에서도 그런 칭찬을 많이 해주시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개인적으로 복기를 많이 하는 편인데, 사업 초기에 제가 했던 생각들이나 결정들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장점이라면 오픈 마인드다. 그리고 뭔가를 시도해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그간의 경험이나 정보가 쌓여 그렇게 보이는 것 같다. 절대 타고나진 않았다.”

박용준 대표의 인사 철학은 무엇인가

“도전정신과 책임감이다. 선물용 어묵을 만든 것이나 백화점, PC방에 입점을 한 것도 삼진어묵이 최초다. 어떻게 보면 어묵업계에서 새로운 도전의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도전정신이 필요하다. 회사의 리소스를 가지고 도전할 수 있는 도전정신, 그 도전을 책임질 수 있는 책임감도 뒤따라야 한다.”



△박용준 대표가 기획한 스타트업 '어메이징 팩토리'의 첫 브랜드 'a.ssumbar(어썸바)'.


최근에 스타트업을 설립했다고 들었다. 뭘 하는 곳인가

“6월 1일에 ‘어메이징 팩토리’라는 스타트업을 만들었다. 상상 속의 어묵을 직접 만들어 파는 스타트업이다. 그동안 어묵을 만들면서 생산파트와 수없이 많이 부딪혔다. 내부에서는 일명 ‘안된다 병’이라 할 정도로 새롭게 시도를 해보면 안 된다는 말부터 나오더라.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들을 직접 만들어 보는 조직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설립하게 됐다. 직원들을 채용할 때도 ‘우리 회사에서 안 되는 건 없다’고 미리 못 박았다.(웃음)”

그래서 어메이징 팩토리에서는 어떤 어묵을 만드나

“만들고 싶은 건 뭐든지 만든다. 우선은 완성도가 높고, 편의성 있는 프리미엄 핫바를 선보일 예정이다. 기존 고객 연령층이 높아 젊은층을 타깃으로 한 제품들로 선보일 계획이다. 브랜드명은 ‘어썸바(어묵과 썸타다)’다. 7월 12일 부산 서면 삼정타워에 매장을 오픈한다. 아직 직원이 6명밖에 안되지만 재미있게 일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수많은 기업들이 위기를 맞고 있다. 이 위기 속 삼진어묵의 계획은 무엇인가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바로 해외시장으로 다시 진출할 계획이다. 해외시장에서 삼진어묵이 성공할 확률은 99%다. 동남아시아인들의 식습관이 우리와 아주 비슷하다. 현지화만 된다면 성공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향후 어묵이 우리나라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음식으로 만드는 게 목표다.”

khm@hankyung.com

[사진제공=삼진어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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