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살 전태일이 묻다 “2020년 한국의 노동은 어떤가요”

입력 2020-11-22 20:42  




△전태일 스탬프 투어 지도.

(사진 출처=아름다운청년전태일50주기범국민행사위원회)

[한경잡앤조이=조수빈 기자/나채영 대학생 기자] 일감을 구하러 온 미싱사들로 가득했던 오후 1시 평화시장. 22살 청년이 화염에 휩싸인 채 크게 외친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재봉틀이 아니다.” 열악하고 위험한 노동환경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울부짖음이었다. 50년이 흘렀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자들은 안전하지 않은 노동환경에 울부짖는다. 올해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만 해도 10건이 넘었고 플랫폼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산재보험혜택을 받지 못한다. 우리 시대의 수많은 전태일을 응원하며 ‘전태일 열사 50주기 기념 新 전태일 스탬프 투어’를 다녀왔다. 

2020년 11월 청계천 변은 전태일을 추모하고 기억하기 위한 시민들로 가득했다. 전태일 기념관은 11월 7일,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기념해 ‘新 전태일 스탬프 투어’를 개최했다. 이번 스탬프 투어는 개관이래 전태일 기념관이 평화시장, 이음피움 봉제 역사관과 협업해 진행한 첫 행사다. 전태일의 어린 시절부터 분신 직전까지의 이야기들을 관람할 수 있도록 안내된 것이 특징이다. 

스탬프 투어 기획자 유성미 씨는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기념해 과거의 사건들에 쉽게 다가갈 수 있게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선착순 100명에 한해 진행된 투어는 전태일 기념관에서 스탬프 종이를 받는 것을 시작으로 평화시장과 창신동 봉제 거리를 거쳐 이음피움 봉제 역사관에서 마무리됐다.



△전태일 기념관 앞 글귀.


SPOT 1. 전태일 기념관

‘新 전태일 스탬프 투어’ 참가자는 전태일 기념관 정문을 지나 3층 상설 전시실로 입장했다. 청년 전태일의 이야기가 담긴 전시실에서 관람객들은 봉제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은 물론 전태일이 당시 만든 노동자 설문지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었다. 전시장 공간을 체험을 완수한 방문객에겐 첫 번째 스탬프와 함께 소정의 기념품이 제공됐다.

전시실 내 4개의 공간은 청년 노동자 전태일의 일생을 전하고 있었다. ‘전태일의 어린 시절’과 ‘전태일의 눈’ 공간은 평화시장에 근무하기 전 구두닦이, 껌팔이 등으로 생계를 유지했던 전태일의 어린 시절을 보여준다. 

여러 곳을 전전하던 전태일은 1965년 그의 나이 18살에 평화시장 봉제 노동자로 첫 삶을 시작한다. 평화시장 봉제노동자 전태일이 마주한 평화시장 근무환경은 비참했다. 하루 15시간 노동과 밤샘 야간작업의 대가는 50원. 이마저도 업주의 재량으로 변동되는 것이 관례였다고 해설사는 전했다. ‘전태일의 실천’ 공간은 봉제사들의 좁은 작업장을 재현하고 있었다. 높이 1.5m도 되지 않는 한 평짜리 다락방에 들어서는 순간, 먼지를 마셔 폐 질환에 시달려도 건강검진은커녕 참고 살았을 13~17살 어린 소녀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누구보다 가깝게 지켜봤을 전태일의 모습이 그려졌다. 



평화시장 노동실태 조사용 설문지.

열악한 노동환경을 알리고 싶었던 전태일의 마음은 ‘평화시장 노동실태 설문지’를 통해 표현된다. 설문지는 주일 휴가제, 8시간 근로제, 정기 임금 인상 등을 지키지 않는 1960년대 한국 사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전태일의 꿈’ 공간에선 그가 배포한 설문지 원본을 만나볼 수 있었다. 

2만여 명의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권리를 되찾는 것은 물론 노동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자 했던 전태일의 시도였다. 스탬프 투어를 체험하지 못했더라도 전시실은 홈페이지 사전예약을 통해 언제든지 입장 가능하다. 현재 전태일 기념관은 코로나 19 예방을 위해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운영되고 있으며 5인 이하 관람객의 경우 전시 해설도 요청할 수 있다.

SPOT 2. 청년 전태일의 일터, 청계천 평화시장

11월 7일 방문한 평화시장 전태일 다리(버들 다리)엔 아직도 많은 피복 상가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평화시장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전태일 분신장소를 확인한 참가자에겐 두 번째 스탬프가 주어졌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거듭된 진정에도 끄떡없는 노동청과 사업주의 모습에 전태일은 평화시장 버들 다리 불길에 몸을 던진다. 

벚꽃 모양의 분신장소를 중심으로 버들 다리 곳곳엔 노란빛이 가득했다. ‘전태일과 함께 세상을 바꾸자’, ‘모두가 인간답게 사는 세상’ 등의 글귀를 담은 동판 수천 개가 거리를 따라 펼쳐져 있었다. 글귀들이 더 밝게 빛나기 위해선 동판들을 계속해서 밟아야 한다는 해설사의 말에 발로 수십 번을 문질렀다. 



△전태일 추모 동판의 모습.

현장에는 동판을 문지르며 전태일을 추억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참가자 이기은(성공회대 18)씨는 “투어를 통해 노동자들의 현주소를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었다”며 “현재 택배 노동자 문제와 관련해 사고사가 이어지고 있는데, 택배 물량증가에만 집중하기보단 전반적인 노동 시스템에 문제를 찾고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음피움 봉제 역사관 이니셜 새기기 체험.


SPOT 3. 한국 봉제산업의 과거와 현재, 이음피움 봉제 역사관

마지막 장소, 이음피움 봉제 역사관으로 가는 길은 높고 험난했다. 종로구 창신동 봉제 거리는 공업용 재봉틀 소리로 요란했다. 이곳은 동대문 평화시장 내 봉제공장이 창신동 주택가로 이전한 이후 지금까지도 동대문 패션타운의 든든한 배후 생산기지로 자리 잡았다. 

창신동의 오르막길에서 점심을 거르고 있는 시다(미싱 보조)들에게 버스비를 아껴 1원짜리 풀빵을 30개 사주고, 청계천 6가부터 도봉산까지 두세 시간을 걸어갔던 전태일의 모습도 상상해볼 수 있었다. 이음피움 봉제 역사관에 도착한 참가자들은 컴퓨터 자수기로 이니셜 새기기와 캐릭터 브로치 만들기를 체험한 후, 마지막 스탬프를 받았다. 투어를 마치며 전태일 열사를 가슴에 담았다. 그가 외친 근로기준법을 알려고 하지 않았던 지난날에 고개 숙였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한국 산업화는 과거 저임금 장시간 노동, 민중 희생에 바탕을 둔 질서를 가지고 있었다”며 “앞으로 어떤 질서를 유지할 것인가는 노동을 존중하는 우리의 자세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현재의 노동자이며 미래 노동자다. 현재를 바꾸지 않으면 미래도 없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subinn@hankyung.com

[사진 제공=나채영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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