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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팀 리포트] 명동성당-서울역-광화문…세월따라 바뀐 집회 공간

입력 2013-01-11 17:05   수정 2013-01-11 22:07

단골 집회장소는 시대에 따라 많이 변했다. 1970~80년대에 ‘민주화 성지’로 자리매김한 명동성당이 오랫동안 재야 인사들의 집회 명소로 사랑 받았다. ‘명동성당→중앙극장→삼일빌딩→탑골공원’이나 ‘명동성당→롯데백화점→조흥은행 본점(현재 신한은행)→종각→탑골공원’으로 이어지는 2㎞ 남짓한 구간은 1990년대 초·중반까지 단골 가두시위 코스였다. 집회의 상징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데다 유동인구도 많아 유인물 배포 등 홍보 효과가 높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종묘공원 등에서 집회를 연 뒤 ‘탑골공원→종로서적 앞→을지로입구→외환은행 본점’을 거쳐 명동성당에서 집회를 정리하는 코스도 각광받았다.

그러나 명동성당이 2000년 12월 성당 구내에서 허가받지 않은 집회를 원천봉쇄하는 내용의 시설보호를 관할 경찰서에 요청하면서 ‘명동성당 전성시대’는 막을 내렸다. 명동성당에선 2000년 한 해에만 214건의 집회로 몸살을 앓았다.

1980~90년대에 민주화·노동계 인사들이 나섰던 서울역광장도 2000년대 초반부터 빛을 잃기 시작했다. 2004년 4월 고속철도(KTX) 개통과 함께 새 역사가 들어서면서 1만4000여㎡에 달하던 광장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대학로도 1990년대 이후 주말마다 각종 집회·시위 장소로 애용됐던 집회 명소였지만, 인근 공연예술·상인들의 지속적인 민원으로 집회 문화가 한풀 꺾였다.

2000년대의 집회 메카는 시청 앞 서울광장과 광화문 일대였다. 특히 한·일월드컵이 열린 2002년 5월을 기점으로 급부상한 서울광장은 주말이면 10만명쯤 거뜬히 수용해 한동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집회’와 동의어로도 통했다. 광화문 일대도 여중생 2명이 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희생된 2002년 6월, 미국산 소고기 소동이 빚어졌던 2008년 5월 수만명이 쏟아져 나와 촛불집회를 벌였던 곳이다.

김선주/이지훈 기자 sak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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