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蘭의 亂…새정부 인사 대이동 시작되는데 '3만원 이상 선물금지'에 매출 썰렁

입력 2013-01-18 17:11   수정 2013-01-18 21:34

화훼업계의 눈물

2011년 공직자 행동강령 시행…재배 농가들 직격탄 맞아
몇 년씩 키운 난 농장에 방치
매출 40% 넘게 줄어 찬바람…업계 "규제 풀어달라" 하소연




#1. 지난 6일 공식 출범한 제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자리잡은 서울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인수위원 26명, 부처 파견 공무원 53명 등 100명이 넘는 ‘새 별’들이 대거 몰려든 건물이지만 이곳엔 자리를 옮긴 공무원들의 사무실에 으레 있을 법한 화환이나 난(蘭) 화분이 보이지 않는다. 5년 전 이명박 인수위가 똑같은 사무실을 썼을 때 건물 외부엔 대형 플래카드가 걸려 있고, 각계 인사들이 보낸 화환이 복도에 빼곡히 들어차 있던 것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인수위 관계자는 “박근혜 당선인의 인수위 콘셉트는 ‘작고 조용한 인수위’”라며 “(화환이 없는 것도)허례허식을 싫어하는 박 당선인의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2. 올초 경기도의 한 은행 지점장으로 부임한 A씨는 인사 직후 거래처와 친지들로부터 30개에 달하는 축하난을 받았지만, 친지가 보낸 5개를 제외하곤 모두 돌려보냈다. 인사철이면 사무실마다 적잖게 쌓이는 축하난·화환을 주지도 받지도 말자는 사내 분위기 때문이었다. A씨는 “준 사람한테 미안하긴 하지만, 다른 고위 임원들도 인사 때 들어온 화환·화분을 바로 반송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부터 막이 오른 관공서·민간기업·금융계 정기인사에 뒤이어 새 정부 출범이 예정됨에 따라 축하난·화환시장에 기대감이 한껏 고조되고 있다. 다음달까지 민간기업과 관가 인사가 이어지고 6월과 9월에도 각각 사기업과 교원 인사 등 연쇄적인 인력 이동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연내 10만여명의 순차적인 인사 이동이 예상돼 최근 3년 내리막길을 걸어온 화훼농가의 시름을 덜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화훼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낙관을 경계하는 우려도 만만찮다. 화훼농가에 태풍이 됐던 국민권익위원회의 ‘3만원 이상 선물 금지 지침’이 업계로선 가장 큰 부담이다. 민간기업에서도 ‘윤리경영’ 차원에서 ‘축하난 안 받기’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허례를 경계하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스타일이 새 정부 출범 이후 인사철에도 영향을 미칠 경우 올해도 난 시장은 특수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망했다. 취재팀이 지난 14~17일 3일동안 서울 양재동 농수산물유통공사 화훼공판장 수도권 화훼농가 10여곳을 취재한 결과 축하난·화환을 출고하기 위해 1년 중 가장 활기차고 바빠야 할 시기임에도 한가하기만 했다. 인사철을 겨냥해 화훼농가들이 비싼 난방비를 감수하면서 수년간 공들여 키워낸 난들이 농장, 도·소매상에 곳곳에서 출고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5년 전 1만원대 동양난 7000원…“줄도산 온다”

지난 14일 서울 양재동 농수산물유통공사 화훼공판장의 난 경매장. 경매가 시작된 오전 8시, 인사철 축하난으로 인기가 높은 동양란 철골소심 20분(盆)이 경매에 나왔다. 입찰가는 분당 7000원. 작년 이맘 때 9000원대에 팔렸고, 5년 전 새 정부가 들어설 당시 인사철 특수로 1만원대에 가격이 형성됐던 품목이다. 경매장 전면 좌측 상단에 걸려 있는 입찰가격 전광판을 쳐다보던 30년차 중도매인(경매장에서 난을 낙찰받아 도매상에 판매하는 사람) 권모씨(65)가 “이 겨울 혹한에 기름을 때 키우느라 생산원가가 1만원대인데 저 가격은 (판매자가) 운송비도 못 건지겠는데…”라며 혀를 끌끌 찼다. 경매엔 참여하지 않고 전광판을 쳐다보며 우두커니 서 있는 중도매인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8년차 중도매인 유모씨(52)는 “공무원과 민간기업·금융기관들의 정기인사 시즌인 12~2월이면 경매장을 빼곡히 메운 중도매인들 간 치열한 입찰경쟁이 벌어져야 하는데, 1~2주 전에 사놓은 물건을 아직도 다 팔지 못해 보다시피 이렇게 뒷짐이나 지고 서 있는 중도매인들이 많다”며 한숨을 쉬었다.

화성에서 서양란 팔레놉시스 농원을 운영하는 박모씨는 이날 팔레놉시스 150분을 경매에 내놨지만, 사겠다는 이가 없어 절반 수준이 70분이 유찰됐다. 박씨는 “지금 난 농가 중에 흑자 나는 곳이 10%가 채 안 된다. 농가들 사이에서 줄도산 공포감이 만연하다”고 탄식했다.

○‘군자’ 이미지 난, ‘뇌물’로 인식

난 재배농가들이 어려움을 겪게 된 건 2011년, 공무원이 인사 때 고급 축하난이나 화환을 받는 것을 금지한 ‘공직자 행동강령 운영지침’이 시행되면서부터다. 그해 2월 국민권익위원회가 ‘공직 사회의 청렴성을 높인다’는 취지로 제정한 이 지침은 고위공직자들이 명절이나 인사철은 물론 평소에도 직무관련자로부터 3만원 이상의 화분·선물을 받을 수 없도록 했다. 이를 위반할 경우 견책 등 처벌을 받거나 인사상 불이익을 받도록 했다. 이 지침이 발표되자 승진·영전·기념일을 맞은 사람에게 보내는 선물로 애용돼 온 축하난을 재배해온 농가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농가들은 “시장 상황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처사”라며 일제히 반발했다. 선물용 난은 꽃 소매상에서 한 점에 보통 5만~10만원에 거래되는데, 3만원 미만으로 선물을 하라는 건 난을 아예 사지 말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경기 고양에서 난 농원을 하는 양모씨는 “지침이 하달된 후 ‘꼿꼿한 군자’의 이미지를 담고 있던 난이 공무원 사이에서 졸지에 ‘뇌물’ ‘부패의 근원’으로 비쳐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농가의 이 같은 반발에도 사회 전반에 난 선물 관행에 대한 강력한 ‘억제 효과’가 나타났다. 국가기관·지자체·공기업 등 공공 부문 기관들에서 대가성·직무관련성 유무와 관계없이 인사 때 ‘축하난·화환 등 선물 안 주고 안 받기’ 캠페인이 자발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난 농가의 반발을 의식한 권익위는 뒤늦게 ‘직무관련성이 없는 사람에게서 난·화훼 등을 받는 행위를 제한한 것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공문을 정부·공공기관·지자체에 보냈지만, 대세를 뒤집긴 역부족이었다. 많은 기업들도 ‘윤리경영’을 강조하며 화분이나 선물을 원칙적으로 받지 못하도록 하고 나선 것. 대기업 B사는 사내 ‘선물반송센터’를 설치해 고객업체나 협력업체에서 들어온 선물을 즉각 되돌려 보내기로 했다. 실제 ‘3만원 이상 선물 금지 지침’이 시행된 후 난 판매 시장은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서울 양재동 농수산물유통공사 화훼공판장 경매장 기준으로 지침이 있기 전인 2010년 9100원대였던 난 평균 거래가는 지침 시행 1년이 지난 지난해 7600원대 이하로 20% 하락했다.

○5년 만에 ‘권력 대이동’…난 시장 살릴까

난이 전체 화훼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생산액 기준)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2011년 국내 연간 난 생산액은 805억원. 10년 전인 2001년 1240억원에서 40% 가까이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1000곳이 넘던 농가 수는 600여곳으로 급감했다.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면 난 산업은 수년 내 붕괴할 것이라고 화훼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그나마 박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이 예정된 다음달부터 정부기관·공기업 등의 인사개편이 대대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고, 6월과 9월 각각 사기업과 교원 인사가 예정돼 있어 난 수요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이 거의 유일한 희망이다. 화훼협회는 ‘3만원 이상 선물 금지 지침’ 수정을 새 정부에 건의할 방침이다.

그러나 업계 일부에서는 “‘청렴·소박함’을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 공무원들이 지금보다 더 선물 수수에 주저할 것”이라는 실망 섞인 전망도 나온다. 백기엽 충북대 원예과학과 교수는 “지침이 지금 당장 수정 또는 폐기된다 해도 난 시장이 정상화되기까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헌형/이지훈/박상익 기자 hh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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