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손숙 씨 "복지·교육의 뿌리는 문화…연극 등 기초예술 키워야 국격 높아져"

입력 2013-01-20 16:45   수정 2013-01-20 22:18

'연기인생 50주년'맞은 연극인 손숙 씨

서커스단 부러워 어릴 때 가출…"식초 두사발씩 마셔야" 소리에 기겁
고2 때 강렬한 무대 에너지에 매혹

장관 때 '어머니'로 뜻밖의 시련…20년 공연 약속 지키려 내달도 무대
정치 관심 있지만 참여할 뜻 없어




전쟁통으로 혼란했던 시절, 경남 밀양에 살던 소녀는 1년에 두어 차례 국극단이나 서커스단이 마을에 들어올 때 가장 행복했다. 화려하게 치장한 국극단원의 몸짓과 연기, 서커스 소녀의 묘기를 바라볼 때마다 가슴이 요동쳤다. 서커스단을 따라가려고 보따리를 싸 집을 몰래 나온 적도 있었다. 서커스를 하려면 매일 식초를 두 사발씩 마셔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가출 두 시간 만에 돌아왔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머니를 따라 서울로 올라온 후로는 문학에 푹 빠져 지냈다. 풍문여고 2학년 때 우연히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연극 ‘밤으로의 긴 여로’를 보고는 충격에 빠졌다. 어릴 적 강한 설렘이 되살아났다. 유진 오닐의 희곡으로 읽을 때보다 배우들의 호흡과 움직임으로 다가오는 감동은 더 크고 강렬했다. 그렇게 무대를 동경하던 문학 소녀가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배우가 됐다.

올해로 연기 인생 50년을 맞은 손숙 씨의 이야기다. 손씨는 올해도 대표작 ‘어머니’로 내달 1~17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에서 관객과 만난다. 연극 데뷔 50주년을 장식하는 첫 무대다. 1999년 ‘어머니’를 초연했던 정동극장에서 그를 만났다.

▷연극 인생 50주년의 첫 작품으로 ‘어머니’를 선택했군요.

“연극한 지 50년이 됐지만 그렇다고 특별한 일을 벌이는 건 없습니다. ‘어머니’를 1999년 2월 정동극장에서 초연할 때 당시 극장장이었던 홍사종 씨, 연출가 이윤택 씨(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와 20년간 매년 공연하기로 약속하고 계약서까지 썼죠. 이후 정동극장은 약속을 깼지만 저는 한 해도 빼놓지 않고 전국을 돌며 ‘어머니’를 연기했어요. 1년에 3~4편 연극하는데 ‘어머니’는 항상 들어 있었습니다. 올해도 이씨의 제의로 먼저 하는 거예요.”

▷14년째 같은 작품을 공연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어떻게 했습니까.

“저로선 감사할 따름입니다. 관객의 호응과 지지가 있어서 가능했죠. 단언컨대 ‘어머니’는 재미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와 6·25, 분단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관통하면서 남편의 바람기와 혹독한 시집살이, 자식의 죽음까지 감내해야 했던 우리네 엄마의 이야기를 가슴 절절하게 그립니다. 중년 남성들이 와서 펑펑 울고 가요. 슬프기도 하지만 노래와 춤이 있어 신명나기도 합니다. 세대를 초월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지요.”

이 작품은 ‘환경부 장관과 맞바꾼 연극’이란 사연 때문에 더 유명해졌다. 손씨는 1999년 5월 환경부 장관에 임명된 직후 러시아에서 ‘어머니’ 공연을 강행해 논란을 빚었다. 공연 커튼콜 무대에서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에 동행한 기업인 10여명이 모아 건네준 2만달러를 받은 게 문제가 돼 결국 장관 임명 32일 만에 사퇴했다.

▷그땐 마음고생이 컸겠습니다.

“장관직 사퇴후 10여일간은 밤에 잠도 못 자고 벽을 치며 울었습니다. 너무 억울했죠. 러시아 공연 1주일 전에 장관 제의를 받았는데 국가 간 약속인 공연을 도저히 취소할 수 없었어요. 러시아 공연에서 평생 무대에서 경험하지 못한 박수를 받았습니다. 관객들이 ‘마마’라고 외치며 15분간 기립박수를 쳤죠. 그런 환호 속에서 무대로 올라온 기업인들로부터 극단을 대표해 액수도 모른 채 격려금을 받았는데 그게 뇌물이라뇨. 그 돈도 극단 단원들에게 나눠 주고 장관 임명으로 취소된 지방 공연 위약금으로 다 썼습니다.”

▷그런 아픔을 어떻게 극복하고 무대로 복귀하셨습니까.

“미국에서 친구와 함께 그랜드 캐니언 등으로 여행을 다니면서 마음을 추스렸습니다. 귀국했더니 평생 스승이신 임영웅 선생님(극단 산울림 대표 겸 연출가)이 전화를 주셔서 대뜸 ‘연극하자’고 하셨죠. ‘지금 어떻게 할 수 있느냐’고 했더니 ‘손숙이 돌아올 자리는 이곳이다. 빨리 올수록 좋다’고 하셨어요. 바로 작품을 받아 무대에 섰습니다. 돌이켜보면 ‘어머니’는 큰 시련을 줬지만 빨리 제 자리로 돌아오게 해준 고마운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런 일이 없었다면 장관 1~2년 하고는 정치권 주위에 맴돌면서 돌아올 시기를 놓치지 않았을까요.”

▷손숙 하면 연극인 다음에 방송인이 떠오릅니다.

“연기를 시작한 이후 연극밖에 몰랐습니다. 연극계에서 나름대로 인정받고 성공도 했지만 밥먹고 살기는 여전히 힘들었어요. 연극하던 남편(김성옥 목포시립극단 예술감독)이 사업에 실패한 후 빚더미에 올라 끝이 안보이던 때에 라디오 진행 섭외가 들어왔습니다. 많은 동료들이 TV드라마로 넘어갈 때도 연극을 지켰지만 이때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죠. 1989년부터 MBC ‘여성시대’를 진행하면서 라디오와 제가 잘 맞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청취자들의 사연을 읽으며 펑펑 울기고 하고 용기도 얻었습니다. 라디오를 통해 돈을 번 것뿐만 아니라 마음도 치료받았죠.”

▷연극과 방송 이외에도 다양한 사회 활동을 해 오셨는데요.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사회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의식이 좀 생겼다고 할까요. 하루 200~300통씩 오는 청취자들의 편지에는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가 담겨 있어요. 여성과 환경 문제 등에 대해 공부도 따로 하면서 칼럼과 강연 등을 통해 사회에 대한 발언도 조금씩 하게 됐죠.”

▷지난 대통령 선거 때 박근혜 후보 캠프에 합류한다는 발표가 났다가 번복됐는데.

“새누리당 캠프의 문화 특보를 맡은 박명성 대표(극단 신시 대표, 뮤지컬 연출가)가 친한 후배예요. 어느날 전화가 와서 ‘문화 정책 만드는데 도와줄 수 있느냐’고 해서 ‘개인적 조언은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한 것이 와전돼 벌어진 해프닝입니다. 특정 캠프에서 일하려면 제 생계인 방송 진행을 놓아야 합니다. 예전에 DJ께서 대선 지지 선언 방송을 요청했을 때도 같은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강연 등에서 기초예술 등 문화의 중요성에 대해 자주 말씀하시는데요.

“이번 대선에서 양쪽 후보가 문화에 대한 소견을 얘기하는 걸 한마디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문화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시대라는데 신기할 정도입니다. 복지도 문화가 바탕이 돼야 합니다. 문화를 뚝 떼어내 복지, 복지하는 것이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초·중학생 의식 조사에서 70%가량이 ‘10억원이 생기면 감옥에 1년쯤 있어도 좋다’고 답했다는 기사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학교폭력과 성폭력 등은 모두 문화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싸이’니 ‘K팝’이니 해서 돈 되는 문화 콘텐츠에만 관심이 쏠리는 것도 문제입니다. 연극 등 기초 예술이 튼튼해져야 세계적인 콘텐츠가 나올 수 있죠. 기초예술 부문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늘리고 이를 교육 현장과 연계하는 프로그램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정치에 참여해 뜻을 펼 생각은 없습니까.

“정치에 관심은 있지만 제 삶인 연극이나 좋아하는 방송일을 버리고 참여할 뜻은 전혀 없어요. 하지만 발언은 계속 할 겁니다. 잘하면 박수쳐 주고 못하면 제 생각을 얘기해야죠. 최근 배우나 연예인들의 정치적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왜 발언을 못해요? 정치적 발언 때문에 출연을 하지 못하는 등의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되죠.”

▷연기에서는 TV드라마나 영화엔 거의 출연하지 않고 연극만 고집해 오셨는데요.

“TV드라마는 해 봤는데 매력을 잘 못 느끼겠더군요. 영화는 할 만한 작품이 있고 기회가 된다면 한두 편 해보고 싶습니다. 연극은 관객과 호흡하는 현장예술입니다. 같은 공간에서 배우와 관객이 서로 시선을 마주치고 호흡하는 자체가 굉장한 일이잖아요. 연극을 하면서 관객으로부터 치유받을 때가 많습니다. 스크린이나 TV화면을 통해서는 느낄 수 없는 것이죠. 열악한 환경으로 자존심 상할 때가 많았지만 지금은 그걸 다 초월해 연극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올해 활동 계획과 함께 앞으로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오는 4월 임영웅 선생님과 함께 치매 노인을 다룬 신작 ‘나의 황홀한 실종기’를 공연합니다. 7월에는 예술의전당에서 제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 연극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고, 10월께엔 박명성 대표와 작품을 같이 하기로 했습니다. 바람이 있다면 건강이 허락하고, 대사를 외울 수 있는 한 오랫동안 현장배우로 남는 것입니다. 요즘 들어 부쩍 체력이 달리는 걸 느끼지만요. 20년간 ‘어머니’를 공연하겠다는 약속은 지켜야죠. 앞으로 6년 남았는데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버텨볼 생각입니다.(웃음)”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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