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자본시장] '돈맥경화' 금융투자시장…퇴직연금 활성화가 답

입력 2013-01-22 17:16   수정 2013-01-23 03:46

(3) 성장 & 복지, 자본시장에 길이 있다

고령화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뚝'…사적연금으로 노후대비 바람직
개인·퇴직연금 시장 커질수록 자본시장으로 자금유입 가속화
'퇴직연금 모범국가' 호주…펀드산업 아시아 1위·세계 3위



호주는 은퇴한 노인의 천국이라 불린다. 호주금융연구센터와 글로벌 컨설팅기업인 머서가 주요 18개국의 연금시스템을 평가한 ‘멜버른-머서 글로벌연금인덱스(MMGPI)’에서 호주는 매년 최상위권을 놓치지 않는다. 호주 노인들은 ‘슈퍼애뉴에이션(superannuation)’이라고 불리는 퇴직연금제도 덕에 은퇴 후에도 생활비 걱정 없이 여가생활을 누리고 있다. 슈퍼애뉴에이션은 근로자의 퇴직연금 가입과 기업의 기여금(근로자 연봉의 9%) 납부를 강제화한 제도로, 호주 근로자들이 60세 이후 받는 퇴직연금은 직장 다닐 때 소득의 50% 수준에 이른다.

반면 한국은 연금으로 노후를 준비하는 데 있어서 주요국 중 ‘꼴찌’ 수준이다. 지난해 MMGPI 조사에선 18개국 중 16위로 중국 인도 등과 함께 낙제등급인 ‘D등급’을 받았다. 한국에서 은퇴 후 연금의 수입대체율은 12%에 불과하다. 자연스럽게 노인들은 생계를 위한 수입을 얻기 위해 경비직, 청소업무, 식당업 등에서 일자리를 찾는 구직전쟁을 벌이고 있다.


○고령화 해법은 자본시장 활성화에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는 국가다. 합계출산율은 1990년 1.57명에서 2011년 세계 최저 수준인 1.24명까지 떨어졌다. 반면 평균수명은 같은 기간 71.3세에서 80.8세로 높아졌다. 2016년을 정점으로 생산인구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생산 및 소비 감소가 우려되고 있다. 세금 낼 사람은 줄고 노년층 복지지출이 늘면서 국가재정이 급속도로 악화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 같은 저출산·고령화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선진적인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 개인 스스로의 노후 자산형성을 지원하는 ‘자산기반형 복지(asset-based welfare)’ 체제를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현재 한국의 연금제도는 공적연금(국민연금)과 퇴직연금, 개인연금이라는 3층 보장체계로 구성돼 있다. 이 중 핵심 축인 국민연금은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될 경우 지급 금액이 줄고 수령하는 나이가 점차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그런 만큼 사적연금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사적연금 가입률은 작년 3월 기준 19%에 불과하다. 호주 95%, 미국 64%, 독일 63%, 영국 59%, 일본 45% 등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홍성국 KDB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의 소득대체율이 하락할 가능성이 크고 앞으로 높은 운용수익률을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며 “개인연금과 퇴직연금을 통해 노후대비를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상우 보험연구원 수석연구원도 “국내 연금시스템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낙후된 것으로 평가받는 만큼 고령자와 저소득층에 대한 노후소득 보장체계를 강화하고 사적연금 가입률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퇴직연금제도가 활성화되면 금융산업과 자본시장이 커지는 부수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자본시장으로 자금유입이 가속화되면 성장가치가 높은 국내 중소혁신기업에 대한 자금지원이 확대될 수 있고, 다양한 국내외 자산에 투자하면서 자산운용업 또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퇴직연금 모범국가로 꼽히는 호주의 경우 ‘슈퍼애뉴에이션’ 도입 이후 펀드산업이 아시아 1위, 세계 3위로 올라섰다.

○“세제혜택 늘리고 가입자 선택권 넓혀야”

전문가들은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세금 혜택을 확대하고 △가입자의 경우 사용자(회사)가 계약한 1~3개 퇴직연금사업자(금융회사) 중에서만 선택하도록 돼 있는 가입자의 선택권 제한 상황을 개선해야 하며 △확정급여(DB)형과 원리금보장상품에 편중된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퇴직연금은 초장기 상품이고 중도인출이 쉽지 않은 만큼 세제유인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무엇보다 개인연금과 퇴직연금을 합해 연 400만원까지 소득공제되고 있는데 개인연금만으로 한도가 소진된 경우가 많은 만큼 퇴직연금에 대해 별도의 소득공제 한도를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또 퇴직연금의 73.4%가 회사가 운용책임을 지는 DB형에 집중돼 있는 점을 개선하기 위해 개인이 자금운용을 직접 지시할 수 있는 확정기여(DC)형에 대한 각종 제한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덕래 삼성자산운용 퇴직연금팀장은 “중산층 기반을 확대하고 국민들의 노후 대비와 관련해 국가의 부담을 줄이는 데는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 등 자본시장상품의 활성화가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며 “퇴직연금 등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세제혜택 확대와 함께 DC형으로의 유도를 위한 제도적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 저출산 대책 차원에서 ‘어린이 펀드’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저축을 통해 자녀의 양육과 교육비 부담에 자발적으로 대비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 등에선 세제혜택을 부여하는 방식 등으로 학자금 마련 펀드 적립을 유도하고 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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