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사면권, 합법적 권리지만 남용땐 '역풍' 맞을수도

입력 2013-02-01 10:45  

통치권자의 사면권이 ‘뜨거운 감자’인 것은 분명하지만 주요 국들이 헌법에 이를 명문화하고 있는 것은 나름 정치적 기능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사면권이 군주시대의 유물이고, 민주주의 시대에는 맞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크다. 삼권분립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많다. 하지만 현실적으론 지구촌 이곳저곳에서 사면권이 집행된다. 따라서 초점은 사면권 자체를 없애는 것보다 어떻게 사면권을 민주주의 정신에 가장 부합하게 적용하느냐가 관건이다. 사면 대상자의 엄격한 선정, 친인척·측근을 배려하는 온정주의 배제, 사면권 행사의 최소화 등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필요악’처럼 보이는 제도일수록 운용의 묘가 더 필요한 법이다. 

# "헌법 규정된 정당한 통치행위"

사면권이 ‘뜨거운 감자’이지만 통치자의 합법적 통치 행위인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나라 헌법 제79조는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면·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1항)’ ‘일반사면을 명하려면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2항)’ ‘사면·감형 및 복권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3항)’고 명시하고 있다. 다만 제2항의 일반사면 규정에 미뤄 국회 동의를 얻지 않아도 되는 ‘특별사면’이라는 대통령의 권한이 유추 해석된다. 사면권이 논란이 있지만 헌법에 규정된 ‘합법적’인 통치 수단임은 부인할 수 없다.

인권보장이나 민주주의가 성숙된 여러 선진국들이 거의 예외없이 통치권자의 사면권을 헌법에 보장하고 있는 것은 나름 사면권에 정치적 기능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의 화합적 기능이 우선적으로 꼽힌다. 통치권자가 국민적 화합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그런 방향으로 국민적 여론이 수렴되면 ‘사면’이란 카드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역대 대통령들이 취임 초나 광복절, 설 등 국가절 경축일에 ‘국민화합’이라는 명분으로 특사라는 형식을 빌려 ‘면죄’ 조치를 취하는 이유다. 일부에서는 대통령의 사면권이 전면 부인되면 통치권자가 원천적으로 사법 행위에 오히려 압박을 가할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한다. 사면권이 삼권분립이라는 정신에 어긋나는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는 논리다.

#"명백한 법치주의 파괴"

사면권 반대론자들은 기본적으로 사면권이 헌법정신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중세 유럽의 군주들이 백성들을 압박하고 회유하는 수단으로 사용한 ‘사면’이 민주주의 시대인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얘기다. 한마디로 군주제의 유산인 특별사면은 ‘박물관’으로 보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특별사면은 법 적용의 평등에 중대한 도전이라는 논리다. 반대론자들은 특히 비리를 저지르거나 선거법을 위반한 친인척이나 측근을 사면하는 것은 ‘통치권자의 권한’이라는 명분을 씌워 개인적 권한을 행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한다.

특별사면에 대한 통제를 국회가 아닌 기관(사면심사위원회)에 위임하는 것은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많다. 대부분 대통령들이 취임 초 부정부패 척결을 내세우면서도 정권 말기에는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범법 행위를 사면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강하다. 사면에 국민 화합이라는 명분이 있다면 그 권한을 꼭 대통령이 아닌, 국회 등 좀 더 객관적인 기관에 부여해 충분한 논의와 여론 수렴이 필요하다고 대안을 제시하는 반대론자도 있다. 특별사면이 형사정책상 문제가 많다는 비난도 나온다. 부정부패나 권력형비리에 연루된 사람들이 사면에 포함됐을 땐 이런 비난이 더 거세진다. 

#합법이라도 법 정신 지켜야

논란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사면권은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권리다. 따라서 헌법에 보장된 통치 행위를 무조건 비난하는 건 온당치 않다. 하지만 합법이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건 아니다. 합법을 가장한 실질적 탈법이나 탈세는 우리 주변에서 자주 발견된다. 유죄가 확정된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 경제인 가운데 국가 발전에 공로가 큰 사람들을 적당한 시기에 면죄하는 것은 어쩌면 경제학에서 말하는 ‘기회비용’이란 측면에서 유용한 통치술일 수도 있다. ‘과거를 잊고 새로운 미래로’라는 슬로건에도 사면은 나름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국민이 납득할 만한 객관적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

‘권력은 부패한다. 그리고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19세기 영국의 자유주의자 로드 액튼이 한 말이다. 흔히 인용되는 이 말은 통제를 벗어난 권력은 구조적으로 부패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사면권의 정치적 기능을 인정하더라도 법치주의 정신을 가능한 한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통치권자의 ‘면죄’ 특권이 행사되어야 한다. 법치의 근본에 어긋나는 합헌엔 더 정밀하고 세심한 조율이 필요하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 논술 포인트 >

사면권은 정당한 통치 행위라는 시각과 법치주의 정신에 위배된다는 비난이 맞선다. 각자의 논리를 정리해보자. 선진국들은 사면권을 어떻게 행사하고 있는지도 함께 공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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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감자' 사면권… 다른 나라는 어떨까?

논란이 되고 있는 사면권은 우리나라 대통령에게만 부여된 권한은 아니다. 미국 영국 독일 등 대부분 국가는 헌법에 삼권분립의 예외적 성격이 강한 통치권자의 사면권을 보장하고 있다. 미국은 헌법 제2조에 대통령의 집행권에 대한 규정이 있는데 거부권, 사면권 등을 포함하고 있다. 헌법에 따라 미국 대통령은 사면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탄핵을 받은 경우는 사면이 제외된다. 미국에서도 사면권 행사는 ‘뜨거운 감자’다. 제럴드 포드, 지미 카터,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무리한 사면권 행사가 재선에 실패한 요인 중 하나라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의 경우는 법무부에 사면 전담 부서가 있어 대상자를 엄격히 심사한다. 총리의 사면권 남용을 막기 위함이다. 프랑스는 부정부패와 선거법 위반 사범은 아예 사면 대상에서 제외한다. 독일은 1950년 이후 사면이 10건뿐일 정도로 엄격히 집행되고 있다. 1997년 이후 거의 매년 대통령 특별사면이 이어졌고, 2000년대 들어서도 정치인과 기업인들의 이름이 대거 사면 명단에 오른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이다. 우리나라도 비리 사범이나 부정부패 사범 등은 특별사면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사면권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전 세계 주요 국가에서 거의 인정하고 있는 통치권자의 사면권은 사안마다 논란은 있지만 비교적 수용하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국가 통합이나 화합 차원에서 어느 정도 사면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자리잡은 결과로 보인다. 하지만 사면권이 기본적으로 삼권분립의 원칙에 어긋나는 만큼 통치권자의 사면권 행사는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데는 견해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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