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돈이 또 안돈다…우려되는 '한국 경제 좀비론'

입력 2013-02-11 15:57   수정 2013-02-11 22:59

통화 유통속도 위기 직후 수준
금리인하 등 적극적인 정책 펴야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최근 들어 우리 경제의 혈액인 돈이 다시 안 돈다는 말이 자주 들린다. 이 때문에 ‘한국 경제 좀비론’에 대한 우려와 함께 느닷없이 ‘2월 위기설’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한 나라 경제에서 돈이 돌지 않으면 사람의 몸처럼 심장에서 멀리 떨어진 손발부터 썩어 가는 증상이 나타난다. 차기 박근혜 정부 출범을 앞두고 부유층보다 서민층, 대기업보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일수록 어려움을 호소하다 못해 쓰러지고 있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이론적으로 특정 국가에서 돈이 얼마나 잘 도는가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경제 활력지표로 통화 유통 속도와 통화 승수를 꼽는다. 통화 유통 속도란 일정 기간 동안 한 단위의 통화가 거래를 위해 사용된 횟수를 말한다. 통화 유통 속도가 떨어진다는 것은 돈이 잘 돌지 않아 그 나라 경제가 활력을 잃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 나라의 돈 흐름이 얼마나 정체돼 있는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지표가 통화 승수다. 통화 승수는 돈의 총량을 의미하는 통화량을 중앙은행이 공급하는 본원 통화(high-powered money·고성능 화폐)로 나눈 수치다. 통화 승수는 그 나라 국민들의 현금 보유 성향과 예금 은행에 대한 지급 준비율 등에 의해 결정된다. 지금처럼 기준금리가 변경되지 않을 때는 현금 보유 성향과 지급 준비율이 작을수록 통화 승수가 커진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국내 통화 유통 속도를 보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분기에 0.696까지 떨어졌다가 2011년 4분기 0.723까지 회복했다. 하지만 그 뒤 계속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작년 3분기 0.696으로 위기 직후 수준으로 돌아갔다. 전형적인 통화 유통 속도의 ‘더블 딥(짧은 회복 후 재침체)’ 현상이다.

통화 승수도 시간이 갈수록 다시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국민들의 현금 보유 성향이 커져 시중에서 돈이 사라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각국의 통화 유통 속도와 통화 승수가 살아나면서 증권시장과 부동산시장이 후끈 달아오르는 속에서 한국만 경제 활력지표가 떨어지고, 부동산과 증시에서 외톨이 현상이 발생하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최근 들어 돈이 돌지 않는 ‘돈맥 경화’ 현상이 다시 심해지는 가장 큰 요인은 국내 경제주체들이 느끼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가시지 않기 때문이다. 가계가 더 이상 빚을 내서 소비할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기업도 설비투자를 꺼리는 성향이 여전하다. 서민층과 중소기업들이 체감적으로 느끼는 금융회사의 대출 태도가 더 깐깐해진 것도 한몫하고 있다.

돈이 안 돌 때 가장 우려되는 것은 ‘좀비론’이다. 모든 정책은 정책당국이 의도했던 대로 정책 수용층이 반응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정책당국의 주도력과 함께 경제 활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요즘처럼 경제 활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는 정책당국이 제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는다고 하더라도 정책 수용층의 반응은 미온적일 수밖에 없다.

모리스 골드스타인의 판단지표로 발생 가능성이 적지만 ‘2월 위기설’이 고개를 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최근 거론되는 위기설의 실체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우리 국민들이 미래에 먹고 살 ‘성장 대안 부재론’이다. 또 다른 하나는 엔저(低)로 일본이 부상하고 중국 등 후발국은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다는 ‘샌드위치 위기론’이다.

경제 활력이 떨어질 때 정책당국이 취하는 태도는 의외로 간단하다. 어떤 정책을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효과가 없으니 그대로 손 놓고 있는 소극적인 태도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정책당국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떨어지는 경제 활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경우다. 지금까지 한국은행을 비롯한 우리 정책당국이 보여온 태도는 어느 편에 속할지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가뭄이 심해져 더 깊어진 지하수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마중물을 더 많이 넣어야 하고, 때맞춰 펌프질을 더 열심히 해야 한다. 5년 전 미국은 사상 초유의 금융위기를 당해 깊은 나락으로 추락만 하던 경제 활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빅 스텝(big step) 금리 인하’(기준금리를 한꺼번에 서너 단계씩 인하)와 ‘헬리콥터 밴’식의 돈 푸는 정책을 추진했다.

뒤늦긴 했지만 유럽과 일본도 미국의 정책을 그대로 따랐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취임 이후 성장을 우선하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유럽 위기가 해결의 실마리를 잡아가고 있다. 일본도 아베 정부 출범 이후 발권력을 동원한 엔저 정책으로 주가가 급등하는 등 경제 활력을 되찾는 분위기다. 정도 차는 있지만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상대적으로 한국 정책당국의 태도는 소극적이다. 특히 통화당국이 그렇다. 요즘처럼 경제 활력이 다시 떨어질 때는 금리 인하를 통해서든 무엇이든 돈을 푸는 데 보다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부작용이 우려된다면 경제 활력을 되찾는 우선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하고 난 이후 그 때 가서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리고 돈을 회수하면 된다. ‘정책 운용의 묘’를 살려야 할 때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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