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인사청문회 異說

입력 2013-02-25 17:13   수정 2013-02-26 00:49

아직도 협상중인 정부조직 개편법…신상털기의 카니발리즘 된 청문회
정치보복 선거불복 악습 끊어야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단상에는 총리도 각료도 없었다. 나홀로 대통령이었다. 뭐, 그 정도야 어떠냐고 되물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원래 추종을 불허하는 고독인 아니었던가 말이다. 세상의 잡스런 고독과 상실을 모두 덮고도 남음이 있는 개인적 역정이었다. 취임식 광장에는 봄볕이 완연했지만 33년 만에 청와대에서 맞은 첫날 밤공기는 아직 차가웠을 것이다. 정치는 원래 차가운 칼과 같은 것일까. 아니 예부터 권력은 뼈를 바수는 도끼에 비유돼 왔던 터다. 정치는 증오와 복수의 순치된 절차다. 조용히 갈등을 누그러뜨리는 장치가 바로 정치 아닌가. 정치 언어가 통합과 용서와 화해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감춰야 할 것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지금 박근혜 정부에 총리도 없고 각료도 없는 것은 어찌보면 여당의 업보(業報)다.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에도 내각은 반쪽인 채였다. 거슬러가면 DJP의 김종필도 6개월을 총리서리로 견뎌냈다. 그리고 총리 후보들이 줄줄이 낙마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비열한 공격을 받았다. 물론 대통령의 선거 개입은 분명한 탄핵 사유다. 그러나 법적 요건을 채웠다고 해서 정치적 복수를 부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광란의 촛불집회에 걸려든 것은 선거 결과에 대한 불복이요, 탄핵에 대한 복수였다. “너희들이 국회에서 해치운 일을 우리는 거리에서 해내겠다”는 것이 촛불의 명징한 저항논리였다.

대통령 선거 결과에 대한 불복이, 지금도 거리를 나뒹구는 수개표 홍보전단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자개표를 거부하고 수작업으로 개표하자는 주장은 보수의 단골 메뉴였다. 작년 대선 직전에도 수개표를 요구하면서 연판장을 돌렸던 쪽은 보수단체였다. 불복을 정당화하기 위한 은밀한 복선이 바로 개표 시비다. 정부조직 개편안은 지금도 민주당의 반대에 막혀 있다. 인사 청문회도 새누리당이 먼저 시작한 복수극이었다. 지구상에 미국과 필리핀에서만 운영된다는 청문회다. 그러나 인민재판을 방불하는 이런 청문회는 아니다. 한국의 청문회는 신상털기와 인격살해라는 국민적 오락거리가 되고 말았다. 키득거리며 은밀하게 이루어지던 인터넷 신상털기가 공론의 장을 점령했고 급기야 국민의 알권리로까지 선언되고 말았다. 조간 신문을 펼쳐들 때마다 오늘은 무엇이 폭로되며 누가 땅바닥에 내팽개쳐지는지를 보는 것은 실로 짜릿하고 퇴폐적인 취향이다. 여론의 카니발리즘이요, 이 시대의 사디즘이다. 더구나 도덕의 이름으로 포장된 카타르시스다. 도덕 수준을 다투어 내각을 구성하는 것은 동화책에나 나올 공직자 선정 절차다.

한국 민주주의는 그렇게 길을 잃었다. 정치적 복수를 법제화한 것이 청문회다. 낙마 대상자를 고르면서 암살자적 악의를 품는 곳이 청문회요, 그래서 증오가 합법화되는 의례다. 그 결과 돌을 던질 자격이 없는 자들일수록 더욱 준엄하게 돌을 던지는 역설이 드러난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지라”는 것은 그 위선을 깨고자했던 예수의 절규였다. 민주통합당은 몇 명을 떨어뜨린다는 수치목표까지 정해놓고 있는 터다. 말 그대로 여론재판이다. 예상되기로는 3월 말은 돼야 박근혜 정부는 출진 채비를 모두 갖출 모양이다.

정권이 바뀌면 역할극의 주인공들은 그들의 역할을 다시 바꿀 것이다. 아마 그때는 한 달이 아니라 두세 달 혹은 6개월이 지나야 새 정부가 출범할지도 모른다. 기발한 선거 불복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로의 정부 이양은 또 그렇다 치더라도 여야 간 정권 교체라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정치 진공이라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도 크다. 아니라면 청문회 제도가 무차별 확대되면서 국민적 신상털기가 횡행하는 만인의 전쟁상태가 오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최근의 기업체 임원 연봉공개 시도 또한 그런 경향성의 증거다.

실로 민주주의의 과잉이요, 일탈이며 인민재판적 상황이다. 진정 한국인 체질에 맞는다는 것인지. 도덕적 구호의 과잉은 종종 정치를 피로 물들이면서 갈등을 내재화한다. 그러나 잠이 깨면 악몽은 금세 잊혀진다. 알권리를 내세운 광기의 여론 책동전도 부디 지난밤의 악몽이기를 바란다. 과연 우리는 타인에 대해 무엇을 어디까지 알고 싶은 것일까.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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