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실패가 성공 낳는 토양 다져야 등

입력 2013-02-28 18:35  

신문의 칼럼이나 사설을 읽는 것은 글쓰기와 논술 실력을 향상시키는 아주 좋은 습관입니다. 칼럼이나 사설을 읽고 각각 500~700자 정도로 글을 요약하는 연습을 하면 대학입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시론] 실패가 성공 낳는 토양 다져야

이스라엘 벤치마킹한 ‘창조경제론’…과거 정책 업그레이드 수준 넘어
사회·교육·문화적 체질 혁신해야

요즘 이스라엘이 각광을 받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 정책 기조인 ‘창조경제론’이 이스라엘 경제시스템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천연자원이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인적자원을 잘 활용해 최첨단 산업들을 일군 시스템을 배우겠다는 것은, 역시 사람이 최고의 자산인 우리로서는 매우 바람직한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남쪽의 맛있는 귤이 우리나라에서 탱자로 변하지 않게 하려면 이스라엘의 ‘창조경제’가 가능했던 토양에 대한 연구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을 일군 유대인들의 상상력과 창의성, 끈끈한 협동정신은 그네들의 수천년에 걸친 고난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독특한 문화에서 기인한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첫째 유대인들은 대부분 준비된 창업자이다. 이스라엘 대학생의 80~90%가 취업 대신 창업을 희망하고,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 구글 공동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 같은 실리콘 밸리의 젊은 아이콘 상당수가 유대인이란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어려서부터 받아온 경제교육의 당연한 결과물이다.

유대인들은 세계 어디서든 13세에 ‘바미츠바’라는 성인식을 갖는다. 특이한 것은 이때 결혼식처럼 축의금을 받는다. 보통 우리돈 5000만원(미국 중산층 기준) 정도의 축의금이 들어온다고 한다. 이 돈의 소유권은 ‘열세 살 성인’에게 있다. 부모와 상의하지만 최종적으로 자기 책임 아래 예금이나 채권 심지어 주식으로도 운용한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경제교육이다. 20대가 되면 대부분 두둑한 종잣돈은 물론 현장 교육을 통해 터득한 ‘경제감각’까지 갖추게 된다. 돈과 실전감각이 있는 이들에게 창업은 아주 자연스러운 선택인 셈이다.

둘째 누구와도 격의없는 대화와 토론이 가능한 ‘후츠파’ 정신이다. 후츠파는 히브리어로 ‘뻔뻔스러운, 건방진’이란 뜻으로 유대인 사회에서의 대화와 토론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 알게 해준다. 가정에서는 물론 기업이나 정부, 심지어 군대의 장군과 사병 사이에서도 심하다 싶을 정도의 거침없는 토론이 이뤄진다. 어떤 안건이건 충분한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불합리하고 일방통행적인 지시가 먹혀들기 어려운 구조다. 기업과 정부의 의사결정이 상대적으로 투명하고 공정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 중 하나다.

벤처산업도 마찬가지다. 기술 개발이나 최종 투자결정 전에 이해관계자들의 질문과 대답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그러니 부실검증이나 편법 투자 가능성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벤처실패를 용인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난상토론을 통해 철저히 검증된 투자에 대한 실패를 의미한다. 실패가 교훈으로 이어질 수 있는 까닭이다.

셋째 글로벌 네트워크다. 구글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실리콘 밸리에 있는 수백개의 첨단 정보기술(IT) 회사들이 이스라엘에 연구소를 두고 있다. 여기서 개발된 기술이 실리콘 밸리를 통해 상업화된다. 이스라엘과 실리콘 밸리는 거의 일란성 쌍둥이처럼 움직인다. 이스라엘의 IT 수준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리콘 밸리를 움직이는 유대인 실력자들이 이스라엘과 끈끈한 연대감을 갖고 있다는 게 더 큰 요인이다.

수천년 동안 이 나라 저 나라 떠돌아다닌 탓인지 세계 각국에 퍼져 있는 많은 유대인이 현재의 국적보다는 자신의 뿌리인 이스라엘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 이들은 주변의 어떤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긴밀하게 돕는다. 특히 돈에 민감한 비즈니스 분야에서는 그런 끈끈한 유대관계가 더욱 두드러진다. 이스라엘의 국내 시스템만 살펴봐서는 이 나라 경제를 작동시키는 실질적인 동력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몇 가지 예만 봐도 이스라엘과 우리 경제의 생태적 환경은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인다. 새 정부가 추진하는 ‘창조경제’는 과거 정책을 단순 업그레이드하는 수준이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를 상상력과 창의성이라는 ‘창조역량’에 기반을 둔 새로운 체질로 혁신시키려는 시도라고 본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사회 교육 문화적 토양을 구축하는 노력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2월21일자 A39면

육동안 < 커리어케어 대표 한국컨설팅산업협회 부회장 dongin6@daum.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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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칼럼] 드골이 생각난다


청렴 강직한 드골…정치 안정 이뤄
시대 앞선 투자와 탁월한 외교력…앞을 보는 혜안도 돋보인 지도자


‘레 미제라블’ 열풍을 계기로 프랑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격변의 2차 세계대전을 치르고 전후의 혼란을 딛고 일어나 유럽의 중심국가로 우뚝 선 프랑스의 저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드골이라는 위대한 지도자의 리더십에서 그 해답의 일단을 찾을 수 있다.

드골은 두 번 조국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했다. 1940년 영국으로 망명한 드골은 그 유명한 6·18연설을 통해 나치 독일에 대한 계속 항전을 촉구했다. 1944년 8월 수도 파리를 수복하고 임시정부를 수립함으로써 프랑스의 주권을 회복시켰다. 1958년 5월 알제리 내전으로 제4공화정이 붕괴하자 드골은 “이 나라를 구원으로 이끌 의무가 본인에게 맡겨졌다”고 선언한다. 그는 알제리 내전을 진정시키고 대통령 중심제의 제5공화국을 출범시킴으로써 다시 한 번 조국을 살려냈다.

무엇보다도 드골의 위대함은 프랑스에 정치적 안정을 가져왔다는 점이다. 1946~1958년 내각책임제 하에서 내각의 평균수명은 6.5개월에 불과했고 21명의 총리가 바뀌었다. 드골은 대통령책임제를 채택함으로써 정치적 혼란을 극복하고 프랑스의 단점으로 지적되는 자율과 질서의 균형을 제도적으로 확립했다. 1958~2012년 기간 중 프랑스 대통령의 평균 재임기간은 10.8년으로 정치적 안정이 확보됐다.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말처럼 나폴레옹이 프랑스에 남겨 준 가장 큰 유산이 나폴레옹 법전이라면 드골이 남긴 위대한 유산은 제5공화국 헌법인 셈이다.

드골은 뛰어난 역사적 통찰력을 가지고 프랑스의 미래를 위해 과감히 투자했다. 장 모네와 지스카르 데스탱 같은 경제 전문가를 중용하고, 고속철 테제베, 미라지 전투기, 핵 개발, 원전 건설 등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과학기술 진흥에 노력했다. 오늘날 프랑스가 우주, 항공, 원자력 분야에서 세계 정상급의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 것도 드골의 시대를 앞선 투자 덕분이다.

드골은 매우 청렴한 지도자였다.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했고 늘 국가에의 봉사를 최우선시했다. 엘리제궁 집 전기료와 전화비를 지불하고 자녀와 친척들에게 일체의 특권을 허용치 않았다. 드골 임종 시 아들 필립이 향리 콜롱베로 귀향할 때조차도 사사로이 관용차량을 이용할 수 없었다. 72달러짜리 값싼 나무관에 입관되어 자기 딸 안느 옆에 안장됐다. 드골은 근접하기 어렵고 냉정한 지도자로 평가되곤 했다. ‘어릴 적에 냉장고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성격이 차갑다고 군 동료들이 비꼬고는 했다.

그러나 다운증후군에 걸린 막내 딸 안느에 대한 헌신, 아들 필립에 대한 엄하지만 자애로운 부성애, 콜롱베 주민들에게 보여준 애정은 드골이 따뜻한 심성의 소유자임을 잘 보여준다.

드골은 탁월한 외교가였다. 2차 대전 중 대독 항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처칠과의 긴밀한 동맹을 통해 루스벨트와 스탈린의 견제 속에서도 프랑스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 끌어올렸다. 보수파의 반대를 무릅쓰고 알제리 독립과 사하라 이남 프랑스령 국가의 탈식민지화를 용인했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세력균형에 노력한 점, 1964년 베이징 정부를 승인한 점 등은 드골의 외교적 탁견이 아닐 수 없다. 특히 1963년 엘리제 불독협력조약을 체결,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유럽의 평화와 세력균형을 도모했다. 1960년 미국 대선, 1962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패배한 닉슨의 정치적 재기를 확신하고 야인시절에도 변함없이 후대한 점은 드골의 뛰어난 예견력을 잘 보여준다.

그도 인간이기에 여러 가지 실정을 기록했다. 공공부문이 지나치게 비대화된 점, 농업부문 등이 과보호된 점, 고등교육 개혁을 소홀히 해 1968년 학원 소요가 초래된 점, 말년에 노쇠해 자신의 성공신화에 갇혀 버린 점 등은 안타까운 부분이다. 그러나 드골은 ‘프랑스가 위대하지 않다면 프랑스일 수 없다’는 ‘프랑스의 상징’이다. 소설가 앙들레 말로의 말처럼 ‘과거의 인물인 동시에 내일 모레의 인물’이다. 2005년 프랑스 공영 2TV가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프랑스 역사상 최고의 인물로 평가됐다. 누구도 드골이 있었기에 오늘의 프랑스가 건재함을 부인하기 어렵다.  ☞한국경제신문 2월 20일자 A38면

박종구 <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pjk@kopo.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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