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세에 현장 누비는 밸브 국산화 산 증인…"웨스팅하우스도 뚫었죠"

입력 2013-03-08 17:08   수정 2013-03-09 09:09

파워기업인 생생토크 - 김종배 삼신 회장

47년간 품질에만 매진…지멘스·도시바도 주고객
원전·석유화학 플랜트용…고부가 제품으로 승부
앞으로 전력수요 많은 중국·인도시장 공략할 것




1990년대 초 김종배 삼신 회장(당시 60대 초반·현재 83세)의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원자력발전소용 밸브를 어렵사리 국산화했으나 미국에 수출하기 위해선 미국기계학회(ASME)의 인증을 받아야 했다. 3t에 이르는 밸브를 미국으로 실어 나르려면 운송비만 줄잡아 17만달러 이상이 필요했다.

미국은 최대 시장이면서 다른 해외 시장 진출의 관문이었다. 여기서 인정받아야 다른 시장도 쉽게 뚫을 수 있었다. 1966년 창업 이후 20여년에 걸친 밸브 생산 경험을 토대로 원전용 밸브를 개발하는 것도 고난의 길이었지만 테스트 과정은 더 험난했다. 한 번에 끝날 줄 알았던 이 시험은 세 번에 걸쳐 이뤄졌다. 항공료만 50만달러 이상 들었다.

1차 테스트를 통과했는데 날벼락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미국 정부가 스리 마일(Three Mile Island) 원전 사고를 계기로 오랫동안 논의한 끝에 안전기준을 종전보다 3배 이상 높이기로 했으니 처음부터 다시 테스트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이 회사는 마침내 미국기계학회의 성능검증시험 요건을 통과했다. 이를 토대로 1995년 울진원자력 3·4호기용 밸브를 공급한 이후 2008년엔 세계적인 원전 기술보유업체 미국 웨스팅하우스에도 납품하게 됐다. 김 회장은 “웨스팅하우스에 납품했다는 것은 국제적으로 품질보증수표를 받았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충남 천안시 입장면에 있는 삼신은 밸브업체다. 연면적이 3만여㎡에 이르는 이 회사에 들어서면 주물공장에서 쇳물을 붓고 단조공장에서 쇠를 두드려 밸브를 만든다. 산업용 밸브다. 가정집에서 가스를 잠그거나 열 때 쓰는 그런 소형 밸브가 아니다. 밸브 한 개가 최소한 수백㎏에서 수천㎏에 이르는 거대한 제품이다. 밸브는 석유화학공장 발전소 등 산업 현장에서 꼭 필요한 부품이다. 기체나 액체의 이송을 막거나 열어줘 적정량을 통과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은 약 800억원에 달했다. 자회사인 삼신금속 등을 합치면 1200억원에 이른다. 모두 산업용 밸브로 올린 것이다. 이 중 약 70%를 해외 시장에서 일궈냈다. 해외 거래처는 웨스팅하우스를 비롯해 지멘스 알스톰 도시바 히타치 가와사키 미쓰비시 등이다. 국내 거래처는 한국전력 두산중공업 현대중공업 현대건설 삼성석유화학 등이다.

김 회장은 “우리가 만드는 밸브는 석유화학공장용 밸브를 비롯해 화력발전소용 밸브, 원자력 발전소용 밸브 등 144종에 이른다”고 말했다. 이 회사가 세계적인 업체와 거래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첫째, 47년 동안 밸브 외길을 걸으며 쌓아온 기술력이다. 한양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김 회장은 건설업체를 거쳐 창업했다. 서울 양남로터리 부근에서 종업원 5명을 데리고 시작했다. 건설업체에서 일할 때 배관과 밸브의 중요성에 눈을 떴고 이를 국산화하기로 마음먹었다.

밸브는 주조와 단조공정을 거쳐 만든다. 그중 단조공정은 해머로 꽝꽝 내리치며 쇠를 가공하는데 진동 때문에 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쫓겨나다시피 해 온수동으로 이전한 뒤 다시 천안 두정동으로 옮겼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김 회장은 “변두리나 벌판에 공장을 짓고 난 뒤 한참 지나 주택이나 아파트가 들어서면 민원이 제기돼 쫓겨가기 일쑤였다”고 회고했다. 그래서 3년 전 지금의 천안 입장의 산자락으로 옮겼다.

김 회장은 “석유화학 공장용 밸브를 시작으로 점차 화력발전소용 밸브 등 고부가가치 제품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영광원전에 외국산 밸브가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자극을 받아 원전용 밸브 국산화에 나섰다. 원전용 밸브는 산업용 밸브 중 가장 까다로운 제품 가운데 하나다. 고온 고압에 견뎌야 하는 것은 물론 미세한 틈새도 허용하지 않는 제품이다. 주물 단조는 물론 용접도 완벽하게 이뤄져야 한다.

어렵게 이를 개발하고 인증받은 뒤 2008년부터 웨스팅하우스 프로젝트를 수주하면서 급속도로 성장했다. 김 회장은 “웨스팅하우스 직원들은 수십 차례 천안으로 내려와 제조공정 완제품의 품질 내구성 등을 꼼꼼하게 점검했다”고 했다. 용접 부위에 균열이라도 생기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둘째, 기술 개발에 대한 집념이다. 김 회장은 초창기에 자체 기술이 없어 일본 오카노밸브와 제휴를 맺어 기술을 익혔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로열티를 내자 중간 단계를 자체 개발로 뛰어넘으면서 신속히 기술을 습득했다. 아울러 KIST 등과의 협력을 통해 국산화에 나섰다. 현재 천안 공장엔 10여명의 정예 인력으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이 회사가 생산하는 대부분 밸브는 ‘국내 최초’로 개발한 것이다. 아울러 설계에서 재료제조 제품시험 유지보수까지 일관 체제를 갖췄다.

셋째, 글로벌 시장 개척이다. 김 회장은 국내 시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글로벌화에 나섰다. 영어와 일어 중국어를 구사하는 그는 미국 독일 등 각종 해외 규격을 따낸 뒤 원전 강국인 프랑스업체와 치열한 경쟁을 벌인 끝에 중국 링아오 원전용 밸브 납품권을 따냈다. 김 회장은 “중국 기업에 한국 제품의 우수성을 수십 차례 설명하고 원전 현장에서 비교한 자료를 제시해 결국 공급권을 획득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를 시작으로 중국 내 원전 20기에 밸브를 공급했고 일본과 미국에도 납품하고 있다. 그는 “특히 중국과 인도는 발전설비 수요가 무척 큰 나라여서 이들 시장 공략에 적극 나설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김 회장은 83세의 나이에도 인터뷰 도중 메모를 보지 않고도 숫자 거래처 부품명 등을 정확히 기억했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작업복을 입고 안전모를 쓴 채 현장을 누빈다. 밸브를 자식처럼 아끼는 영원한 밸브쟁이인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도 기술 개발과 해외 시장 개척을 진두지휘할 생각이다.


"본인 원하면 얼마든지…정년 넘어도 계속 근무"

삼신의 정년은 58세다. 그러나 공장 안에는 환갑이 지난 사람들이 많다. 본인이 원하면 얼마든지 더 일할 수 있도록 회사가 배려하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다. 몇몇 사람은 70세가 넘었는데도 회사에서 고문이라는 타이틀을 줘서 예우한다. 회사에서 동고동락한 사람들을 대접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김종배 회장의 철학이다. 그는 “회사명으로 삼은 ‘삼신(三信)’은 신뢰 신용 신의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요즘 신뢰가 사회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지만 김 회장은 반 세기 전 창업 당시에 이미 신뢰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한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신뢰’는 구성원 간 믿음을 의미한다. ‘신용’은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어 고객에게서 얻는 믿음이다. ‘신의’는 종업원 장래를 회사가 보장하는 것을 뜻한다. 정년이 지나도 더 일하도록 한다든지, 종업원 자녀를 위해 학자금을 지원하는 것도 신의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김 회장은 자신이 태어난 김해의 지명 ‘녹산’을 따서 재단법인 녹산을 세웠고 이를 통해 장학사업을 병행하고 있다. 그는 “종업원들은 회사 발전의 원동력”이라며 “이들과 더불어 사는 경영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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