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금융시장 동향을 얘기할 때 등장하는 동물 중 하나다. 주식시장의 ‘왝더독(Wag The Dog)’이란 용어가 대표적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의미다. 주식에서 파생한 선물·옵션이 몸통 격인 증시를 출렁이게 하는 데서 비롯됐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도 중앙은행과 시장과의 관계를 얘기할 때 개를 자주 인용한다. “개가 꼬리를 물면 안된다”는 표현을 종종 쓴다. 중앙은행이 항상 시장의 예상이나 의견에 맞춰 통화 정책을 결정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다.
이 말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부의장을 지낸 앨런 블라인더 프린스턴대 교수가 처음 썼다.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못지않게 시장으로부터의 독립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중앙은행이 시장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시장의 ‘짧은 시계(時界)’를 중앙은행 자신의 것으로 암암리에 받아들이게 된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개가 꼬리를 뒤쫓는’ 위험한 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위협받는 '중앙은행 독립성'
한국 채권시장은 이달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 결정을 앞두고 지난달부터 ‘꼬리를 물라’고 한은을 압박하고 있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지난달 말 사상 최저인 연 2.45%로 떨어졌다. 기준금리(2.75%)보다 0.5%포인트나 낮다. 장·단기 금리가 역전된 지도 오래다. 지난 10월 이후 5개월 연속 금리를 동결했지만, 이번만은 버틸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폭넓게 퍼져 있다.
요즘엔 정부와 정치권도 가세하고 있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경기부양정책 패키지에는 금리 등 금융 부문이 포함돼야 한다”고 한 데 이어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한은이 금리인하 등 경제 활성화 조치를 적극 검토해 주기를 촉구한다”며 대놓고 금리인하를 요구했다.
결과적으로 한은은 시장과 정부, 정치권으로부터 압력을 받는 ‘3중 포위망’의 상황에 놓여 있다. 노조까지 나서 ‘중앙은행 독립성’을 주창하고 있지만, 포위세력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만약 이달에도 금통위가 금리를 내리지 않으면 ‘몽니’를 부린다는 힐난이 쇄도할 것 같은 분위기다.
스스로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중앙은행 독립성이 이처럼 위협받고 있는 데는 한은의 책임도 적지 않다. 그동안 내부적으로 어떤 치열한 토론과 논쟁을 거쳐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현 경기상황에 대한 한은의 대응이 전반적으로 안이하다는 게 많은 국민들의 생각이다. 한은 자신은 ‘꼬리를 무는 개가 돼서는 안된다’는 진중함이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물가안정이라는 내부 목표에만 매몰돼 있는 ‘조직 이기주의’로 폄하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올 들어 경기가 미약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김 총재의 진단은 강력한 부양신호를 원하는 많은 경제 주체에 실망감을 안겨 줬다. 김 총재 특유의 난해한 용어 구사와 현학적 분석도 화끈한 대책을 원하는 이들에겐 ‘말 장난’으로 받아들여졌다. 실제와 이미지 간 간격이 벌어진 것도 궁극적으로 한은의 책임이다.
어떤 경제든 금리 결정은 ‘큰 선택’이다. 가계 기업 정부 등 모든 경제 주체에 지속적이면서도 광범위한 영향을 끼친다. 한은은 이달 11일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다. 논란을 최소화하려면 현 경제 상황에 대한 냉철한 판단과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충분한 설명이 이뤄져야 한다. 김 총재의 어법도 보다 ‘국민 친화적’이었으면 좋겠다. 다 듣고 난 뒤에 “도대체 우리 경제가 어떻다는 얘기냐”는 반문이 나온다면 지금 한은이 처해 있는 상황이 더 꼬여갈 수도 있다.
서정환 경제부 차장 ceose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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