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과 날줄] 웃으며 찌르되 같이 살기

입력 2013-04-05 17:04   수정 2013-04-06 09:52

"술자리 방담같은 세남자 이야기
서로 입장 달라 싸울 순 있지만
결국 같이가야 한다는 것 보여줘"

신수정 문학평론가,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한 종합편성채널의 프로그램 ‘썰전’이 화제다. ‘독한 혀들의 전쟁’을 표방하고 있는 ‘썰전’은 이름 그대로 온갖 ‘썰’들이 난무하는 정치, 시사 토크 프로그램이다. 막말 파동으로 잠정은퇴 선언을 했던 개그맨 김구라, 아나운서 집단 모욕죄로 고소를 당했던 강용석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 그리고 진보를 표방하는 정치평론가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등 세 명의 남자가 테이블에 마주 앉아 한 주간의 시사적 이슈를 점검하며 각자 캐릭터에 근거한 특유의 입담을 선보이는 이 프로그램은 아직 한 자릿수대 시청률에 불과하지만 온라인 상에서는 관심이 높다.

따지고 보면,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독한 풍자로 풀어낸다는 점에서는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 ‘나꼼수’가 연상되고, 민감한 사안에 대해 직접화법을 구사한다는 점에서는 일명 돌직구 화법으로 유명한 공중파 프로그램 ‘라디오 스타’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썰전’은 ‘나꼼수’에 비해선 선명성이 좀 떨어지고, ‘라디오 스타’에 비해서는 웃음과 대중성이 약하다. 다만, B급 정서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이 공통점이라고 할까. 공중파의 정통 프로그램들, 예컨대 정치 시사 토론 프로그램의 백미라고 할 ‘백분토론’과 연예인 초대 프로그램의 지존 ‘힐링 캠프’ 등의 정석적 플레이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사람들을 위한 ‘썰전’의 아웃사이더적 감성은 흥미롭긴 하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이번 주 ‘썰전’의 주요 소재 가운데 하나는 국회의원들의 재산공개에 관한 것이었는데, 사회자 역할을 맡고 있는 김구라가 국회의원들의 자산 공개 결과가 나왔다고 말문을 열면, 전직 국회의원인 강용석이 국회의원과 돈에 얽힌 구체적인 실상을 폭로하고 국회의원의 재산은 당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고 넌지시 말머리를 돌린다. 소위 적정 재산이라고 할 만한 액수가 새누리당의 경우 10억에서 20억 사이, 민주당은 5억에서 10억, 통진당은 1억에서 마이너스 1억원이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통진당의 ‘마이너스’ 대목에서 출연자 모두 박장대소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전 MBC 사장 김재철의 자진 사퇴를 거론하며 해임과 사퇴가 ‘퇴직금’ 액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가운데 고려대 출신 이철희가 “왜, 또 고대냐”고 볼멘소리를 한다. 그러면 출연자 모두 이명박 전 대통령을 염두에 둔 채, ‘고대 스타일’에 관한 우스갯소리 한마디씩을 주고받는다.

말이 시사토크 프로그램이지 제대로 된 토론도 없고 날카로운 현실 분석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 술자리 방담 같은 이 이야기들을 브라운관으로 지켜보고 있노라면 같이 따라 피식피식 웃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왜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들에 열광하는 것일까?

우선 공중파 프로그램의 제왕적 지위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종합편성채널과 관련,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종편이 대중의 매체 선택권을 넓혀놓은 감은 있다. 이렇게 알 권리가 확대되면, 이제 우리에게 더 이상의 ‘가오’는 없다. 모든 것이 까발려지고 백일하에 드러나는 세상에서 신비주의와 비밀을 고수하는 것은 철 지난 패션처럼 보인다. 이번 공직자 청문회도 그렇지만, 인사권에 관한 비밀주의 따위는 이제 말이 안 된다. 밀실에 모여 쑥덕거려봤자 결국 세상을 속일 수는 없는 것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썰전’을 통해 우리는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끼리 어쨌든 공존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는 점이다. 김구라와 강용석, 이철희. 서로 닮은 듯 다른 세 사람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정치적 환경을 다시 한번 환기시킨다.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고수하고 다른 쪽 의견에 흠집을 낼 수는 있지만, 결국 서로 같이가야 한다는 사실, 우리는 이 엄연한 사실 앞에서 새삼 웃음이 얼마나 절실한 삶의 윤활유인지 깨닫는다. 웃으면서 찌르되 서로 공존하기. 삶의 정치적 기술이 달라지고 있음을 알겠다.

신수정  < 문학평론가,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ssjjjs@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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