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제주에는 올레길만 있다?…유배길 따라 걸어보자

입력 2013-04-07 16:51   수정 2013-04-08 05:01

제주 유배길

200여명 머물던 유배지 제주…추사 김정희 생활하던 곳…총 26㎞ 체험 코스 만들어
고독 속 추사체 완성한 집념…아내 향한 그리움 느낄 수 있어





조선 중기 최고의 문신이자 서화가였던 추사 김정희(1786~1856)가 유배됐던 제주도에 최근 길이 생겼다. 옛 선조들이 걸었던 형극의 길이 ‘제주 유배길’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탄생한 것. 아름다운 풍광과 세계자연유산 섬으로 유명한 제주도는 조선시대 대표적 유배지였다. 추사를 비롯해 우암 송시열, 면암 최익현 등 당대 최고의 지식인과 정치인 등 200여명이 그렇게 제주를 거쳐 갔다.

◆가시울타리 속 절대고독의 추사

유배란 것이 정치적 반대파를 효과적으로 묶어두는 수단이기에 한 번 가면 돌아오기 어려운 섬으로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현직에 있을 때야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로 대단한 권세를 누리지만 막상 세도에 밀리면 절해고도(絶海孤島)의 유형지로 보내지게 마련이다.

유배길은 고독하고 슬프다. 제주로 떠나는 유배길은 더더욱 슬프다. 조선술(造船術)이 덜 발달했던 예전에는 제주 바다길을 헤치고 가려면 목숨을 걸어야 할 때가 허다했다. 그러니 유배지에서 탈출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고 한 번 유배되면 언제 유배가 풀려 한양으로 올라갈지 기약할 수도 없었다. 추사는 55세에 정치적 음모에 휘말려 혹독한 고문을 당한 뒤 1840년부터 무려 9년간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추사의 유배는 단지 섬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아예 집 바깥에도 나갈 수 없는 위리안치(圍籬安置)형이었다. 죄인을 가시로 둘러싼 담에 가두고 바깥출입까지 하지 못하게 하는 요즘 말로 가택연금형이다.

추사가 위리안치된 곳은 서귀포시 대정읍이었다. 당시 대정은 제주도에서도 가장 멀고 험한 곳이었다. 보통의 유배형이면 가족을 대동할 수 있었지만 위리안치형의 경우 가족과도 생이별을 해야 했고 아낙네와의 접촉조차 금지됐다. 추사는 부인 예안 이씨에게 가슴에 맺힌 그리움을 담아 편지를 보냈지만 이씨는 추사가 유배된 지 2년 만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지도 모르고 추사는 건강을 염려하는 편지를 계속 써 보냈다고 한다.

◆유배지에서 남긴 추사체와 세한도

보통 사람이라면 1년도 버티지 못할 힘겨운 유배 생활 중에 추사는 특유의 필체인 추사체를 완성했다. 1844년에는 필생의 역작인 세한도(歲寒圖·국보 제180호)를 남겼다. 추사의 유물들은 추사 유배길이 시작되는 지점의 제주추사관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추사관은 추사의 삶과 학문, 예술세계를 기리기 위해 2010년 5월 건립됐다. 추사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제주도 유배 중 제자 이상적에게 그려준 세한도다. 추사가 사제 간의 의리를 잊지 않고 두 번씩이나 북경으로부터 귀한 책들을 구해다 준 이상적의 인품을, 날씨가 추워진 뒤에 제일 늦게 잎을 떨구는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에 비유하며 답례로 그려준 것이다. 이상적은 이듬해 이 그림을 가지고 북경에 가서 장악진·조진조 등 그곳 명사 16명에게 보여줬다. 명사들은 추사의 글과 그림에 요즘 말로 댓글 격인 찬시(讚詩)를 붙여주었다.

추사관을 나서면 추사가 머물렀던 제주도민 강도순의 집으로 이어진다. 유배 생활 중에도 제주 유생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던 추사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돼 있다. 추사유배길 제1코스 ‘집념의 길’로 향하는 길에 푯말이 보인다. “이 아이는 반드시 명필로 세상에 이름을 알릴 터이나 운명이 기구할 것이다.” 조선 영·정조 때의 문신 채제공(1720~1799)이 추사가 일곱 살 때 문앞에 써 붙인 입춘첩(立春大吉)을 보고 걱정하면서 예언한 말이다. 예언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고 추사는 형극의 길을 걸어야만 했다. 추사의 이야기가 진하게 배어 있는 유배길은 비장하면서도 아름답다. 제주관광공사는 최근 추사 김정희의 유배길을 돌며 역사를 배우고 유배지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스스로 유배해 자유 찾는 현대 유배길

추사 유배길은 모두 3개 코스로 구성돼 있다. 추사 유배지를 중심으로 추사와 관련 있는 곳들을 둘러보는 제1코스는 ‘집념의 길’이다. 제주추사관에서 시작해 정난주 마리아묘, 대정향교를 거쳐 다시 제주추사관으로 돌아오는 약 8㎞의 순환코스로 약 3시간이 걸린다. 제2코스 ‘인연의 길’(8㎞)은 추사의 한시와 편지, 차 등을 통해 추사의 인연들을 떠올리는 길이다. 특히 제주옹기 문화를 만날 수 있는 공간으로 추사유배지에서 시작해 오설록의 녹차밭까지 이어진다.

제3코스 ‘사색의 길’은 제주 바다와 오름, 계곡의 경치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코스다. 제주에서 유채꽃이 가장 화려한 산방산을 만날 수 있는 10㎞의 코스로 보통 걸음으로 4시간이 걸린다. 3코스로 접어드니 산방산 아래는 온통 유채꽃 천지다. 제주 올레길과 인접한 길이지만 색다른 맛이 있다.

예전의 유배길이 형극의 길이었다면 요즘의 유배길은 스스로 유배를 택하는 자발적 유배자의 길이다. 유배길 길목마다 지천으로 피어 있는 유채꽃과 벚꽃이 눈을 즐겁게 한다. 성산 일출봉과 함께 제주도에서 유채꽃이 가장 화사한 산방산에는 허리띠처럼 빙 둘러 유채가 물들어 있다. 하늘은 파랗고 꽃은 화사하고 구름은 뭉글거리는데 유배길이 이토록 낭만적이어도 되는 것일까.

서귀포·제주=최병일 여행·레저 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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