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기업과 '바람전쟁' 40년…공조용 송풍기 强者로 우뚝…칠순에 '수출기업 변신' 꿈

입력 2013-04-12 17:44   수정 2013-04-12 21:52

파워기업인 생생토크 - 정동기 금성풍력 사장

날개중량 1g만 틀려도 불량…정밀 가공능력 시장서 인정…연 1000만弗 수입대체 효과
삼성·현대 등 대기업과 동행…불황에도 꾸준한 성장…아산에 신공장 "제2도약"




인천 남동산업단지 내 공조용 및 산업용 송풍기업체 금성풍력(사장 정동기·69). 연말이 되면 이 회사로 쌀을 가득 실은 트럭이 들어온다. 전남 나주에서 실려온 것으로 20㎏ 단위로 포장돼 있다. 회사는 이 쌀을 직원들에게 2포대씩 나눠준다. 가족이 많은 사람에겐 2포대를 더 준다. 여직원들은 힘에 부쳐 낑낑대며 이를 옮긴다. 어찌 보면 무척 거추장스러운 일이다. 돈으로 주면 동네 마트에서 주문해 쌀을 배달받을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복잡한 일을 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정동기 사장의 애환이 서려 있다. 전남 장성군에서 태어나 서삼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그는 6·25 전쟁을 계기로 부모를 여의고 고모댁에서 더부살이했다. 어릴 적 그의 꿈은 쌀밥을 배불리 먹는 것이었다. 그때의 배고픔을 기억하며 연말마다 이런 행사를 하는 것이다.

정 사장은 제대 후 동생이 운영하는 모터공장에 취직해 일을 배운 뒤 31세 되던 1975년 청계천에서 창업했다. 한 평짜리 사무실에서 출발해 수많은 어려움을 딛고 공조용 송풍기 분야에서 작지만 단단한 기업을 일궈냈다.

이 회사의 종업원은 90여명, 지난해 매출은 약 200억원에 달했다. 이 회사가 송풍기를 납품한 곳은 삼성전자 현대건설 현대중공업 현대엠코 이마트 KT&G 서울대 이화여대 등 수백 곳에 이른다.

송풍기는 모터를 통해 날개를 회전시켜 바람을 보내는 장치다. 이 회사는 산업용 및 공조용 송풍기를 제작하며, 그중 주력은 공조용이다. 모양이나 압력·용도에 따라 종류는 수십 가지에 이른다. 손으로 가볍게 들 수 있는 소형 제품에서부터 날개 직경이 2~3m에 이르는 것도 있다. 바람을 이용해 냉난방이나 집진을 하고 열처리로(爐)의 내부를 균일한 온도로 유지하기도 한다.

예컨대 여름철 대형마트는 개별 에어컨으로 냉방을 하는 게 아니다. 매장이 워낙 넓다 보니 기계실 공조기에서 만들어진 찬바람을 거대한 송풍기를 통해 덕트로 보낸 뒤 천장의 구멍을 통해 매장에 불어넣는다. 이때 사용되는 송풍기가 바로 이 회사가 만드는 것이다.

송풍기는 어찌 보면 단순하다. 모터에 축을 연결한 뒤 날개를 달면 된다. 선풍기와 비슷하다. 하지만 기술적으론 그리 간단한 제품이 아니다. 정 사장은 “각각의 날개 중량이 서로 1g만 틀려도 진동이 생기고 소음이 커질 정도로 예민한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공정도 까다롭다. 철판을 자르고 CNC머신으로 샤프트를 가공한 뒤 날개를 만들고 용접을 한다. 그는 “핵심공정 중 하나는 공기 흡입구”라며 “마치 금관악기의 벨처럼 생긴 공기흡입구는 부드러운 곡면으로 가공해야 바람이 물 흐르듯 들어와 성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철판 표면은 작은 쇠구슬로 때려 미세한 자국을 만든다. 페인트를 골고루 입히기 위한 것이다. 마지막 조립을 앞두고 검사공정을 거친다. 날개 간 무게 차이가 나지 않는지, 소음이나 진동은 없는지, 풍량은 제대로 나오는지 등을 점검한다.

이 회사가 공조용 송풍기 분야에서 작지만 강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직원들과의 끈끈한 관계다. 이 회사에는 장기근속자들이 많다. 정 사장은 “언젠가 조사했더니 직원들의 평균 근속연수가 12년에 달했다”고 말했다. 이

이 잦은 중소기업으로선 쉽지 않은 일이다. 정 사장은 “이들과 가족처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직후엔 회사가 큰 어려움에 빠졌다. 거래업체들이 연쇄적으로 무너지면서 못 받은 외상매출금이 무려 30억원에 달했다. 당시 이 회사의 연매출은 20억원에 불과했다.

정 사장은 “문닫을 위기에 놓였는데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월급 일부를 반납하며 힘을 내서 회사를 살리자고 용기를 북돋워 줬다”고 회고했다. 정 사장은 임직원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최근 3년 연속 특별보너스를 줬다.

둘째, 다양한 제품 개발을 통한 국산 대체다. 이 회사는 다양한 기술을 개발해 글로벌 기업이 장악했던 국내 시장을 속속 되찾고 있다. 정 사장은 “공조용 송풍기는 그동안 유럽과 미국의 거대기업이 장악해왔다”며 “그동안 개발한 30여종의 송풍기 대부분이 이들과의 경쟁 속에서 시장에 뿌리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산제품의 성능을 인정받기 위해 원심형 송풍기에 대해 2005년 미국 공조기기협회 인증을 받았다. 아울러 부품·소재전문기업으로 선정됐고 고효율 에너지기자재, 고효율 송풍기 인증을 받은 모델도 37개에 이른다.

송풍기 부품을 만드는 기계도 자체 개발했다. 벨트커버제작기계가 한 예다. 정 사장은 “우리가 개발한 제품의 연간 국산대체 효과는 1000만달러가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대통령표창·지경부장관표창 등 수많은 상과 표창장을 받았다.

셋째, 대기업과의 동행이다. 이 회사는 삼성 현대 등 굵직한 거래처를 갖고 있다. 요즘과 같은 불황에도 꾸준히 성장하는 까닭이다. 대기업이 사업을 확장하거나 수주가 늘면 자사 매출이 늘어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요즘엔 아들인 정형권 이사(36)가 가세해 정 사장의 짐을 덜어주고 있다. 인하대 기계공학과를 나와 5년 동안 일본계 자동화부품업체에서 일하던 정 이사는 2007년 입사해 영업일선에서 뛰고 있다.

창업한 지 40년을 바라보는 정 사장은 이제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충남 아산에 2만㎡의 부지를 확보해 시설 확장에 나서는 것이다. 인천 공장의 3배에 이르는 규모다. 정 사장은 “약 150억원이 투입되는 아산공장이 3년 뒤 완공되면 우리 회사는 내수중심기업에서 수출기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사업 위기때마다 아내·직원들 헌신…칠전팔기 이뤄냈죠

정동기 사장의 사업역정은 고난의 연속이다. 2차 오일쇼크 때문에 수주가 격감해 어려움을 겪었고 공장을 청계천에서 구로동으로 옮겨 자리를 잡을 만하니 주민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정 사장은 “당초 이곳엔 우리 공장밖에 없었으나 나중에 주택이 들어서면서 ‘시끄럽다’며 이전을 요구했다”며 “이 때문에 파출소 등지로 불려 다녔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때 거래처가 잇따라 도산하면서 거액의 부도를 맞자 “밤낮없이 열심히 일한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이 닥치는가”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수많은 어려움을 겪은 그가 다시 일어선 데는 직원들의 헌신과 아내의 격려가 있었다.

정 사장은 27세이던 1971년 결혼했다. 4년 뒤 청계천에서 창업했다. 당시 그의 집은 창신동 달동네에 있었다. 기름때로 찌든 작업복을 저녁에 벗어놓으면 아내는 빨아 새벽에 다리미로 눌러 말린 뒤 아침에 정성껏 내놓았다. 한 벌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어린 딸을 업고 매일 청계천으로 점심과 저녁밥을 지어 날랐다. 그는 아내를 자신의 오늘이 있게 해준 ‘스승’이라고 부른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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