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강호갑 중견기업연합회장 "죽어라 회사 키워 중견기업 되니 대출 끊겨…눈물 났죠"

입력 2013-04-19 17:34   수정 2013-04-19 23:12

미국서 회계사로 일하다 큰 형 회사 도우려 귀국
車 부품사 인수로 사업 시작…현대·기아차에 차체 납품…14년 만에 매출 8900억 그룹 키워
매년 지구 8바퀴 거리 출장…피로·포기 모르는 '에너자이저'




이 억센 경상도 발음의 기업인 사전에는 ‘피로’나 ‘포기’란 단어가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출장으로 매년 평균 20만마일(32만㎞)을 난다. 지구 8바퀴 거리다. 회사 경영에 손댄 지 25년간 쌓은 항공사 마일리지가 총 350만마일(약 564㎞)로 지구를 140바퀴 돈 셈이다. 술은 화끈한 보드카를 좋아한다고 했다. 내년이 환갑이지만 지금도 허리띠를 풀고 새벽까지 술을 마신다. 그 열정으로 다 쓰러져가는 차 껍데기 회사(그는 자동차 차체부품 제조업체를 차 껍데기 회사라고 표현했다)를 인수한 지 14년 만에 계열사 6개(미국과 러시아 현지법인 포함), 종업원 2800명, 매출 8900억원(지난해 기준)의 중견 그룹으로 키워냈다.

지난 2월 말 중견기업연합회장에 취임한 강호갑 신영그룹 회장(59)은 자타가 공인하는 ‘에너자이저’다. 지난 15일 오후 7시 서울 신사동 한정식집 ‘예당’에서 시작한 인터뷰는 식당을 옮겨가며 새벽 2시까지 이어졌다. 그는 독한 술을 좋아한다고 했지만 참석자들을 배려해 전통 소주인 ‘화요 25도’를 주문했다. 예당 주인장이 직접 개발했다는 보리매생이죽과 유채샐러드, 봄동전이 나오자 술잔이 돌기 시작했다. 보리매생이죽은 보릿가루와 우유를 섞어 맛이 고소했고, 아마씨 소스를 사용한 유채샐러드는 새큼했다. 배추잎에 가루를 입혀 튀긴 뒤 새우젓을 얹은 봄동전은 전통주 뒤끝을 깔끔하게 정리해줬다. 술잔이 몇 순배 돌자 그가 본격적으로 인생역정을 풀어놨다. 화법은 화통한 목소리에 어울리는 돌직구성이었다.

강 회장이 경영하는 신영그룹의 내수 비중은 89%다. 현대·기아차에 측면 차체와 후륜패널 같은 차체를 납품하고 있다. 수출은 1000억원 정도다. 차체를 찍어내는 금형을 제작해 BMW 폭스바겐 포드 GM 같은 해외 자동차 회사에도 수출하고 있다.

▷중견기업으로 올라간 뒤 힘들었다고 들었다.

“그 얘기는 밤을 새워도 다 못한다. 1999년에 다 쓰러져가는 기업을 인수해 죽어라 키웠더니 2008년 대기업으로 분류됐다. 그때만 해도 산업법에는 중소기업과 대기업만 있지 중견기업이라는 게 없었다. 대기업이 되니 갑자기 금융권에서 목을 조르기 시작하더라. 그해가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난 이듬해다. 당시 울산공장에 ‘핫프레스포밍’(철을 뜨겁게 달궜다가 급히 식혀 형상을 만드는 공법) 장비를 설치하려 했다. 단단하고 가벼운 부품을 만들 수 있는 장비였다. 당시만 해도 최첨단이었다. 은행에서 200억원을 대출받기로 했다. 발주도 하고 계약금도 줬다. 그런데 갑자기 K은행에서 대출을 못 해주겠다고 하더라. 그때 그 은행 여신본부장이 대학 친구였는데,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정부가 발표한 ‘중소기업 의무대출 비율 80% 룰’ 때문에 그렇다고 했다.”

▷중소기업 의무대출하고 무슨 관계가 있나.

“우리에게 200억원을 빌려주면 중소기업에 800억원을 대출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상황에서 중기 대출을 그만큼 늘릴 수 없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우리한테도 대출하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회사가 흔들렸다. 피눈물이 났다. 세 번을 울었는데 한 번은 정말 살인을 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더라. 결국 별짓 다해서 3개월 만에 해결했다. 이런 제도는 빨리 고쳐져야 한다.”

▷은행에 많이 실망했겠다.

“그렇다. 기업이 어려울 때 금융이 우산을 뺏어버린다는 말을 실감했다. 외국은 어떤가. 요즈마펀드(이스라엘 벤처펀드로 자산이 4조원에 달한다)를 봐라. 지난달 어느 행사장에서 이갈 에글리히 요즈마펀드 회장을 직접 만나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해서 성공했냐’고 했더니 답이 참 단순하더라. 전문가들이 철저하게 투자 심사를 하고, 투자 후에는 해외 판매 같은 사후관리까지 서비스한다고 했다. 우리나라 금융역사가 100년이 넘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요즈마펀드 같은 게 안 나오는지 모르겠다.”

▷자동차 부품사업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원래 자동차의 ‘자’자도 몰랐다. 그런데 1998년 현대와 기아차가 합쳐지는 것을 보며 혼자 생각했다. ‘대한민국에서 자동차산업이 망하면 대한민국이 망하는 거 아닌가. 무조건 자동차 부품회사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회사를 바로 설립했나.

“아니다. 마침 그때 경북 영천에 부도가 난 차 껍데기 회사(신아금속)가 경매로 나왔다. 그걸 낙찰받은 게 1999년 12월이었다. 인수 당시 매출이 190억원, 종업원이 170명을 조금 넘었다. 그걸 14년 만에 조 단위 매출에 육박하는 회사로 키웠으니 정말 대단하지 않나.”

그가 너털웃음과 함께 “이 대목에서 한 잔”하며 술잔을 돌릴 때 이 식당의 자랑인 ‘흑임자더덕구이’(더덕을 구워 꿀 소스를 바른 다음에 흑임자 가루를 묻힌 요리)가 나왔다.

언뜻 봐서 사업가 스타일이라는 느낌이 드는 그는 원래 외교관을 꿈꿨다고 했다. 그러나 선친(강학용 전 진주교육감)의 반대로 꿈을 이루지 못했다. 고려대 경영학과 74학번인 강 회장은 대학생활에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과 친구인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 김동수 전 공정거래위원장, 장하성 고려대 교수, 설훈 민주통합당 의원 등과 어울렸다. 강 회장이 기업 경영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친구 때문이었다. 군 제대 후 소일하던 그에게 대학 친구가 자기 회사에 들어와 경영에 참여해줄 것을 요청했다. 회사에 들어간 뒤 유학길에 올랐고, 경영학 석사(MBA)를 마치고 난 다음 미국에서 회계사로 일했다.

▷어떻게 귀국하게 됐나.

“조선 부품업체를 하던 큰 형님이 불렀다. 당시 영어로 해외 영업을 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1988년 한국에 오면서 집사람에게 딱 2년 반만 일하고 다시 (미국으로) 가자고 했다. 그런데 그게 벌써 25년을 넘었다. 본의 아니게 집사람에게 ‘사기’를 친 셈이다. (웃음)”

강 회장은 “사람은 항상 자신의 일을 내려놓고 다른 일을 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사업을 하게 된 것도, 사업 중에서도 자동차 부품 사업을 하게 된 것도 다 계획했던 건 아니었다는 것이다.

얘기 도중 테이블 위로 예당의 별미인 가지새우살튀김과 마말이밥이 나왔다. 가지새우살튀김은 가지를 반으로 쪼갠 뒤 그 가운데 새우살 완자를 넣어 튀겨 맛이 담백했다. 이 집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마말이밥은 마를 구워 끈적임을 뺀 후 찰밥을 둘러말아 향긋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다. 주제가 노조와 경제민주화 쪽으로 넘어가자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중견기업연합 회원사 연내 1004개까지 늘릴 것"

▷노조 문제를 자주 얘기했는데.

“전북 전주에 있는 기아차 상용차공장 증설에 최근 2800억원이 투입됐다. 상용차 생산량을 연간 5만대에서 6만2000대로 늘리기 위해서다. 인력도 더 투입돼야 하는데, 노조가 반대해 2년간 라인이 제대로 안 돌아갔다. 증원 인력에 지급할 돈을 자기들에게 나눠 달라는 거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기아차 증설에 맞춰 협력사들도 부품 라인을 증설했다. 하지만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협력업체와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무슨 죄인가.”

▷일감 몰아주기 과세 입법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내가 38%의 지분을 갖고 있는 계열사가 있다. 그 회사와의 거래를 일감 몰아주기로 봐서 영업이익에 과세하겠다는 거다. 나는 그 계열사를 떼어내면 매년 32억원의 적자를 안 봐도 된다. 그러나 499명의 직원들은 어쩌란 말이냐. 이게 경제민주화의 목표이고 상생을 말하는 것인가. ”

소주가 한 순배 돌아가고 골프 얘기로 주제가 자연스럽게 옮아갔다. 그는 “지난해 국내 한 골프장에서 파4홀을 1온 1퍼트로 ‘이글’을 했다”고 했다. 그는 골프를 매우 좋아하지만 최근 몇 달 동안은 새로 맡은 중견기업연합회장 일 때문에 라운딩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회장으로서 목표는 무엇인가.

“현재 회원사가 386개다. 이를 연말까지 1004개까지 늘릴 예정이다. 회원사가 이 정도는 돼야 정책 당국자들도 우리 목소리에 신경을 쓴다. 중견련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볼 생각이다. 회장으로 취임한 뒤 맨 먼저 한 것이 변대규 휴맥스 회장을 찾아간 일이다. 회원으로 가입해 달라고 부탁했다.”

▷중소기업청은 중견련 회원사를 2017년까지 4000개로 육성하겠다고 했는데.

“더 빨리, 더 많이 육성해야 한다. 독일은 중견기업이 전체의 12%로 48만개다. 이 중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히든 챔피언만 1600개다. 한국은 중견기업 숫자가 전체의 0.04%, 1422개 불과하다. ”

마지막으로 매생이두부와 채소구이, 대파채회무침 등이 나왔다. 강 회장이 어떤 도전을 생각하고 있는지 물었다. “항상 꿈을 꾸고 있다. 새로운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에 진출해 보고 싶고, 지금은 부품을 하지만 직접 완성차도 만들어 보고도 싶고.”

강 회장은 “술만 좀 줄이면 앞으로 십수년 후에 그런 날을 볼지도 모르겠다”고 웃으며 일어섰다.


강호갑 회장의 단골집 예당 과메기쌈·매생이두부 등 정갈한 상차림

서울 논현동 주택가에서 15년 동안 단골을 상대로 한정식을 파는 곳이었다. 집에서 차린 듯한 담백하고 정갈한 음식으로 정·재계 인사들의 ‘사랑방’ 구실을 했다.

세월이 흘러 주변이 빌라촌으로 바뀌면서 9년 전 주택가를 나온 이 식당은 강남구 신사동 도산사거리 근처 현대식 건물에 들어갔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도 즐겨 찾았다. 4층짜리 건물로 옮기면서 내 집 같은 아늑한 분위기는 사라졌지만 그 맛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어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음식은 ‘서울식’에 맞추고 있다. 손님치레가 많은 군 장성 집안으로 시집온 주인이 수십년간 익혀온 것이라고 한다. 이날 강 회장이 선택한 것은 저녁 코스요리 ‘추억의 밥상’이다. 나오는 음식은 화려하다. 보리매생이죽으로 시작해 유채샐러드, 봄동전, 도미회무침, 매생이두부, 과메기쌈, 더덕흑임자구이 등 쉴새 없이 한상 가득 차려진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628-20. 저녁코스 황제의 밥상 8만원, 황후의 밥상 10만원, 추억의 밥상 8만원, 점심코스는 3만원대부터(부가세 별도).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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