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순상 화영특수금속 사장, '피의 전투' 겪은 팔순 주물人…이젠 글로벌 경제전쟁 진두지휘

입력 2013-04-25 15:30  

김낙훈의 기업인 탐구 - 문순상 <화영특수금속 사장>

주물 반세기…기술개발 온 힘
日미쓰비시·美키스톤 등 글로벌 기업에 납품
지금도 작업복 입고 현장 누벼…품질 1등 꿈꾸는 '주물계 문상사'



주물은 자동차·선박·기계 등의 부품을 만드는 뿌리산업이다. 쇠를 녹여 틀에 부어 원하는 모양을 제조한다. 인천 경서동에 있는 화영특수금속의 문순상 사장(82)은 반세기 넘게 주물업에 종사해 왔다. 팔순이 넘은 지금도 작업복 차림으로 공장을 다니며 작업을 지시한다. 그가 일본·미국 기업에서 품질을 인정받는 기업을 일궈낸 비결은 무엇일까.

2005년 여름 일본 미쓰비시전기에서 온 기술진이 인천 경서동 화영특수금속에 들어섰다.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안전모를 착용한 채 땀을 흘리며 구석구석을 다녔다. 생산시설을 점검하고 제품을 꼼꼼히 살피기 위한 것이다.

전기로(爐)에서는 벌건 쇳물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섭씨 1500도로 가열된 용탕은 활화산의 마그마처럼 부글부글 끓었다. 이를 틀에 부어 주물부품을 만드는 공정을 직접 확인했다. 그 뒤 여러 과정을 거쳐 표면을 다듬으니 어느새 시커먼 금속은 때 빼고 광낸 신사처럼 말쑥한 차림으로 변했다.

일본 미쓰비시전기가 직원 30여명에 불과한 한국의 중소기업을 찾은 것은 고속 엘리베이터 부품인 ‘도르래(sheave)’를 만들 수 있는지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한국미쓰비시엘리베이터는 한국에서 고속용 엘리베이터를 수주하면 핵심부품인 도르래만큼은 일본에서 만들어 들여왔다. 고속용 엘리베이터 도르래는 저속용 엘리베이터에 비해 요구조건이 훨씬 까다롭다. 내마모성과 강도·경도가 적합하지 않으면 엘리베이터 기능과 안전에 문제가 생겨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업체 관계자는 화영특수금속이 생산한 도르래와 일부 부품을 들고 갔다. 금속성분을 분석하고 내마모성과 강도에 대한 정밀 검사를 실시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다는 일본 기술진이 화영특수금속의 기술력과 품질을 인정하고 도르래를 주문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앞서 화영특수금속은 미국 굴지의 산업용 밸브 업체인 키스톤에 버터플라이밸브(butterfly valve)를 납품하고 있었다. 이 밸브는 원판을 회전시켜 관로를 열고 닫음으로써 유량이나 유압을 조절하는 부품이다. 이로써 이 회사는 미국과 일본의 글로벌 기업으로부터 기술력을 인정받게 됐다.

문순상 사장의 주물 인생은 1957년 시작됐다. 이미 반세기를 훌쩍 넘겼다. 1931년 경남 사천에서 태어나 진주고를 나온 그는 6·25전쟁에 자원 입대해 수많은 전투에 참가했다. 철의 삼각지대에서 사선을 여러 번 넘겼고 ‘피의 전투’로 불리는 가칠봉전투에도 참가했다. 강원 양구와 인제 사이에 있는 가칠봉에서의 전투는 가장 치열한 전쟁 중 하나였다.

1956년 육군 상사로 전역했고 이듬해 용산에 있는 경성주물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10년간 일하며 주물 노하우를 익혔다. 1967년 상무로 퇴직하고 서울 구로동 지금의 구로공구상가에서 10여명의 직원으로 화영주물을 창업해 광산용 기계 부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 서울에 흩어져 있던 주물업체들의 이전 계획에 따라 1985년 인천 경서동 경인주물단지로 옮겨 지금의 터전을 마련했다. 이곳에 대지 3300㎡ 건평 2000㎡ 규모의 공장을 마련했다. 현재 이곳에는 전기로 2기가 들어서 있고 입구에는 각종 원자재가 쌓여 있다. 쇳물을 부어 만든 부품은 표면처리 공정을 거쳐 트럭에 실려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경인주물단지는 조성 당시 도심과는 멀리 떨어진 외진 벌판이었으나 지금은 인근에 아파트 단지가 속속 들어서 생산활동을 계속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곳이다.

그는 주물제품을 만들면서 우수 기술자를 영입해 기술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다. 에밀레종의 예에서 보듯 주물제품은 비슷한 소재로 유사한 공정을 거쳐 만들어지지만 품질은 천차만별이다. 강도와 경도 역시 마찬가지다. 문 사장은 자신의 주물 경험과 우수한 직원 영입을 통해 품질향상에 주력했다. 노르웨이선급협회와 로이드의 품질인증을 받았고 국제품질인증(ISO 9001)을 따냈다. 이런 노력 끝에 미국의 키스톤에 납품하게 됐다.

그는 철저하게 수요자 요구에 맞춘 제품을 개발해 공급했다. 생산제품이 다품종 소량 형태인 것도 이 때문이다. 이 회사가 만드는 제품은 크게 엘리베이터 부품과 버터플라이밸브 2종이다. 하지만 크기와 규격별로 나누면 수백종에 이른다. 키스톤에 공급하는 버터플라이밸브만 해도 직경이 불과 1인치짜리에서 72인치가 넘는 것도 있을 정도다. 문 사장은 “이들 제품은 키스톤을 통해 해외 여러 나라로 수출되고 있다”고 밝혔다.

엄격한 품질관리를 위해 시험실에서 성분분석기, 만능재료시험기, 브리넬경도기 등의 설비를 이용해 강도·경도 등을 측정하고 있다. 그는 품질 향상을 위해 전 제품을 표준화했다.

문 사장은 오랫동안 주물 업종을 해오면서 다양한 기술과 제품을 개발한 공로로 2007년 생산기반기술경기대회(주철·주조 분야)에서 산업자원부장관상을 받았다. 이 회사는 2012년 인천시의 비전기업, 중소기업청의 명문장수기업으로 각각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이제 팔순이 넘었지만 지금도 현장을 누비며 생산공정을 챙긴다. 아울러 이 지역 주물업체 모임인 경인주물조합에서 업계 발전을 위해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의 딸인 문혜성 상무는 대를 이어 운영하기 위해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문 사장의 꿈은 산업전쟁터에서 승자가 되는 것이다. 그는 “젊을 때는 실제 전쟁터에서 싸웠지만 이제 글로벌시대를 맞아 글로벌 경제전쟁터에서 싸우고 있다”며 “여기서 이기기 위해 끊임없이 기술개발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비록 우리 회사의 매출은 수십억원에 불과하지만 앞으로도 고난도의 기술개발과 엄격한 공정관리를 통해 품질만큼은 세계 어디에서도 인정받는 기업으로 키워나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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