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한국 경제 '가짜 새벽' 논쟁과 '미네르바 신드롬'

입력 2013-04-28 18:02   수정 2013-04-28 22:32

올 2분기 이후 경제지표 더 주목
한국판 '카산드라 콤플렉스' 경계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최근 들어 월가를 비롯한 국제금융시장 참가자들 사이에 앞으로 한국에 투자할 때 예상되는 ‘false dawn(가짜 새벽, 혹자는 잘못된 새벽으로 번역하는 사람도 있음)’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들리고 있다.

‘가짜 혹은 잘못된 새벽’이란 올 1분기 성장률이 전기 대비 0.9%로 당초 예상보다 높게 나온 것은 통계기법상 ‘기저 효과(base effect)’ 등에 따른 일종의 ‘착시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착시 현상이 제거되면 한국 경제가 2분기 이후 다시 어려워지고, 투자 수익률도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일부 예측기관은 올해 성장률을 2% 내외까지 내려 잡고 있다. 현재 잠재성장률이 3.7%인 점을 감안하면 국내총생산 갭(GDP gap·실제성장률-잠재성장률) 상으로 1% 포인트 이상 디플레 갭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경기 순환상으로 ‘더블 딥(double dip·이중 침체)’, 지속 성장 여부와 관련해 ‘냄비 속 개구리(boiled frog syndrome)’ 등 각종 비관론이 고개를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제금융시장에서는 한국 경제가 이런 비관론에 빠지지 않기 위해 가능한 모든 정책을 동원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더블 딥’이 우려되는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한국판 뉴딜 정책’을 추진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좀비 국면’으로 빠지는 경제 주체들의 의욕을 북돋기 위해 ‘한국판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뉴딜 정책이란 1930년대의 혹독한 경기침체 국면을 극복하기 위해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가 추진한 일련의 정책을 말한다. 1930년대 미국 경기는 유효수요가 절대적으로 부족함에 따라 물가와 성장률이 동시에 급락하는 디플레이션과 대규모 실업 사태로 대변되는 대공황을 겪었다.

한 나라의 경기가 이런 상황에 놓여 있을 때는 정부가 직접 나서서 재정지출을 통해 부족한 유효수요를 보전해 줘야 경기가 회복될 수 있다고 본 것이 케인스의 구상이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한 첫 작품이 뉴딜 정책이었다. 최소한 1970년대까지 케인스 이론에 의한 정책 처방은 경기 대책으로 적절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미국 경기는 경기가 침체하고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새로운 양상을 띠었다. 이 상황에 직면해 케인스 이론과 처방이 한계를 보이자 새로 등장한 것이 ‘레이거노믹스’다. 이 이론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수요보다 공급이 강조돼야 하며, 이를 위해 조세체계를 개편하고 정부 개입은 가능한 줄여줘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레이거노믹스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사람은 래퍼(Arthur B Laffer)다. 그는 한 나라의 세율이 적정 수준을 넘어 지나치게 높을 때는 오히려 세율을 낮춰주는 것이 경제주체의 창의력을 높여 경기와 세수가 동시에 회복될 수 있다는 이른바 ‘래퍼 효과(Laffer effect)’를 강조했다.

레이거노믹스의 본질은 정부가 미리 짜인 수요에 맞춰 경기를 부양하는 뉴딜 정책과 달리 경제주체에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확신하게 하고, 잃어버린 활력을 어떻게 높이느냐에 달려 있다고 봤다. 이를 위해 단기적인 경기부양책에 의존하기보다는 감세와 행정규제 완화, 기업 중시 정책 등을 권고했다.

우리 경제는 아직 유동성 함정에 처해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금리를 내리더라도 소비와 투자가 늘지 않는다. 임금은 그 어느 국가보다 하방 경직적이다. 얼핏 보기에는 케인스적인 상황과 유사하다. 하지만 경기침체가 단순히 유효수요가 부족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제도적 틀이 자주 바뀌고 경기진단과 처방을 놓고 부처 간 갈등이 심화해 경제주체들이 미래에 대해 확신을 할 수 없는 것이 더 큰 요인이다.

이 때문에 뉴딜 정책과 레이거노믹스 가릴 것 없이 복합 처방이 필요한 때다. 국제금융시장에서 부양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도 전에 벌써부터 정책 효과를 기대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편에서 부양책을 내놓고, 다른 한편에서 경제주체의 의욕을 꺾어 놓는 역행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정확한 경기진단과 정책 처방이 잘못됐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정치인과 경제 각료들에게 기대하기보다 늦더라도 시장과 경제주체에게 맡겨놓는 것이 더 빠른 방법이라고 비꼬는 시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치인과 경제 각료들은 ‘마라도나 효과’를 발휘해야 한다. 이 효과는 월드컵 영웅인 마라도나에 대한 믿음이 강해 수비수가 예측해 행동하면 다른 쪽에 공간이 생겨 정작 골을 넣기가 쉬웠다는 데서 나온 용어다.

정치인과 경제 각료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뉴딜 정책과 레이거노믹스를 복합 처방하고 국민들이 알아서 행동하면 현안을 풀 수 있다는 얘기다. 이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현대판 카산드라 콤플렉스인 ‘미네르바 신드롬(Minerva syndrome)’이다.

카산드라는 그리스 신화에서 각종 위기론을 퍼뜨려 세상을 어지럽게 해 결국은 자살하는 저주의 신이다. 모두 합심해 ‘가짜 새벽’을 ‘진짜 새벽’으로 바꾸어놓으면 우리 경제는 충분히 재도약할 수 있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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