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대 경북 달성군 하빈면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소년은 30년 후 한국을 대표하는 과학자가 됐다. 군에서 주최한 과학경시대회에 학교 대표로 나가 은상을 탄 것이 계기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혼자 대구로 나와 유학생활을 했고, 고등학교 2학년 때 화학을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현택환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의 이야기다. 그는 나노 입자 분야의 스타 과학자다. 2004년 균일한 나노 입자를 값싸게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나노미터(10억분의 1m) 크기의 입자를 기존 방법보다 1000배 저렴하면서도 양은 1000배 많이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논문은 ‘네이처 머티리얼즈’에 실렸고, CNN 등 해외 언론에도 소개돼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나노 입자로 암 진단
지난달 26일 서울대 교수 연구실에서 만난 현 교수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했다. 작년부터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입자연구단장을 맡아 앞으로 10년간 한국을 먹여 살릴 기초과학 연구를 책임지게 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현 교수를 비롯해 각 분야 10명의 연구단장을 임명해 각각 매년 최대 100억원씩 10년 동안 연구비를 지원한다.
그는 “마시는 물부터, 반도체, 인간의 몸에 이르기까지 화학이 아닌 것이 없다”며 “에너지 환경 의료 등 앞으로 인류가 풀어야 할 문제들은 화학을 통해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 교수가 최근까지 집중해 온 것은 나노입자를 의료 분야에 활용하는 방안. 자기공명영상(MRI) 조영제가 대표적이다. 그는 “나노 입자로 만들어진 조영제를 사용하면 2마이크로미터(1만분의 1㎜) 이하의 미세혈관이나 세포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럴 경우 미세한 암세포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고, 동맥경화·심근경색 등 혈관질환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나노 입자를 이용하면 의사가 암세포만을 정확하게 도려내는 것도 가능하다. 지난 2월 현 교수가 개발해 발표한 인체에 무해하고 오렌지색으로 빛을 내는 형광 물질을 나노 입자로 만들어 암세포에 붙이는 기술을 이용해서다. 그는 “뇌처럼 중요한 부분은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큰 후유증이 남을 수 있다”며 “암 부위만 정확하게 잘라내는 건 핵심적인 의료기술”이라고 말했다. 최근 1~2년간은 배터리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나노 소재 개발로도 연구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성실하고 기초 튼튼히 해야
현 교수는 자기는 결코 천재가 아니라고 했다. “주변에 노벨상 받은 사람들을 보면 공통점은 매일매일 성실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리 바빠도 자기 분야의 유명 학술지인 네이처, 사이언스, 네이처 머티리얼즈,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 나토레터스, 미국화학회지(JACS) 7개는 빼놓지 않고 읽는다.
덕분에 그는 1998년 서울대 교수로 부임한 후 200여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그 논문들이 다른 과학자들에 의해 1만8000회 이상 인용될 수 있었다. 올 2월에는 미국재료학회 회원 중 0.2%만 받을 수 있는 석학회원(펠로우)으로 뽑혔다. 그는 “어떤 경우에는 방 문 잠가두고 하루 8시간 연속 논문 30~40편 읽는다”며 “그것이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주고 있는 가장 큰 힘”이라고 말했다.
다만 학부 때는 미리 앞서 나가려 하기보단 수업을 열심히 듣고 기초를 튼튼히 해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 교수는 “가장 안타까운 것 중 하나가 학부에 나노 관련 학과를 만들어 놓은 것”이라며 “나노 같은 것은 탄탄한 기초를 바탕으로 대학원에서 해야 하는 공부”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 논문을 보면 저자가 10명이 넘는다”며 “이제는 혼자서는 큰 연구를 할 수 없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 유학시절 영어 배우려고 술을 못 마시지만 사람들 따라다니면서 맥주 마시고 포커도 쳤다”며 “연구자도 사람 관계를 잘 맺어놓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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