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단 광고영업사원서 시작해 300여개 방송·신문·잡지 경영…미디어 '미다스의 손'

입력 2013-05-02 15:30  

글로벌 CEO - 프랭크 베넥 <허스트그룹 CEO>


'업종불문'M&A에만 100억달러
佛언론 한꺼번에 100개 사들이고 ABC방송·ESPN도 그의 손에 신평사 피치 · 헬스케어 업체도 투자


돈 안되면 무조건 팔아치운다
그룹 '뼈대' 이그재미너紙 매각 강행…이 일로 CEO자리 박탈 당했지만 "위기 대비… 그가 옳았다" 6년 후 복귀



오손 웰즈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1941년 작 영화 ‘시민 케인’은 영화 역사상 가장 빼어난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까지 50여년간 영국영화협회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뛰어난 영화’ 1위로 꼽혔을 정도다.

‘시민 케인’은 혁신적인 영화기법으로 유명세를 탔지만, 당대 최고의 언론재벌인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1863~1951)를 주인공으로 삼아 정면으로 풍자했다는 점에서도 꽤나 세간의 흥미를 끌었다. 격노한 허스트는 돈과 막강한 사회적 영향력을 동원해 이 영화의 필름을 모두 사들여 태워버리라고 지시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허스트그룹’의 힘을 엿볼 수 있는 일화다. 허스트가 1887년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라는 신문을 매입하면서 시작된 허스트그룹은 10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미국 최대의 언론기업이다. ABC, ESPN 등 대형 방송채널을 포함해 300개가 넘는 방송 신문 잡지를 운영하고 있다. 고용인원만 2만명이 넘는다.

하지만 허스트그룹을 키워낸 주역은 창업자나 그의 후손들이 아니다. 오늘날 그룹의 위상은 텍사스주(州) 샌안토니오 ‘시골’ 출신의 전문 경영인으로 30년 넘게 허스트그룹을 이끌었던 프랭크 베넥 최고경영자(CEO)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허스트그룹의 사업 중 90%는 베넥의 손에서 시작됐다. 그의 재임 기간 허스트그룹의 매출은 12배, 순익은 30배 늘었다.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마라”

베넥은 1950년대 초반 17세의 나이에 허스트그룹 소속 신문이었던 샌안토니오라이트에서 광고 영업사원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광고 영업에는 그다지 뛰어나지 않았지만, 시대를 읽는 날카로운 식견을 갖고 있었다. 당시 등장한 TV가 조만간 미디어 산업의 중추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기회를 모색하던 그는 ‘타임스 포 틴’이란 지역 TV프로그램의 진행자로 뛰어들었다. 10대들을 위해 가십 뉴스를 전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 자체의 인기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의 방송산업에 대한 비전은 조직으로부터 인정받았다.

다시 샌안토니오라이트로 돌아온 베넥은 34세에 발행인이 됐다. 몇년 동안 지역 신문에서 경험을 쌓은 그는 30대 후반부터 허스트그룹 본사의 임원으로 일했다. 그리고 1979년, 45세에 허스트그룹을 이끄는 CEO가 됐다.

베넥의 경영은 신속했고, 한계를 두지 않았으며 과감했다. 돈이 된다 싶으면 업종을 가리지 않고 투자했고, 필요없다고 생각되면 뭐든 팔아치웠다. 그가 재임 기간 인수·합병(M&A)에 쓴 돈만 100억달러에 이른다. 2011년 프랑스 언론그룹 라가르데르에 6억4000만달러를 주고 패션잡지 엘르 등 100개의 신문과 잡지를 한꺼번에 인수한 게 대표적 예다.

그는 헬스케어 정보회사인 밀리만케어 가이드라인에도 투자했다. 일찌감치 방송의 힘을 깨우친 그가 미국의 대표적 채널 중 하나인 ABC를 비롯, 히스토리채널, 라이프타임, ESPN 등을 인수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세계적인 신용평가회사 피치에도 투자했다.

가장 충격적인 결정은 2000년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를 팔아치운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는 창업자 허스트가 처음 사들인, 그룹의 모기업이었다. 당시엔 허스트그룹의 재무상황도 나쁘지 않았다. 베넥은 “미래를 위한 현금이 필요하다”며 매각을 강행했다. 그에게 전적인 신뢰를 보내던 허스트 가문도 이때만큼은 크게 반발했다. 결국 2002년 베넥을 경질했다.

하지만 2008년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을 계기로 미디어산업이 위기에 빠지자 다시 베넥을 불러들였다.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는 베넥의 주장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인터넷 등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세계 언론 산업이 위기에 빠져 있지만 허스트그룹은 지금도 무차입 경영을 지속하고 있다.

베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영철학을 묻는 질문에 “안되겠다 싶으면 빨리 포기하는 것, 실패를 깨끗이 인정하고 새로운 것에 빨리 도전하는 것”이라며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에도 집착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베넥은 현재 허스트그룹의 CEO이자, 그룹 이사회의 부회장이다. 126년 역사의 허스트그룹에서 5명에 불과한 CEO 중 한 명이다. 이사회의 나머지 인원은 모두 허스트 가문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허스트 가문의 돈을 관리하는 ‘허스트 기금’의 이사회 멤버이기도 하다. 허스트 가문에서 그룹의 ‘모기업’을 팔아치운 경영자를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누구와도 함께 일한다”

베넥 경영의 또 다른 핵심은 ‘인재’다. 그는 개성이 강하고 까다롭기로 유명한 방송계의 사람들과 쉽게 친해졌고, 포용하는데 능숙했다. 토크쇼 진행자인 오프라 윈프리와 함께 ‘오프라 매거진’이란 잡지를 만들었고, ‘어프랜티스’ ‘서바이버’ 등 인기 리얼리티쇼의 프로듀서인 마크 버넷과 합작회사를 세우기도 했다. 패션잡지 ‘코스모폴리탄’을 인수, 패션계의 거물이자 편집자였던 헬렌 걸리 브라운과도 함께 일했다.

베넥은 어떻게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을 포섭하고 무난한 업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나는 사람들을 존중과 존경으로 대합니다. 그들을 부려먹는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또 똑똑한 사람들과 있으면 항상 뭔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방송업계 사람들은 독특하지만, 굉장히 영리하죠. 항상 그들에게 많은 것을 배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누구와도 일할 수 있죠.”

뛰어난 경영자로 인정받았지만, 자리에 집착하진 않았다. 그는 2008년 두 번째 CEO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후임자를 임명했다. 51세의 젊은 임원인 스티브 슈와츠가 오는 6월 그의 뒤를 잇는다. 지난 5년간 착실히 그룹의 차기 리더에게 경영수업을 전수해 온 셈이다.

◆“극복 못할 어려움은 없다”

미디어 산업의 위기론이 팽배한 요즘을 업계의 산 증인인 베넥은 어떻게 진단할까. 그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 등의 외신들과 가진 일련의 인터뷰에서 ‘사업 다각화’를 해답으로 제시했다. “허스트그룹은 다양한 시도를 했고, 많은 곳에 투자했다. 덕분에 전통적인 사업에서 수익이 줄어드는 부분을 메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베넥은 “혁신을 기업의 유전자 속에 불어넣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허스트그룹의 임직원들은 자신이 혁신의 흐름을 타지 못하면 조직에서 오래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허스트그룹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룹 산하의 몇몇 신문과 잡지들은 매출과 광고수익이 크게 줄어 고전하고 있다. 베넥도 “처음 CEO가 될 때는 업계의 상황이 좋았고 앞날에 대한 예측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외신들은 전한다. 그는 ‘지금이 경영자 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냐’는 질문에 이같이 일축했다. “아뇨, 지금은 대공황 때보단 훨씬 나아요.”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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