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과장 & 李대리] '무임승차' 팀동료와 한판 붙었는데…헉, 알고보니 회장님 친구 아들

입력 2013-05-13 17:12   수정 2013-05-14 04:40

우리 직장 '로열패밀리'

평범한 우리와 계급이 달라?
"일 못하겠어요" 툭하면 투정…곱게 자란 이들 어찌 하오리까

로열패밀리도 할말이 있다
떳떳이 취업한 고위공무원 아들…졸지에 낙하산 취급 '아~괴로워'




증권사에 다니는 박 대리는 요즘 말단사원 J를 볼 때마다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수수한 옷차림에 성격도 조용조용해 그저 평범한 후배 중 한 명으로 여겼던 J가 다른 대형 증권사 사장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다음부터다. 평소 낡은 국산 차를 몰던 J가 주말에 6000만원이 넘는 BMW 5시리즈를 끌고 회사에 나온 모습이 몇몇 직원에게 포착된 후 사내에선 J의 모든 것이 화제가 되고 있다.

“나무랄 데 없어요. 일도 열심히 하고요. 증권 쪽 일을 하고 싶었는데 그 친구 아버지가 자기 회사엔 절대 오지 말라고 해서 우리 회사에 지원했대요. 다만 재테크에 큰 관심이 없던 이 친구를 두고 예전엔 ‘아직 어리다’고 무시했다면 요즘은 ‘아! 역시…’ 하는 식으로 바라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졌죠.”

◆그들만의 ‘출생 비밀’

직장 곳곳에 숨어 있는 ‘로열패밀리’를 바라보는 김 과장, 이 대리들의 심경은 복잡하다. 탄탄한 재력 덕에 소소한 1만~2만원 지출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쿨’한 모습을 보면 마냥 부럽다. 다른 부하 직원에겐 무자비하게 독설을 쏟아내다가도 로열패밀리 앞에선 유독 약해지는 상사의 모습에선 짜릿함과 비애를 함께 느낀다. 동시에 든든한 배경을 등에 업고 남보다 일찍 성공 가도에 오르는 그들을 볼 때면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대기업에서 일하는 이 과장은 해외 연수를 떠난 입사 동기 김 과장의 빈자리를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허하다. 그룹 고위 임원의 아들인 김 과장은 사실 업무 능력에선 썩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 사업부에서 마련한 해외 MBA 연수 프로그램을 당당히 꿰찼고 1억원이 넘는 비용을 전액 지원받고 있다.

MBA 연수 기회를 잡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해 준비했던 이 과장은 “탈락 당시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심정이었다”고 했다. “집안 재산이 수십억원이 넘고 앞날이 창창한데 왜 굳이 경쟁자들을 밀쳐내고 회사 돈으로 MBA를 가는지 아직도 납득이 안 돼요. 동기 험담하는 건 미안한 일이지만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난 직장인으로서 비애를 느낍니다.”

유명 정보기술(IT) 회사에 다니는 박 대리는 지난해 자신과 함께 대리로 진급한 1년 후배 C 때문에 심기가 불편하다. C는 회사 체육대회에 말 없이 불참하거나 아무때나 상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해 눈총을 자주 받는 인물이다. 더구나 이 회사는 부문별로 철저히 성과를 따지기로 유명하지만, 정작 C가 몸담은 부서는 한동안 실적도 좋지 않았다.

박 대리는 그럼에도 C가 이례적으로 빨리 승진한 것은 ‘최고위층 임원의 아들’이라는 배경 때문이라 믿고 있다. “주니어 사원들끼리 모인 술자리에서는 우리 회사 안에 ‘임원 아들·딸’과 ‘일반인 아들·딸’이라는 두 계급이 있다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옵니다. 조그만 구멍가게도 아닌데 이건 좀 심하잖아요?”

최근 건강 문제로 휴직을 신청하려다 결국 사직서를 낸 K도 “로열패밀리와 차별당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그룹 최고위층 임원 아들은 병역 비리 문제로 사회적 물의를 빚자 2년6개월 동안 휴직한 전례가 있다고 했다. “일반 사원의 6개월 휴직을 용납하지 않으려면 이런 특별 대우도 해주지 말아야죠.”

◆‘회장 친구의 아들’ 좀 말려줘요

생활용품 업체의 최 과장은 오너 일가와의 친분 덕에 입사한 팀 동료 K과장 때문에 울화병이 생겼다. 2년 전 지금의 팀으로 옮겨온 최 과장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출근 도장만 찍는 K과장과 마찰이 잦았다. 사무실에서 대판 싸워도 보고, 저녁 술자리에서 진솔하게 대화도 해 봤지만 K과장의 무임승차는 여전했다.

뒤늦게 인사팀 동기로부터 전해들은 ‘K의 정체’는 충격적이었다. “너 아직 몰랐어? K과장 부모가 회장님과 수십년 전부터 호형호제하는 사이야.” 최 과장은 “그제서야 상사들이 왜 K를 수수방관하는지 모든 퍼즐이 풀렸다”며 “오늘도 인터넷 서핑만 하는 K를 보며 참을 인(忍) 자를 수십번 썼다”고 말했다.

유통업체 P부장은 ‘자타공인 낙하산’ Q양의 남다른 감수성에 혀를 내두르고 있다. 대학원을 갓 졸업한 20대 후반의 Q는 회사 오너와 절친한 집안의 딸로, 원래는 없었던 인턴제도가 Q 때문에 만들어졌다는 게 정설로 통한다.

곱게 자란 Q는 작은 돌발 상황만 생겨도 안절부절못한다. 1~2시간 안에 처리해야 하는 긴급한 문서 작업을 맡겼을 때는 물론이고 복사기가 고장났을 때, 메일이 반송이 됐을 때조차 “큰일 났다”며 투정이 심해 선배들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농담이라지만 ‘저 오늘 일 못하겠어요’를 입에 달고 다니는데 좋게 보일 리가 있나요. 보통 사원들은 덤덤히 넘길 일에도 자꾸 면담 신청을 하니 이 친구를 어떡하면 좋죠?”

본격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오너 3세와 일하고 있는 모 그룹 과장도 그의 ‘공주 감성’에 손발이 오그라든 적이 있다고 했다.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불철주야 노력하는 모습은 참 좋아요. 그런데 가끔 본인 얘기를 3인칭 화법으로 할 때가 있어요. 가수 이정현이 ‘정현이는요~오늘 일을 참 많이 했어요’라고 하는 것처럼 본인 이름을 주어로 자주 쓰는데 그럴 때면 웃음이 빵 터지려는 걸 참느라 정말 힘듭니다.”

◆로열패밀리, 그들의 고충

부잣집 아들 딸이라고 해서 꼭 ‘막장 드라마’에 단골로 나오는 무개념이나 막무가내 캐릭터는 아니다. 로열패밀리와 함께 일해 본 직장인들 사이에선 “어릴 적부터 교육을 잘 받고 구김살 없이 자라서인지 인성이 반듯하고 서글서글한 면이 많다”는 평가를 하는 이가 적지 않다.

때로는 부러움, 때로는 시기의 대상이 되는 로열패밀리지만 당사자들도 할 말은 많다. 전직 차관의 아들인 L은 수년 전 입사 당시 아버지와 자신의 이름이 ‘특채 의혹’이라는 시커먼 제목과 함께 신문에 오르내렸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지금 회사와 관련한 인·허가권을 쥔 부처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일이 꼬이면서 L은 인턴 딱지를 뗀 지 얼마 되지 않아 회사로 몰려온 기자들에게 입사 배경을 해명해야 했다.

L은 “대학시절부터 차근차근 경험을 쌓아 떳떳하게 취직한 건데 졸지에 낙하산 취급을 받고 아버지 이름에도 먹칠을 한 것 같아 괴로웠다”고 했다. 그는 “사내에서 아무도 몰랐던 아버지의 직함이 다 까발려져 한동안 팀원들과 밥도 못 먹었다”고 털어놨다.

사생활 스캔들로 홍역을 치렀던 오너 일가의 딸을 직속상사로 모시고 있는 한 중견기업 직원은 이런 얘길 했다. “OO님은 사람들 생각처럼 마냥 편하고 화려하게 살지는 않는 것 같아요. 소탈하게 직원들과 어울리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데 회사 밖에서 얼굴을 알아본 누군가가 뚫어져라 쳐다보기라도 하면 확연히 움츠러드는 게 제 눈에 보이거든요. 어느 정도는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긴 하지만…인간적으론 안타까울 때가 많죠.”

임현우/전설리/황정수/전예진/박한신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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