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경제의 만남] <110> 순장은 고대 왕들의 위험 회피를 위한 수단이었다

입력 2013-05-31 15:13  


순장은 고대사회에서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사망하면 생전에 그를 모셨던 사람들을 함께 묻는 행위를 지칭한다. 순장은 고대의 특정 지역에서만 전개된 기이한 풍습이 아니라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에 이르는 거의 모든 대륙의 고대 문명에서 전개된 특이한 문화적 현상이다. 이렇게 사람을 희생하는 다양한 의식과 제례는 여러 지역에서 수행됐다. 중국에서는 만리장성을 축조하면서 노역자들을 생매장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일본의 히토바시라와 같은 전설에서도 제방 등의 주요 건축물을 축조하고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중남미 지역의 아즈텍 문명도 1487년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 파라미드 공사 후 죄수와 노역자들을 나흘에 걸쳐 학살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전쟁의 승리를 기원하기 위해 사람을 희생시키기도 했다. 이는 그리스신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트로이 전쟁의 이피게네이아 이야기가 그것이다. 트로이 전쟁 당시 그리스군의 총지휘관인 아가멤논은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의 노여움을 산다. 이에 아르테미스는 바람이 불지 않도록 해 그리스 군이 2년 동안 출항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이에 아가멤논은 아르테미스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자기의 딸 이피게니아를 산 제물로 바친다. 이는 당시 지중해 지역에서도 사람의 희생을 제물로 활용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고대 문명의 기록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의 희생을 활용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상에서 언급한 일련의 내용들은 순장과는 다르다. 사람을 희생시켜 제사나 의식에 활용하는 것을 인신공희라고 하는데, 이는 순장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사람을 희생시킨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인신공희가 신에게 기원을 올리거나 특정 행사에 제물로 사람을 활용하는 것이라면, 순장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대사회에서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사망할 경우 생전에 그를 모셨던 사람들을 함께 묻는 행위만을 지칭한다.

왕의 신변보호 전략
고대사회는 이처럼 다양한 이유로 살아있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의식이 전개됐다. 살아 있는 사람을 희생시켰다는 사실만으로도 잔혹한데, 사람을 희생시킨 방식은 더욱 잔혹하기 그지없었다. 중국에서 발굴된 은나라의 순장묘들을 보면 이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은대 후기 도성이 위치한 지역에서 발굴된 11기의 은왕 무덤의 경우 목이 잘린 73개의 머리와 머리 없는 60구의 사지가 발굴된 바 있다. 온전하게 머리와 사지를 갖춘 시체도 두 구 있었다. 무덤 내 동쪽 부분에서는 또 다른 시신이 68구가 발굴됐다. 이는 당시 왕이나 귀족 한 사람이 사망할 경우 수많은 사람을 함께 죽였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고대 사회에서는 왜 이런 살아 있는 사람의 희생을 강요한 잔혹하기 그지없는 문화가 형성된 것일까? 고대인들은 미개해 윤리관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같은 행위를 자행한 것일까? 물론 고대인들이 자행한 살아 있는 사람을 희생시키는 문화 속에는 잔인함과 문명화되지 못한 측면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에 못지않은 고도의 계산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순장의 문화는 절대왕권이 공고히 다져지지 않았던 고대 사회의 국왕들이 자신의 신변을 지키기 위해 고안해 낸 위험방지 전략이었다. 고대 사회는 완벽한 왕권이 확립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의 국왕들은 주요 귀족 계층 내지 지방 유력자 혹은 자신의 곁에서 자신을 보필한 사람들 중에서 누군가 자신을 누르고 왕권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즉 고대 국왕들은 암살이나 독살의 위험을 항시 느끼는 불안감을 갖고 생활해야 했다. 고대 국왕들은 이런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해 만약 자신이 죽으면, 자신을 지근에서 보필한 사람들까지 함께 죽여 묻혀야 하는 제도를 고안해 낸 것이다. 즉 순장이라는 제도를 고안해 낸 것이다.

오늘날 인센티브로 제도화
이를 통해 이제 고대왕과 왕을 보필하는 사람들의 유인구조는 동일한 상황으로 바뀌게 된다. 왕이 사는 것이 내가 살 수 있는 길이며, 왕이 죽으면 자신도 함께 죽게 되는 상황으로 바뀐 것이다. 설사 자신이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 왕을 남몰래 독살하는 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결국 자신도 왕과 함께 묻히는 상황에서 왕의 독살 내지 암살에 가담할 확률은 크게 떨어지게 된다. 순장 제도를 활용할 경우 신하들은 자신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국왕이 우연히 사망해도 자신은 처참히 죽게 되기 때문에 단순히 국왕의 사망만을 방지하는 것이 아니라 국왕의 안위와 건강도 함께 신경 쓰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쉽게 말해 국왕이 오래 사는 것이 곧 자신이 오래 살 수 있는 길이다.

이와 같이 유인구조를 일치시키는 방식으로 위험을 회피하려는 전략은 오늘날에도 흔히 목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사고를 낼 경우 보험회사가 사고액 전액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소액이라도 차량 소유주에게 부담시키는 제도가 여기에 해당한다. 자동차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보험에 가입하기 이전보다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할 유인이 떨어지게 된다. 이제는 사고가 나도 보험회사에서 보상해 주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사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보험회사는 비록 소액이라도 일정 금액을 고객이 부담하도록 했다. 이를 자기부담금이라 한다. 최고경영자(CEO)들에게 부여한 스톡옵션 역시 마찬가지다. CEO들은 채용된 뒤 자신을 뽑아준 주주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할 가능성이 있다. 이를 막기 위해 CEO들에게 스톡옵션을 부여해 회사 주식이 올라가면 주주들의 이익과 함께 CEO의 이익도 함께 높아지는 유인구조를 만들어 내어 위험을 회피하려 한 것이다.

상대방과 수익·손실 일치

이상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거래 상대방과 나의 유인구조를 일치시키는 것은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유용한 수단이다. 유인구조가 서로 충돌될 때에는 상대방의 손해가 곧 나의 이익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내가 이익을 얻을 때 상대방도 함께 이익을 얻고, 내가 손해를 볼 때 상대방도 함께 손해를 보는 구조를 만들어 낸다면, 위험 내지 불안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고대 왕은 이 명쾌한 논리를 꿰뚫어 본 것이다. 그는 순장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자신과 자신을 보필하는 신하들과의 유인구조를 일치시켜 암살과 독살에 대한 위험과 두려움을 낮출 수 있었다.

순장을 진행할 때 함께 묻는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여 묻는 이유 역시 위험회피전략과 관련이 있다. 순장이 잔인할수록 신하들과 국왕의 유인구조는 더욱 공고히 일치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참혹한 순장의 형태 또한 철저히 위험회피를 위한 유인구조 일치와 관련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일상 생활 속에서 직면하는 여러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전개하는 것처럼 우리 인류의 선조들 역시 동일한 노력을 전개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누구보다 가진 것이 많은 국왕들은 더욱 위험을 회피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을 것이다. 이런 간절한 마음이 살아 있는 사람을 생매장하는 순장이라는 제도까지 고안해 낸 근본적인 원동력이 아닌가 생각한다.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aijen@kdi.re.kr


경제 용어 풀이

▨ 유인 구조

특정 경제 행위를 유발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일련의 인센티브 체계를 말한다. 이런 유인구조는 금전적인 형태로 진행되기도 하지만 비금전적인 반대급부인 명예 등을 통해서 수행되기도 한다. 또한 유인구조는 반드시 특정 행위를 수행한 사람에게 더 많은 혜택을 부여하는 것으로만 설정되는 것이 아니라 원치 않은 행위를 수행한 사람에게 손해를 가함으로써 진행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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