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일자리 대책' 하소연] "대기업과 임금격차 줄지 않는한 中企 인력난 해소는 불가능"

입력 2013-06-12 17:18   수정 2013-06-13 00:46

"밤새 근무해서라도 납기 맞춰야 하는게 현실"
"근로 시간 줄여 일자리 만든다? 딴나라 얘기"




도금업체인 명진화학은 지난해 8월 인천 남동공단에 있던 공장을 인천 오류동으로 옮겼다. 대지 7000㎡에 건평 1만1000여㎡ 규모의 최신 공장을 지었다. 삼성전자LG전자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부품 등을 도금하는 이 공장은 자동설비 라인에 깔끔한 작업환경까지 갖춰 ‘업계 최고 친환경 사업장’이라는 얘기를 주변에서 듣고 있다. 기숙사와 식당까지 갖췄다.

정을연 명진화학 사장은 “일감은 몰리는데 일손이 부족해 이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200여억원을 들여 작업 환경을 획기적으로 바꿨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장을 옮긴 뒤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구청, 대학 등에 수소문해 30여명을 가까스로 뽑았다. 하지만 아직 10명가량 부족한 상태다. 정 사장은 “임금도 15%가량 올렸는데 사람 구하기는 여전히 어렵다”며 “정부가 사람 좀 보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부 대책, 현실성 없다”

시간제 정규직 도입과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정부 정책(고용률 70% 달성 로드맵·지난 4일 발표)에 대한 중소기업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싸늘하다. 중소기업들은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지나치게 대기업과 공공 부문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비판한다.

공구업체인 에스에스티의 최용식 회장은 “정부는 근로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정작 중소기업 제조 현장에서는 사람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며 “밤샘 근무와 연장 근무라도 해서 납기를 맞춰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런 상황은 감안하지 않고 정부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근로시간을 단축하겠다고 하니 다른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고 말했다.

이경호 영림목재 사장은 “창업 성공률이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창업 지원에 돈을 쏟아붓는 것은 아이러니”라며 “청년들이 자신이 원하는 직종에서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 창업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을 짠다면 인력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이나 청년들에게 모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텅스텐 초경합금 소재를 만드는 신성공업의 신성용 사장은 “일손을 구하는 것이 더 급한 일” 이라며 “외국인 근로자라도 충분히 쓸 수 있게 대책을 마련해 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현실성 없는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중소기업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외국인 노동자를 더 많이 데려와달라는 얘기다.

◆확대된 임금·복지 격차

공공 부문과 대기업에는 구직자가 몰리는데 중소기업은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치는 가장 큰 이유는 임금·복지 격차다. 2011년 기준 중소기업 평균 임금은 대기업의 53%에 불과했다. 중소기업의 복리비용 지출도 대기업의 60.7% 수준에 머물고 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전만 해도 중소기업의 인력 상황은 지금처럼 나쁘지 않았다. 산업 전체 인력 부족률(5.5%)보다는 약간 높은 7~8% 수준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국내에 글로벌 대기업이 생겨나고 금융과 공공 부문의 급여가 크게 오르면서 중소기업과의 격차가 벌어졌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중소기업 인력 부족률은 3.3%로 대기업(1.2%)에 비해 2.8배나 높다. 부족 인원은 24만6000명으로 청년 실업자(34만명·4월 말 기준)에 버금가는 규모다.

전현호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실장은 “임금 격차가 워낙 크다 보니 중소기업에 오려는 인력도 적고, 어렵게 뽑아놔도 금방 대기업으로 가는 게 현실”이라며 “임금 격차가 해소되지 않는 한 중기 인력난 해결은 요원하다”고 말했다.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중기 근로자 10명 중 2명이 대기업으로 빠져나가고, 3~5년차 대리급의 51.8%가 이직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대건 중소기업청 인력개발과장은 “중기 인력난은 이제 외국인 근로자를 투입하고 정책자금을 써도 풀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돼 버렸다”고 말했다.

◆중기 일손 부족 먼저 해결해야

중소기업인과 전문가들은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 창업 등을 통해 238만개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총력을 다하겠다는 데 대해 “일의 순서가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이재광 광명전기 회장은 “대기업이 임금을 매년 너무 많이 올리기 때문에 (중소기업과)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며 “대기업의 임금 상승률을 낮추고 중소기업의 실질적 임금을 올리는 쪽으로 획기적인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자리의 90% 정도는 중소기업이 만드는데 이번 로드맵에서는 중소기업 대책이 후순위로 밀려나 있는 게 사실”이라며 “중기의 일손 부족을 해결할 대책이 먼저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에 대해 △중기 근무환경 개선 및 장기 근속 인센티브 강화 △인력공동관리체제 구축 △중기 취업정보시스템 전면 재정비 등 대책을 마련했다고 해명했다. 권기섭 고용부 고용정책총괄과장은 “근로시간 단축이 일자리 대책에서 부각되다 보니 중소기업 현장 대책이 잘 안 보이는 것일 뿐”이라며 “앞으로 범정부 차원의 별도 대책이 계속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진/김낙훈/양병훈 기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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