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문장의 교양] (9) "나치즘은 유럽문명 안에서 배양된 야만이다"

입력 2013-06-14 15:01  


이번 주에는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라는 책을 읽으려 합니다. 저자 서경식은 도쿄에 있는 한 대학의 교수이자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과 마르코폴로상을 받은 뛰어난 에세이스트입니다. 이 정도면 꽤 성공한 인생인 듯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재일조선인입니다.

일본에서 이방인으로 살면서 그는 깊고 시린 외로움을 견뎌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외로웠다면 한국으로 오지 그랬어?” 누군가 쉽게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에겐 한국도 따뜻한 고향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두 형은 일본에서 한국으로 역유학을 왔다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근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습니다. 원래 형들을 따라 고국으로 돌아올 생각이었지만 그 사건 때문에 그는 결국 일본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그들 형제에게는 일본도, 한국도 타지일 뿐이었습니다.

고통 속에 있는 형들과 달리 안전한 일본에 있다는 사실이 몹시 부끄러웠다고 그는 말합니다.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 그는 끊임없이 형들의 고통을 상상하고 공감하려 노력했습니다. 힘든 나날이었지만 그 시간은 그에게 내쫓기고 배제된 이들에 대한 섬세함 공감능력을 남겨 놓았습니다. 그가 자신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쁘리모 레비라는 사람의 고통에 그토록 깊은 연민을 느낄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쁘리모 레비. 그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입니다. 2차대전 당시 독일군은 유럽에 거주하는 유대인을 수용소에 모아 그들을 대량 학살하는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질렀는데, 그 사건을 홀로코스트라고 합니다. 얼마나 끔찍한 일이었는지를 서경식은 한 증언자의 입을 빌려 이렇게 설명합니다.



“영화 ‘쇼아’에도 등장하는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필립 뮐러는 특별작업반으로서 가체 처리작업에 종사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가스실에서의 살육 모습은 다음과 같다. 가장 먼저 몇 알의 치클론 B가 가스실 바닥에서 승화하면, 희생자들은 절규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올라오는 독가스를 피해 도망치려고 힘센 사람은 약한 사람을 때려눕히고, 좀 더 살겠노라고 아직 독가스에 오염되지 않은 공기를 찾아서 쓰러진 사람들 위로 올라섰다. 15분 내에 가스실 안의 전원이 사망했다. 약 30분 후에는 문이 다시 열렸다. 시체는 탑처럼 층층이 쌓여 있었고, 앉은 채로 죽은 자나 엉거주춤한 자세로 죽은 자도 있었다. 밑에는 아이나 노인의 사체가 있었다. 사체에 녹색 반점이 있었고, 피부는 핑크빛으로 변해 있었다. 입에 거품을 문 사체나 코피를 흘리는 사체도 있었다. 대소변으로 뒤범벅이 된 사체도 있었고, 임신 중인 여성 중에서는 출산이 시작된 경우도 있었다.”



쁘리모 레비는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자신이 겪은 일을 글로 증언한 작가입니다. 고통스런 기억을 회상하는 쁘리모 레비의 글에서 서경식은 이방인으로서 자신이 느낀 서러움, 감옥 속에 억울하게 갇힌 형들의 고통, 옥바라지 하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등을 함께 읽어냅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고통을 기록한 쁘리모 레비의 책은 서경식이 인간과 폭력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만듭니다. 서경식은 홀로코스트가 소수의 미치광이들이 저지른 우연한 사건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에서 유럽인이 저질러 온 학살과 폭력적 지배. 유대인 대학살은 유럽인들의 오래된 폭력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입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여지껏 밖을 향하던 폭력이 유럽 내부를 향했다는 것뿐입니다. 그러니 “나치즘은 유럽문명의 외부에서 밀어닥친 ‘야만’이 아니라 유럽문명 내부에서 배양된 ‘야만’이 분출한 것”이라는 그의 지적은 옳습니다. 괴물을 키워온 것은 다름아닌 유럽 자신이었으니까요.



“중세 이후 반유대주의, 히스테리컬한 패권욕과 식민지 획득욕, 약육강식 우승열패의 사회진화론과 우생 사상, 인종주의 그리고 ‘효율’에 대한 물신숭배와 테크놀로지 신앙, 이 모든 요소가 복합적으로 상승작용해 폭발한 것이 나치 독일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 사건이었다. 그것은 제국주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로 지탱돼 온 유럽 근대문명의 자가중독이며 자기파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보기에 따라서 후발 제국주의 국가인 독일은 스페인, 영국, 프랑스 등의 국가가 오랫동안 유럽의 바깥에서 자행해 온 것과 동일한 행위를 단기간에 안을 향해 터뜨린 것에 불과했다. ‘인간은 비인간이다’라는 원리가 바깥 세계인 아프리카나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을 향하던 때, 엔젠 스베르거가 말한 대로 대부분의 유럽인들은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것이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형태로 유럽의 안을 향했고, 자신들의 이웃에게 미치게 되자, 비로소 인간이라는 이념의 보편성을 둘러싼 그들의 자기모순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그것은(아우슈비츠) 우리 자신의 근대에 기인하며, 지금도 현실 그 자체에 내재한다.”



근대 유럽인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사는 이들을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았습니다. 지배와 착취의 대상으로 보는 일이 훨씬 많았죠. 그렇게 타자를 향하던 폭력이 내부를 향하게 되고, 결국 홀로코스트라는 광기를 낳은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타자를 향한 폭력이 언젠가는 증폭된 형태로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나치는 사라졌고, 유대인 대학살은 지나간 과거일 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쁘리모 레비의 생각은 다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우슈비츠는 끝나지 않았다.”



(쁘리모 레비는) ‘젊은이들에게’라는 1972년의 글에서는 “안심하기에는 이르지 않은가”라고 밝히고 그리스, 소련, 베트남, 브라질에 여전히 강제수용소가 존재하며, 모든 국가에 감옥, 소년원, 정신병원 같은 “인간에게서 이름, 존엄, 희망을 빼앗는 시설”이 존재한다고 지적한 후 브레히트의 ‘이런 괴물을 낳은 자궁은 아직도 건재하다’는 말을 인용했다.



유럽인이 비유럽인에게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행사하고, 내국인이 외국인을 서슴없이 모욕하고, 남성이 여성을 일상적으로 억압하고, 강자가 약자를 잔혹하게 착취하는 사회에서 홀로코스트는 언제든 다시 출현할 수 있습니다. 매일 조금씩 폭력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니까요. 안전한 일본에 있던 서경식이 끊임없이 한국에 있는 형들의 고통을 상상했던 것처럼, 지금 나와는 무관해 보이는 폭력에도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주변의 약자들이 당하는 폭력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다면, 어떤 폭력도 용인하지 않으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리 안에 있는 야만은 언제든 고개를 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짧은 세월 동안에도 우리에게 쁘리모 레비-그리고 20세기의 산증인들-의 경고가 지닌 무거움은 급속도로 더해갔다.

죽어가는 증인들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고, 모든 불길한 징조에 최대한 민감하게 반응해 방죽이 무너지는 것을 막지 못하는 한 홍수는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김영수 S·논술 인문 대표강사 ysjad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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