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축산업은 평생의 業…시련은 있어도 포기는 없었죠"

입력 2013-06-20 17:30   수정 2013-06-21 00:41


"11살 때 외할머니로부터 선물받은 병아리 10마리를 키워서 닭장사에게 팔았어요. 한마리에 250원씩 총 2500원을 받았는데, 이 돈으로 다시 병아리를 사서 키워 팔았죠. 돈을 벌면 또 병아리를 샀고요,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한 번도 돈 버는 일을 멈춘 적 없어요"

1977년은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56)이 전북 익산의 이리농림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때다. 당시 이 학교에는 진풍경이 벌어지곤 했다. 김홍국 학생이 공부하고 있던 교실 앞에는 40~50대 아저씨들이 서성일 때가 많았다. 이들은 쉬는 시간 종이 울리면 김홍국 학생에게 달려와 뭔가를 내밀고 사인을 받아갔다. 그것은 결재서류였다.

‘한경과의 맛있는 만남’을 위해 지난 18일 서울 압구정동 메밀국수집 ‘멧돌소바’에서 만난 김 회장이 세 시간에 걸쳐 풀어낸 인생 얘기 중 한 대목이다. 김 회장은 “집 한 채에 300만원하던 시절인데, 80만원이나 하는 배기량 250㏄짜리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를 다녔어요. 나이 지긋한 아저씨들이 수시로 찾아와 나한테 어렵게 말을 건네곤 했으니, 친구들이 얼마나 이상한 녀석으로 취급했겠어요”라며 껄껄 웃었다.

김 회장은 “코흘리개 시절인 11살 때부터 사업을 시작했다”며 “아마도 재계에서 나보다 일찍 돈벌이를 시작한 경영자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11살부터 사업을 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인터뷰를 하면서 내린 결론은 ‘김 회장은 평생 경영인, 천생(天生) 사업가’라는 것이었다.

“사업이 가장 재미있었어요”…고등학교 다니며 결제 서류에 사인

멧돌소바는 “메밀국수를 1년에 100그릇 이상 먹을 정도로 좋아한다”는 김 회장이 직접 차린 식당이다. 일본 홋카이도(北海島)에 있는 한 가게에서 100% 메밀로 국수 만드는 법을 전수받았다고 한다. 김 회장은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인 자루소바와 하림그룹의 닭고기, 오리고기 등으로 만든 치킨가스, 오리 로스구이 등을 한꺼번에 시켜놓고 기자와 마주 앉았다.

“11살 때부터 사업을 시작한 게 맞느냐”는 질문부터 던졌다. “외할머니로부터 선물받은 병아리 10마리를 키워서 닭장사에게 팔았어요. 한마리에 250원씩 총 2500원을 받았는데, 이 돈으로 다시 병아리를 사서 키워 팔았죠. 돈을 벌면 또 병아리를 샀고요.”

“병아리 키워 판 것을 사업이라고 할 수 있냐”는 질문에 그는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한 번도 돈 버는 일을 멈춘 적이 없으니, 내 사업 인생은 그때 시작된 게 맞다”고 했다.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6학년 때는 돼지를 키웠는데, 일꾼을 부리면서 일을 했으니까 사업을 제대로 했다고 할 수 있죠.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세무서에 정식으로 사업자등록을 했고요.” 고3 때 그의 사업은 씨닭(종계)을 5000마리가량 키울 정도로 커졌다. 토마토 등을 키우는 원예사업도 같이 했다. 아저씨들이 학교에서 결재를 받아가던 황등농장 사장 시절이다.

공주사범학교 출신으로 초등학교 교사였던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4남2녀의 자녀를 엄격하게 교육했는데,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장사에 빠져 있던 김 회장을 못마땅해 했다. “중학교 3학년이 되니까 ‘네 마음대로 하라’고 하시더군요. 아무리 말려도 포기하지 않자 ‘얘는 안되겠다’ 싶었던 거지….” 김 회장의 다른 형제·남매들은 모두 교직이나 공기업 등에 종사하고 있다.

“3場 통합이 경영의 시작이죠”…사육농장·가공공장·유통시장 계열화

사업 인생 45년 동안 김 회장은 세 번의 커다란 시련을 넘겼다. 첫 번째 시련은 20대 초반이었던 1970년대 말에 찾아왔다. 돼지와 닭값이 갑작스럽게 폭락하면서 빚더미에 올라앉은 것. 당시 김 회장은 연 60%대 신용대출(사채)을 쓰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주변에서 ‘재기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수군댔다”며 “어린 나이에 욕심을 부리다가 당했다는 소리도 들었다”고 당시를 되돌아봤다.

빚쟁이들이 ‘빚 갚으라’며 독촉을 하는 데도 ‘사업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사업은 내가 가장 좋아하고 평생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망했다’고 체념하지 않았죠. 내 인생에 시련은 있어도 좌절은 없습니다.”

김 회장은 6년 동안 죽을 힘을 다해 사채이자와 원금을 모두 갚았다. 그러면서 ‘가공식품업에 진출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축산업은 가격 변동으로 리스크가 크지만, 가축을 원료로 하는 가공식품은 상대적으로 가격변동폭이 크지 않아 위험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이 같은 생각은 김 회장 특유의 경영이념인 ‘3장(場) 통합 경영’으로 발전했다. ‘3장 통합 경영’이란 농장·공장·시장을 기반으로 사육·가공·유통을 수직계열화한다는 것이다. 농장에서 닭을 사육하고, 공장에서는 가공식품을 생산하며, 시장에서는 소비자에게 차별화된 식품을 유통시키는 경영 전략이다.

“망한다는 생각 한번도 안했어요”…세차례 위기 겪으며 글로벌 마인드 축적

420억원을 들여 전북 익산에 축구장 8개 크기(5만4000여㎡)의 육가공 공장을 증축한 게 1997년 8월이었다. 곧바로 외환위기가 다가왔다. 대출금리는 연 27%까지 뛰었고, 새로 지은 공장은 제대로 가동해 해보지도 못한 채 금세 문을 닫을 판이었다. 이때 그가 찾아간 곳이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산하 국제금융공사(IFC)였다. 하림그룹은 IFC로부터 두 달 가까이 실사를 받은 끝에 2000만달러 규모의 투자를 받을 수 있었다.

하림그룹을 실사한 IBRD는 하림의 축산업 역량을 높이 평가해 “중국 축산기업에 투자하려는 데 경영자문을 맡아줄 수 없겠느냐”는 제안까지 했다고 한다. “경영에서 현금흐름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때 절실하게 느꼈어요. ‘현금흐름을 잘못 관리하면 기업이 한방에 가겠구나’는 생각을 하게 됐죠.”

잘 나가던 회사는 2003년 다시 세 번째 위기를 맞았다. 조류 인플루엔자(AI)로 닭고기 가격이 급락하던 가운데 익산 공장에 화재가 나 모두 불타버렸다. 손실 규모는 1200억원에 달했다. 김 회장은 “세 번의 위기 가운데 2003년 위기를 극복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밤 12시에 잠을 자서 새벽 3~4시만 되면 땀에 흠뻑 젖은 채 깨는 날이 이어졌다.

“그때는 매일 교회에 새벽기도를 나가 마음을 다잡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그러고는 다시 또 일에 달라들었죠.” 그는 대출을 받으러 찾아간 은행 관계자들에게 “화재가 오히려 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공장을 아예 새로 지어서 품질을 높이고, 비용도 줄이면 브랜드 파워도 높아질 것”이라고 호소했다. 은행은 김 회장의 열의를 인정해 대출을 해줬고, 하림은 다시 살아났다.

“글로벌화가 한국농업 해법이죠”…네덜란드처럼 농산물 가공시장 육성

식사를 마칠 때쯤 되자 메밀싹으로 만든 시원한 ‘메밀싹주스’가 나왔다. 김 회장은 목이 탄 듯 들이켰다. “요즘 가장 고민하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국 농업의 글로벌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림그룹은 미국에서 지주회사인 하림USA 아래 하림팜, 알렌하림푸드 2개 회사를 운영 중이다. 그는 “한국의 곡물 자급률은 22%밖에 안된다. 농산물 선진국들이 한국으로 곡물 수출을 안하면 굶어죽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다는 얘기”라며 농업이 한국이라는 틀을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또 “농업이 앞으로 가장 수익성 높은 사업이 될 것이라는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말했다. “저도 20년 전부터 ‘농업이 한국을 먹여살릴 미래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고 얘기해왔습니다. 소득 증가와 도시화는 농업의 산업화와 동시에 진행될 수밖에 없거든요.”

그가 생각하는 한국 농업의 이상형은 ‘네덜란드 모델’이다. 김 회장은 “네덜란드는 오렌지를 생산하지 못하지만, 오렌지 주스 수출로 유명한 나라”라며 “그 비결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미에서 5만t급 배로 오렌지를 수입해 로테르담 항구의 과일전용 부두에서 재포장하고 주스를 만들어 유럽 전역에 수출하는 것은 농업도 얼마나 산업화를 잘하느냐에 따라 어느 정도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김홍국 회장의 단골집 맷돌소바 100% 메밀국수로 만든 소바·두툼한 돈가스 ‘감칠맛’

‘맷돌소바’는 압구정성당 뒤쪽 골목에 위치한 메밀 전문점으로 2010년 5월 문을 열었다. 지하철 압구정역 5번 출구로 나와 압구정성당 골목으로 들어가면 간판이 보인다.

입구로 들어서면 메밀 도정장치가 눈에 띈다. 이곳에서는 직접 도정한 메밀로 국수를 만든다. 100% 메밀로 빚는 국수다. 보통의 메밀국수가 결착력을 높이기 위해 밀가루와 전분을 섞는 것과 대조적이다. 맷돌을 천천히 돌려 열이 나지 않게 도정하는 방식이다.

메밀에는 모세혈관의 탄력성을 지켜주고 혈압을 조절해 노화를 예방하는 ‘루틴’ 성분이 많이 들어있다. 칼로리가 적은데도 포만감은 커서 다이어트에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부미용에 좋은 ‘시스틴’ 성분과 ‘필수아미노산’, ‘비타민B’ 등도 함유하고 있다.

자루소바가 대표메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메밀100%면(1만2000원), 쓴메밀면(1만6000원), 우동면(7000원) 등 취향에 따라 면 종류를 선택할 수 있다.

점심시간에는 실속세트로 자루소바와 돈가스가 함께 나오는 자루소바세트(1만5000원)가 인기다. (02)540-4578

송종현·강진규 기자 scre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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