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를 위한 미술산책] 안정감? 역동감?…어떻게 대상을 배치하느냐가 느낌 좌우한다

입력 2013-08-02 17:45   수정 2013-08-02 21:54

정석범 문화전문기자의 CEO를 위한 미술산책 (7) 구도의 심리학



두 남녀가 벌건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있다. 테이블 위에는 싸구려 독주인 압생트가 놓여있다. 여인은 눈에 초점도 없이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이 완전히 희망을 잃은 사람처럼 보인다. 그 옆에는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반항적 얼굴을 한 남자가 파이프를 물고 앉아 있다. 그 역시 관객과 눈을 마주치기 싫다는 듯 시선을 밖으로 돌리고 있다.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에드가 드가(1834~1917)가 그린 ‘압생트’를 바라보는 감상자의 심기는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런데 그런 불편한 감정을 자아내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구도다. 화가는 두 주인공을 화면의 중심에 배치하지 않고 왼쪽 상단에서 오른쪽 하단으로 내리그은 대각선의 오른쪽에 배치했다. 짙은 채색의 우울한 인물들을 위쪽에 배치해서인지 그림을 바라보는 감상자의 마음은 웬지 불안하다. 무게 중심이 위로 쏠렸으니 그런 느낌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구도는 미술작품에 질서를 부여하는 장치다. 질서가 없으면 그림은 산만한 느낌이 들 것이고 그렇게 되면 감상자의 시선을 붙들어 매기 어렵다. 전통적으로 그림에서 가장 많이 채택된 구도는 피라미드(혹은 삼각형) 구도였다. 화가가 묘사하려는 주요한 요소들을 화면 좌우의 모서리와 상단 가운데를 연결한 피라미드 구조 안에 배열하는 것을 말한다. 자연히 묘사하고자 하는 인물들은 가운데에 자리하고 배경은 피라미드 좌우의 직삼각형 안에 묘사된다. 따라서 무게 중심은 자연히 화면 중간 또는 그 아래에 자리하게 되므로 감상자는 심리적인 안정감 속에서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이 구도가 본격적으로 채택된 것은 르네상스 시대였다. 기독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치중했던 중세 그림은 대부분 구도에 대한 특별한 의식 없이 나열식으로 배치하는 때가 많았다. 좌우로 균형 잡힌 피라미드 구도의 장점을 알아차린 것은 르네상스 화가들이었다. 특히 원근법을 구사하는데 이 구도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피라미드 안에 가까운 대상을 배치하고 좌우의 삼각형 공간에 멀찍이 보이는 대상을 배열하면 자연스레 원근감이 만들어지기 때문이었다.

르네상스 3대 화가 중의 한 사람인 라파엘로(1843~1520)는 피라미드 구도의 열렬한 옹호자였다. 1507년 작품인 ‘카니지아니의 성모’는 그 대표적인 예. 원래 피렌체의 카니지아니 가문이 소유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작품을 보면 아래 오른쪽에 성모와 아기 예수, 왼쪽에는 성녀 엘리자베스와 그의 아들 세례 요한이 각각 자리하고 있고 이들 위쪽에는 지팡이를 짚은 요셉이 서 있다.

이 다섯 명의 인물은 마치 피라미드 모양의 탑을 쌓아올린 것 같은 모양으로 그림 전면에 그려져 있다. 그들 좌우의 공간에는 저 멀리 전원과 도시가 대기원근법으로 정교하게 묘사돼 있다. 다소 작위적인 느낌이 들긴 하지만 피라미드 구조 속에 묘사된 성가족은 편안하고 안정된 자세를 하고 있어 보는 이에게 심리적 안정감과 함께 시각적인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또 그림을 처음 보는 순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피라미드 안의 인물에 집중하게 돼 화가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손쉽게 파악할 수 있다.

피라미드 구도는 유화물감의 발명, 명암법, 원근법과 함께 르네상스 회화의 4대 혁신으로 일컬어질 정도로 회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미켈란젤로 같은 작가는 회화는 물론 ‘피에타’ 같은 조각 작품에서도 피라미드 구도를 채택할 정도였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를 무릎 위에 앉힌 채 비탄에 잠긴 성모의 모습을 묘사한 이 작품은 한편으로는 슬픔을 자아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따스한 어머니의 무릎 위에서 편안히 휴식을 취하는 듯한 포근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런 느낌은 윤곽을 안정적인 삼각형으로 묘사한 데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 밖에 원형 구도는 다이내믹한 장면을 연출할 때 자주 사용된다. 하늘로 승천하는 예수나 성자의 모습을 그린 천장화, 전투 장면을 묘사한 그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구도는 보는 이의 감정에 호소하는 장점을 지녔다.

결국 구도는 겉모습은 기하학적으로 차갑지만 그 본질은 지극히 감성적임을 알 수 있다. 구도는 화가가 관객을 작품으로 유도하는 삐끼인 셈이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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