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스토리 ⑧] 아시아 1호 엔진개발 업체 '테너지'의 발칙한 도전…"엔진 선교사를 꿈꾸다"

입력 2013-08-07 09:07   수정 2013-08-07 16:31

끝모를 불황의 터널에서도 남다른 노력과 혁신,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우뚝 선 성공기업들의 숨은 이야기로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한경닷컴 산업경제팀 기자들이 취재현장에서 발굴한 기업들의 생생한 성공스토리는 독자 여러분들에게 도전과 위로가 되어 드릴 것입니다. <편집자 주>


1984년 현대자동차 용인 마북연구소에 모인 10명의 청년 엔지니어들에게 고(故) 정주영 회장의 ‘특명’이 떨어졌다. 바로 순수 국산 기술로 자동차 엔진을 개발하라는 것.

지금은 수소연료전지차, 전기차 등 친환경차 엔진 연구의 메카로 자리 잡은 마북연구소지만 당시 한국은 엔진 개발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국내 최초 자체 모델인 ‘포니’를 선보인지 10년이 다되도록 포니의 심장은 여전히 일본 미쓰비시에 전량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설계도면 한 장 없이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해외에서 공수해온 엔진을 뜯어보는 것부터 시작해 회전 시 충격을 견디는 소재를 개발하는 데만 1년이 걸릴 정도로 그 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그러나 엔진을 만드는 뿌리 기술부터 국산화하지 않으면 한국의 자동차 산업은 미래가 없다고 본 청년들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마북연구소가 문을 연지 7년 만에 독자 엔진 개발에 성공, 국산 심장을 얹은 현대차 스쿠프가 세상에 나왔다. 열혈 청년들의 뚝심이 빛을 본 순간이었다.

그 청년들 가운데도 유난스럽게 포기를 모르는 엔지니어가 있었다. 당시 동료들에게 ‘시체처리반장’으로 통하던 지금의 최재권 테너지 대표이사(57)가 그 주인공이다. 개발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죽은 엔진을 다시 살려낸다고 해서 붙은 별명답게 최 대표는 국내 1호 자동차 심장 전문의로 꼽힌다.

그런 그가 2008년 3월 아시아 최초 엔진개발 용역 전문 업체인 테너지를 창업하며 또 다른 도전에 출사표를 던졌다. 테너지는 '테크놀로지 오브 에너지'의 약자다. ‘최초의 사나이’ 최재권 대표를 수원 광교테크노밸리에서 만났다.

◆ 가시밭이라도 가슴이 뛰는 길을 택한 ‘최초의 사나이’

최 대표에게 평탄한 길이란 곧 지루한 길을 뜻한다. 그만큼 안정된 미래보다는 가슴을 뛰게 하는 도전을 좇아온 그다. 현대차 엔진개발실장에서 독일 엔진개발 업체 FEV 한국지사장을 거쳐 테너지를 일구기까지. 남들은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비웃었지만 그에게 도전은 ‘최초의 사나이’라는 타이틀을 달아준 원동력이다.

“현대차에서 독자 엔진 개발에 성공한 후 매번 특진을 놓쳐본 적이 없습니다. 정상적인 과정이라면 25년 쯤 걸리는 엔진개발 총괄 실장을 입사 15년 만에 꿰찼으니 그야말로 고속 승진이었죠. 그러나 막상 결정권자가 되니 지루하더군요. 기름때가 뭍은 부품 더미에 파묻혀 있을 때 가장 즐거운 공대생이 서류에 사인이나 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었죠.”

‘지루하다’는 이유로 탄탄대로를 버린 그가 선택한 길은 FEV 한국지사장이었다. 오스트리아 AVL, 영국 리카도와 함께 세계 3대 엔진개발 업체 중 하나로 꼽히는 FEV에서 한국이 넘지 못한 기술의 파고를 경험해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직접 부딪혀본 장벽은 생각만큼 높지 않았다고 최 대표는 회고했다.

“국내 업체가 FEV에 엔진 개발을 의뢰하면 그들은 이삼류급 엔지니어를 파견합니다. 독일 엔진이면 무조건 신봉하는 분위기인데다 대안을 제시할 국내 개발업체가 없기 때문이죠. 그러나 본사에서 파견한 엔지니어가 풀지 못한 엔진 파열 문제를 저의 개인적인 아이디어로 해결했을 정도로 그들의 기술력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어요. 우리 손으로 엔진개발을 시작해도 충분히 통할거란 자신감이 거기서 생겼습니다.”

자신감 하나로 최 대표는 52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테너지의 문을 열었다. 국내 최초이자 아시아 최초의 엔진개발 용역 전문업체라는 화려한 타이틀은 자랑했지만 출발은 여느 신생 중소기업과 다르지 않았다. 억대 대출금으로 마련한 연구실과 4명뿐인 엔지니어, 그리고 유수의 엔진개발 업체와 겨룰 수 있다는 최 대표의 도전정신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엔진개발은 크게 설계와 시험 개발 두 부분으로 이뤄진다. 평균 6개월 정도 걸리는 엔진 설계는 전체 청사진을 만들어 나가는 기획단계다. 설계를 바탕으로 시험개발이 이뤄진다. 시험개발은 1년~1년반 정도 소요된다. 이 과정에서 엔진 각 부분이 어떤 기능을 담당하는지,성능은 설계대로 잘나오는지,신뢰도는 어떤지 등을 검토한 뒤 개선해 내놓게 된다.

따라서 엔진 설계에 요구되는 기술력보다는 시험개발에 필요한 기술력이 더 중요한 셈이다. 설계과정에서 잘못된 부분들을 시험개발에서 바로 잡기 때문이다. 비용으로 볼 때도 전체 엔진개발 비용 중 설계에 20~30%가량 들고 시험개발에 나머지가 든다.

테너지는 설계와 시험개발을 턴키로 진행하는 형태와 각기 별도로 진행하는 개별 형태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이는 고객사의 요구나 프로젝트의 성격에 따라 결정된다.

◆ '신뢰'와 '입소문'으로 선입견의 벽을 부수다

지금은 세계 3대 엔진개발업체와 동등한 위치에서 수주 경쟁을 벌일 만큼 기술력을 인정받았지만 사업 초기만 해도 테너지의 성공을 점치는 이는 드물었다. 한국 업체는 독일이나 일본에 비해 엔진 개발 역량이 뒤쳐질 것이라는 선입견 탓이었다.

“국내 완성차 업체 가운데 현대차를 빼면 독자적인 엔진 개발력을 갖춘 곳이 없습니다. 산업용 엔진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만큼 테너지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뜻이죠. 그런데 막상 사업을 시작하니 기술력이 아닌 선입견이 높은 장벽으로 다가오더군요. 아무리 뛰어난 엔진 솔루션을 제안해도 한국 신생업체가 엔지니어만 수천 명인 해외업체를 따라갈 수 있겠냐며 코웃음 치기 일쑤였죠.”

선입견의 벽을 부순 것은 다름 아닌 최 대표가 쌓아둔 개인적인 신뢰였다. FEV 한국지사장으로 재임 중이던 시절 미국 커민스사에 수출해야 할 트랙터 엔진에 생긴 문제를 개인적으로 해결해주면서 국제종합기계와 인연을 맺었던 것. 이후 국제종합기계의 2.4ℓ, 3.4ℓ 직분사 디젤엔진 개발을 맡아 테너지 창업 후 첫 수주의 물고를 텄다.

“당시 국제종합기계는 엔진의 실린더 헤드에 금이 가는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3년간 내로라하는 해외업체에 맡겨도 해결하지 못한 것이었죠. 이런 문제의 원인을 설계와 불량 제품만 보고 알아내니 저를 바라보는 눈빛부터 달라지더군요. 그 뒤부터 국제종합기계는 테너지의 가장 오래된 단골이 됐습니다.”

국제종합기계와 쌓은 신뢰는 곧 입소문을 타고 번졌다. 국제종합기계의 경쟁사인 대동공업과 국제종합기계를 인수하려던 두산인프라코어가 테너지에 엔진 개발을 의뢰해 온 것.

입소문은 산업용 중장비에서 완성차 업계까지 이어졌다. 쌍용차의 효자 모델로 꼽히는 코란도C 가솔린 모델의 엔진도 테너지가 설계부터 시험까지 도맡은 대표 작품이다. 테너지는 이 외에도 현대차, 한국GM, 도요타 등 국내·외 완성차 모델의 연비 해석, 엔진 교정 등을 담당했다.

영업부서가 따로 없지만 매년 매출이 급증할 정도로 입소문의 효과는 컸다. 창업 첫 해인 2008년 12억원으로 시작했던 매출액은 다음해 40억원으로 3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엔 러시아, 동남아 등으로 시장을 다각화하면서 17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알아야 오너다”

테너지는 120명에 이르는 직원들 중 40% 이상이 석·박사 출신일 정도로 실력 있는 인재풀을 자랑한다. 그러나 최재권 대표의 학구열은 어느 젊은 두뇌도 따라오지 못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알아야 제대로 된 오너라는 그의 철학 때문이다.

“요리를 할 줄 모르는 레스토랑 오너가 유명 셰프를 영입해 큰돈을 벌었다고 합시다. 이때 셰프는 오너에게 터무니없이 높은 연봉을 요구하거나 레스토랑을 그만두고 직접 사업을 시작할겁니다. 본인의 실력만으로 레스토랑이 성공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중소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너가 더 많이 알지 않으면 확보한 인재와 기술력을 꾸준히 가져갈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최 대표는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책장에 빼곡히 꽂힌 책들이 말해주듯 그는 하루도 논문 읽기를 거르지 않는다. 경쟁 업체가 새롭게 개발한 엔진은 반드시 구해 뜯어보는 탓에 작업실은 각종 부품들로 가득하다. 아는 게 하나 늘면 엔진에 생긴 오류 하나를 더 줄일 수 있다는 절박한 마음에서 나온 학구열이다.

연구한 것을 직원들과 나누는 것도 최 대표의 몫이다. 매일매일 엔진 시험 결과를 두고 토론하는 것은 테너지 직원들의 일상이다. 사소한 문제라도 질문을 하거나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도록 최 대표의 방문은 활짝 열려있다.

남다른 학구열 탓에 하루 종일 시험실이나 책 속에 파묻혀 있을 법 하지만 최 대표는 의외로 정시 퇴근을 칼 같이 지키는 ‘칼퇴족’이다.

“엔진 개발은 하루 이틀이나 1~2년에 끝나는 싸움이 아닙니다. 10~20년을 내다보고 꾸준히 해 나가는 작업이죠. 그만큼 항상 충분한 수면과 휴식을 취하는 게 중요합니다. 대신 일하는 시간만큼은 매 순간이 전쟁이라는 각오로 임하죠. 집중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도록 말이죠.”

◆ 엔진 개발을 넘어 부품 수출까지…‘엔진 선교사’를 꿈꾸다

테너지는 내년을 새도운 도약의 원년으로 삼았다. 서울시가 의뢰한 시내버스 연비개선 프로젝트를 통해 2014년 매출액을 올해의 두 배인 400억원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200억원의 비용을 들여 동탄에 제 2연구소를 짓는 등 내실 다지기에도 힘쓴다는 전략이다.

최 대표는 연비개선 프로젝트의 성과를 기반으로 중국 엔진개발 시장에 뛰어들 목표도 갖고 있다. 극심한 대기오염으로 중국 정부가 자동차 연비 기준을 강화하고 있는 만큼 잠재력이 큰 시장이라는 판단에서다.

“중국을 대상으로 엔진개발 기술을 지원한다고 하면 일각에선 기술유출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독일은 일찍이 이를 시장개척으로 보고 국가가 나서서 장려했죠. 그 결과 독일 FEV는 엔진 개발로 한 해에 1조60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세계적인 엔진개발 업체로 성장했습니다. 그들이 개발한 엔진에 들어간 독일산 부품이 전 세계에 수출되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반면 엔진 개발 업체가 전무한 일본에선 기술자 개인이 도면 전체를 해외에 팔아넘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히려 전문 기업이 나서 기술 지원을 할 경우 적정한 선을 지키게 된다는 게 최 대표의 생각이다. 회사의 사활이 걸려있는 만큼 그 기술을 몽땅 넘기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

“선교사가 종교를 알릴 때 종교 자체도 의미가 있지만 이를 둘러싼 문화가 전파된다는 게 더 중요합니다. 테너지가 러시아 완성차 업체의 엔진을 개발할 때 전부 국산 부품을 썼어요. 엔진 개발 기술만이 아니라 부품까지 수출한 셈이죠.”

중국, 러시아 등 신흥국을 넘어 엔진 종주국인 독일에도 한국산 엔진 기술을 전파하고 싶다는 최재권 대표. ‘엔진 선교사’를 꿈꾸는 최 대표의 도전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한경닷컴 최유리 기자 now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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