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과 날줄] '뒤란', 뒤로 넘기는 시간의 아름다움

입력 2013-09-06 18:06   수정 2013-09-07 02:12

"느림과 나눔의 情이 살아 있는
뒤란의 정서로 삶을 음미하며
진정한 시간의 주인이 되기를"

박형준 시인



어린 시절의 희미한 기억이지만 점심 때마다 울리던 ‘오포(午砲)’ 소리를 기억한다. 점심시간이 되면 관청에서 사이렌을 울렸는데 이때가 되면 들판에서 일하던 농부들도, 골목에서 자치기를 하며 놀던 꼬마들도 하던 일이나 놀이를 멈추고 모두 집에 돌아가 한자리에 모여 점심을 먹었다. 밀레의 ‘만종’도 떠오른다. 만종은 황혼녘에 한 남자와 여자가 삼종기도를 올리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밀레는 유년시절에 할머니가 들에서 일하다가도 종이 울리면 일을 멈추고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를 올리는 모습을 생각하며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인간은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가면서 그 시간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 애쓰는 존재이지만, 또 한편으로 그 시간을 함께 나눠 쓰며 서로를 배려할 줄 안다. 그런 시간이 아침, 점심, 저녁 시간이었고 그때는 나만이 아니라 남을 생각하며 우리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한 자리가 마련됐다. 그러나 현대가 되면서 우리가 함께 나눠 쓸 시간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말 중에 ‘코리안 타임’이란 말이 있다. 정해진 약속 시간보다 20~30분씩 늦는 한국 사람을 일컬어 외국 사람들이 그렇게 부른 것인데, 그 코리안 타임이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는 거의 통용되지 않는다. 지금의 한국인은 너무나 시간을 잘 지킬 뿐만 아니라 그 시간마저 앞서가려고 해서 외국인들이 한국인으로부터 제일 먼저 연상하는 것 중의 하나가 ‘빨리 빨리’가 됐다. ‘코리안 타임’에서 ‘빨리빨리 사회’로의 변모는 우리 사회가 그만큼 근대화가 됐다는 상징적인 징표이다. 그렇지만 시간은 ‘앞’만 있는 것이 아니라 ‘뒤’도 있다. 우리는 시간의 앞뜰만 보려고 하지, 시간의 뒤뜰은 보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작년에 이어 올여름에 ‘인도를 생각하는 예술가 모임’의 일원으로 인도를 방문했는데, 네루대에서 열린 학술회의에서 인도 측 기조발제를 맡은 마카란드 파란자페 네루대 교수의 말에 크게 공감한 바가 있다. 그는 인도의 대표적 작가 아난타 머시의 비유를 통해 인도의 근대화를 설명한다. 아난타 머시에 따르면 ‘앞뜰’은 힘과 상업의 국제 언어인 영어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반면 ‘뒤뜰’은 여자들이 사투리와 구어로 잡담을 하는 공간이자, 요리법과 스캔들이 교환되는 공간이다. 표면적으로는 앞뜰만이 전부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누구인지는 뒤뜰에서 형성된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뒤란’이란 말이 퍼뜩 생각났다. 우리의 전통사회에서는 ‘뒤뜰’이라는 말을 ‘뒤란’이라고 불렀다. 그 뒤란에는 대숲이 있고 감나무가 있고 그 감나무 아래 장독대들이 놓여 있었다. 그 뒤란에는 새떼들이 먹으라고 사발에 흰 밥알들이 담겨 있었고 장독대에서 퍼내는 것들은 하나같이 구수한 맛을 지니고 있었다. 앞뜰에서 하지 못하는 속이야기를 우리들은 뒤란에서 할 수 있었고 새하고도 먹을 것을 나눠먹을 줄 알았다. 감나무에서 떨어진 떫은 감을 뒤란의 그늘로 가득한 장독대 뚜껑에 올려놓고 우려먹던 맛은 또 어땠는지. 이처럼 뜨거운 한여름에 장독대 위에서 익어가며 떫었던 땡감이 홍시처럼 달콤해지는 시간이 뒤란에는 있었다.

추석 명절이 다가오는 요즘, 나는 앞으로만 달리는 시간을 접어두고 잠시 뒤란의 시간을 생각해본다. 우리들도 시간에 쫓겨 살지만 말고 이런 뒤란의 시간을 자신의 삶에 마련하는 것은 어떤지. 우리가 인생이라는 한 권의 책을 읽어간다면 책의 내용이 너무 궁금해 무조건 앞으로만 페이지를 빨리빨리 넘기지 말아야 할 일이다. 잠깐잠깐 페이지를 뒤로 넘기며 책의 내용을 음미하며 자신의 삶을 성찰해보는 여유를 마련해볼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시간이 가지고 있는 ‘앞’과 ‘뒤’라는 양면성이며, 모순적이고 이질적으로 보이는 그런 두 시간을 우리 자신의 삶에서 통합적으로 사유할 때 비로소 우리는 시간의 참주인이 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시간에서 공동적인 시간을 마련해 우리가 각자 하는 일과 행동은 다르지만 그 본질적인 밑바탕에서는 ‘하나’라는 것을 확인하는 존재가 아닌가.

박형준 <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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