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마누라

입력 2013-10-14 21:56  

전생에 8000겁의 인연이었다는 부부
이 가을, 더 소중히 느껴지는 마누라

김영식 천호식품 회장 kys@chunho.net



“자기야 나 배고파서 순대 2000원어치 사서 집에 간다. 혼자 먹으려고. 당신 혼자 너무 맛있는 거 먹지 마!” 저녁 모임에 가고 있는데 아내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어찌나 짠한지 그 메시지를 보고 차를 돌렸다. 식탁에서 외로이 먹고 있을 생각을 하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서둘러 집에 도착하니 이미 상황은 끝. 아내는 TV를 보고 있었고 오히려 나를 보고 놀라는 눈치였다. 문자메시지를 배운 지 얼마 안 된 터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메시지를 보냈단다. ‘낚인 것’에 항의하며 툴툴거렸던 기억이 난다.

며칠 전부터 독일에 머무르고 있다. 한 달 남짓의 꽤 긴 출장이다. 이번엔 아내와 함께다. 아내와 출장을 함께 오긴 처음이다. 해외 출장은 거의 분 단위로 움직이기 때문에 일정이 빡빡하다. 미팅도 많고 이동도 많다 보니 체력 소모가 큰 편이다. 그래서 출장 때는 아내와 동행하지 않는데 이번에는 함께하게 됐다. 혼자 집에 두는 것도 걸렸지만 아내가 함께하고 싶어해서다.

결혼한 지 35년이 훌쩍 넘었다. 아무것도 없던 내게 시집와 이래저래 고생을 많이 했다. 단칸방에 살 때도, 손수레를 끌며 장사를 할 때도, 사업이 어려워 생사를 고민할 때도 한결같이 내 곁을 지켜줬다. 특히 아내는 어려운 시기마다 가장 진실한 조언으로 나를 성장시킨 사람이다.

불교에서 부부의 인연은 8000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1겁은 10리에 이르는 거대한 바위를 천 년에 한 번씩 선녀가 내려와 옷깃으로 살짝 스치면서 그 바위가 다 마모될 때까지의 시간을 말한다. 그러니 8000겁 부부의 인연은 보통 인연이 아닌 셈이다. 그렇게 긴 시간을 거쳐서 만난 부부, 지금 내 곁에 있는 남편과 아내인 것이다.

서로 맞지 않아 투닥투닥 싸우기도 하고 말다툼도 있다. 그럴 때마다 생각한다. 하루라도 못 보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았던 날들이 있었음을. 힘들어도 좋으니 저 사람 옆에 살게 해달라고 빌었던 날들이 있었음을. 그리고 아프기라도 한 날엔 옆에서 밤새워 지켜줄 사람은 그래도 아내밖에 없음을. 더 훗날 백발이 된 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너밖에 없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옆에 있는 아내밖에 없음을.

계절의 갱년기 가을이다. 외로움도 커지고 그리움도 커지는 계절이다. 내 옆의 소중한 사람이 쓸쓸해하지는 않는지 살펴야 할 때다.

김영식 < 천호식품 회장 kys@chunho.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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