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복식부기

입력 2013-10-30 21:42   수정 2013-10-31 05:33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마피아 소재 영화에는 하나같이 회계사가 등장한다. ‘언터처블’의 그 유명한 기차역 계단 총격 장면도 수사관 네스(케빈 코스트너 분)가 알 카포네를 기소하는 데 결정적 증거를 가진 그의 회계사를 호송하는 과정이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카포네가 시카고 밤의 황제가 되기 전, 볼티모어에서 회계사로 일했다는 점이다. 그의 회계사 경험은 사업전반을 장악하는 힘이 됐다.

회계를 ‘비즈니스 세계의 언어’라고 부른다. 만약 회계가 없다면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바벨탑 같은 혼란을 겪었을 것이다. 회계의 기원은 고대 수메르,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중세까지도 채권·채무나 재산관리를 위해 기록해두는 단식부기에 머물렀다. 가계부 수준이다.

복잡한 상거래를 한눈에 파악하게 하는 복식부기는 14세기 초 해상무역을 지배했던 베네치아 상인들이 처음 쓰기 시작했다. 이는 아라비아숫자의 전래, 수학 대수와 연관이 깊다. 대수식에서 한 변의 플러스인 것이 다른 변으로 가면 마이너스가 되듯이, 차변과 대변 양쪽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복식부기다.

복식부기가 널리 확산된 것은 ‘회계의 아버지’로 불리는 베네치아의 수도사 루카 파치올리의 저서 ‘대수, 기하, 비율 및 비례총람’(1494년)을 통해서다. 파치올리는 “사업에 성공하려면 사업 전부를 정확히, 그것도 한눈에 알아야 하며, 복식부기를 알고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도 복식부기 덕이다. 그는 당시 탐험을 가장한 사기가 성행해 주저하는 투자자들에게 복식부기를 쓰면 속일 수 없다고 설득해 투자를 이끌어냈다. 복식부기는 근대 주식회사와 자본주의 태동의 밑거름이 됐다. ‘수량화 혁명’의 저자 앨프리드 크로스비는 서유럽이 세계를 지배한 계기 중 하나로 복식부기 발명을 꼽았다. 막스 베버는 복식부기가 서구와 비서구를 가르는 기준이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파치올리보다 200년 이상 앞서 고려 개성상인들이 복식부기를 쓴 흔적이 있다. 자산 부채 이익 손해 등 4가지 부기 문서를 통해 상거래 내역을 기록하는 ‘사개치부법(四介治簿法)’을 사용했다. 서양 복식부기보다 더 정교했지만 실증자료가 없어 입증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최근 개성상인의 후손이 소장한 19세기 회계장부 14권이 발견돼 관심을 모은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오늘부터 사흘간 개성 복식부기에 관한 국제학술대회를 연다. 금속인쇄술과 더불어 조상의 지혜에 새삼 감탄하면서도 왜 계승하지 못하고 단절됐는지 아쉬움도 크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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