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페르디낭 드 소쉬르

입력 2013-11-01 21:53   수정 2013-11-02 07:02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18세기 유럽에서 언어학이 발달한 것은 영국이나 프랑스 등 열강들의 인도 진출 덕분이었다. 유럽인들은 당시 산스크리트어를 연구하면서 구조가 놀랍도록 유럽의 조어(祖語)와 닮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자연스레 유럽어들과 산스크리트어를 조사 비교해 일정한 법칙을 유도하려는 비교언어학이 인기를 끌었다.

언어학의 대부 페르디낭 드 소쉬르(1857~1913년)도 처음에는 역사언어학에 관심을 가졌다. 그가 ‘인도유럽어족 체계의 모음연구’ 논문을 발표해 언어학계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은 19세 때였다. 13세 때 이미 영어 불어 독어는 물론 그리스어와 라틴어에 능통했던 그는 사라진 원시 유럽 조어의 모음 발음을 인도어와 비교해 찾아냈다. 소위 ‘후두음 가설’을 이 논문에서 소개한 것이다.

하지만 소쉬르는 20대 들어 역사언어학에 회의를 갖게 된다. 살아 있는 형태의 언어학이 역사학으로 변질되는 것을 가장 우려했던 것이다. 자연언어는 본질적으로 구조적이고 형식적이라고 파악했던 그는 언어이론도 형식화하고 체계화해야 한다고 믿었다. 적어도 대수나 기하학 수준의 구조와 형식화를 언어이론에 요구한 것이다.

그는 인간 내면에서 대상을 파악하는 언어적 본질이 있으며 이를 ‘랑그(langue)’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를 음성언어로 나타내는 발화체계를 ‘파롤(parole)’이라고 했다. 언어마다 랑그는 같지만 파롤은 다르다고 설명했다.

소쉬르는 집에 틀어박혀 살았지만 논문이나 책을 쓰지는 않았다. 언어학의 성경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일반언어학 강의’도 그가 죽고 나서 제자들이 강의 노트를 짜깁기해 만들었다. 그가 책을 쓰지 않았던 것은 그가 만든 언어구조학이 미완성 상태였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소쉬르는 언어의 완벽한 수량적이고 계량적인 모델을 만들고 싶었지만 한계에 부닥쳤다. 하지만 소쉬르가 언어학에서만 다루고 싶었던 구조적 방법론은 그의 열망과 반대로 철학이나 심리학 인류학 등 다른 학문에서 주요 방법론으로 원용됐다. 20세기 들어 구조주의라고 불릴 만큼 주류 철학 사조로 성장했지만 구조라는 단어가 만들어낸 학문적 과오가 적지 않았다. 주로 좌익 이론가들이 애용하는 단어가 되면서 지금은 혐오스런 단어가 되고 말았다는 비판도 있다.

소쉬르 타계 100년이다. 국내에서도 한국기호학회 주최로 오늘 고려대에서 학술대회가 열리는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소쉬르가 한글을 알았더라면 하는 생각도 해본다.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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