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복어 독

입력 2013-11-13 21:34   수정 2013-11-15 18:26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일본 사무라이들이 모인 자리에 누군가 귀한 복엇국을 가져왔다. 그러나 독이 무서워 선뜻 손대는 사람이 없었다. 일행 중 한 명이 “저 다리 위 거지에게 먼저 먹여보자”고 하자 모두들 손뼉을 쳤다. 거지는 고맙다며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30분 후 거지가 건재한 걸 확인한 사람들이 복엇국을 다 먹고는 이를 쑤시며 다가가 맛이 어땠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거지는 “다들 드셨어요? 그럼 저도 먹어야겠네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모로 미야의 《에도 일본》에 나오는 얘기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복어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소집령을 받은 무사들이 나고야로 오던 중 복어 산지인 시모노세키에서 중독 사고로 잇따라 죽자 복어 금지령까지 내려야 했다. 이렇듯 ‘포기하기엔 너무나 유혹적인 맛’이어서 일본에서는 복어를 목숨을 건 불륜에 비유했고, 중국에서는 경국지색인 서시의 젖가슴살에 빗댔다.

예나 지금이나 금지된 것일수록 유혹이 큰 법이다. 독성이 강할수록 맛이 일품이니 더 그렇다. 독이 두려워 도미를 대신 넣고 끓여 먹기도 했다니 생선의 제왕조차 복어의 진미에는 못 따르는 대용품에 불과했다. 조선 실학자 이덕무는 아예 “북한산 백운대에 오르지 말고 복엇국을 먹지 말라”는 가훈을 써 놓고 자식들을 단속하기도 했다.

독은 난소에 많고 간, 어피, 장에도 있는데 아무리 끓여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먹이사슬 속의 세균성 독소가 비축된 것이라는 설이 한동안 우세했지만 최근엔 복어알에서도 자체적으로 독이 생성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독성이 청산가리의 1000배나 되는데도 딱히 해독제가 없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복어는 한·중·일뿐만 아니라 동남아, 이집트 사람들도 좋아한다. 비타민 B1, B2 등이 많고 지방은 적은데다 피를 맑게 해주고 고혈압, 당뇨 등 성인병 예방에 효과적이라고 한다. 골프 칠 때 비거리가 늘어난다는 속설까지 나돌아 복어 독을 드링크에 타 먹고 골프장 가는 길에 차 안에서 사망한 경우도 있었다.

이런 독도 거꾸로 활용하면 약이 될 수 있다. 화살에 묻은 독에서 강심제를 발견하고, 주목에서 항암제를 추출한 것처럼 복어 독에서 보톡스를 얻었다고 한다. 신경통과 류머티즘의 진통제로도 쓴다. 세상의 모든 외래물질 중 독 아닌 게 없다는 건 고대 의사들도 알고 있었다. 단지 양이 많고 적음에 따라 약도 되고 독도 되는 것이다. 해독제 역시 독에서 찾아내기 때문에 머잖아 복어 해독제가 나올지도 모른다. 주당들을 설레게 하는 복어철이 벌써 왔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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