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메이커 MD의 세계①]'손댔다 하면 100억' 청담동 헤어살롱마저 줄세운 GS샵 안옥희의 '7타수 7안타 7홈런'

입력 2013-11-20 09:31   수정 2013-11-20 14:00

장기불황에다 '규제 허들'까지 높아지면서 유통업계는 날마다 울상입니다. 1인가구가 급증하는 '솔로이코노미 시대'가 도래했고 합리적인 소비로 자체 브랜드(PL·PB) 개발도 봇물을 이룹니다. 진열대와 TV, 온라인·모바일 구분없이 오늘날 판매경쟁은 손바닥 위에서도 치열합니다. '21세기 베니스의 상인'으로 불리는 MD(merchandiser)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꾸준한 영업력이 곧바로 유통채널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불멸의 '맨파워'로 쓰러져가는 유통기업까지 일으켜 세운 MD의 밤낮 없는 활약상을 생생히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편집자 주>

[정현영 기자] 10년 이상 방송국 PD로 활동해오다 한솥밥을 먹어온 동료 PD한테도 '미친사람'이란 손가락질을 받으며 MD가 된 안옥희 GS샵 뷰티케어1팀 차장(39·사진). 그는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囊中之錐)'이었다. 늘 자신을 낮추어 말하고 행동해도 가진 재능이 너무 빼어나 저절로 빛을 발해서다.

"MD로 일하면서부터 지난날 콧대 높았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고 그제서야 진짜 인생을 배울 수 있었다"라고 고백하듯 입을 뗀 안 차장은 일반 소비자들이 알아볼 수 없는 무대 뒤 이미용계 MD다.

그래도 "'여지껏 구경해 본 적 없던' 신상품을 찾아내 소비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만나는 MD"라고 수줍게 자신을 소개했다.

3년 전부터 하나둘 등장한 '거품 염색제' '청담동 헤어살롱 트리트먼트' '진동 파운데이션' '셀프 젤네일' '자동 헤어스타일링기' '레인보우 샴푸' 여기까지 나열하면 어떨까. MD의 뜻도 모르던 소비자들 모두가 무릎을 탁 칠 것이다. 이미 전세계 이미용(화장품·헤어·메이크업·바디) 트렌드 앞에 선 '메가히트' 이미용품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히트상품들이 안옥희 차장의 머리와 손끝에서 나왔다.

나이 많은 PD 경력 골칫덩이 MD에서 이젠 청담동 헤어살롱 원장들까지 일렬종대 줄세워 성공시킨 이미용계 '미다스의 송곳' 안 차장을 서울 영등포구 GS강서타워 GS샵 본사에서 만났다.

◆ YTN·CJ오쇼핑·GS샵까지 10여년 앉아온 'PD 자리' 정리한 이유 '크리에이티브 열정'

대학에서 신문방송학과를 전공하며 PD의 꿈을 키워온 안 차장은 졸업하던 해 IMF 구제금융 사태가 터진 'IMF 세대'다. 공중파에서도 PD를 뽑지 않던 어려운 시기였기에 YTN 공채 6기 유일한 여성 광고영업직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래도 접지 못한 PD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연봉을 절반 가까이 줄여 CJ홈쇼핑 신입 PD로 다시 입사했다.

"애초부터 PD가 되고 싶었는데 '크리에이티브(creative) 비즈니스' 분야를 워낙 좋아했어요. 졸업은 다가오는데 방송사에서 PD를 안 뽑으니까 급한대로 광고 크리에이티브로 도전해보자 마음 먹었죠. 1년 이상 다녀봤는데 단순 영업직이더라구요. 동기가 CJ로 이직하면서 경력 PD 채용정보를 귀띔해 줘 다시 PD에 도전했죠."

안 차장은 CJ홈쇼핑으로 입사해 '크리에이티브 열정'을 쏟아부었다. 가전·디지털 담당 PD로 일하면서 김치냉장고 '딤채' 방송 연출부터 독창적인 방송을 구성, GS홈쇼핑 등 경쟁채널이 모방 방송을 시도할 정도였다. 곧바로 이미용을 담당하면서 그의 '크리에이티브 비즈니스' 능력은 도드라졌다.

"CJ에서 마지막으로 맡아 방송한 제품이 '댕기머리'였어요. 이미용제품만 4년 정도 연출했는데 힘들었지만 정말 즐거웠어요. 이미용은 기본적으로 여성의 감성을 이해해야 하고 제품 자체도 상당히 섬세하거든요. 다행히 훌륭한 선배를 만나 이미용 관련 비즈니스 매너부터 트렌드 분석 방법 등을 많이 터득했어요."

2001년 입사해 2007년까지 한창 '잘 나가던' 안 차장은 돌연 CJ홈쇼핑을 박차고 나왔다. PD선배들과 더 창의적인 도전에 나선 것이다. 약 6개월 간 인터넷 생방송 홈쇼핑 사업을 벌이던 그는 하지만 GS샵의 거급된 '러브콜'을 거부하지 못하고 자리를 옮긴다.

◆ 또다시 MD로 도전, 전직 PD에게 불어닥친 시련…"솔직히 '왕따'였다"

GS샵으로 이직해 2007년부터 2010년까지 방송 연출을 맡아온 안 차장은 어느덧 12년차 PD. '매너리즘'에 빠진 모습을 본 안 차장은 또다시 도전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MD의 세계로 직접 뛰어들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동료 PD와 수많은 MD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졌다. '떵떵거리던' 전직 PD에게 시련이 다가온 때다.

"홈쇼핑 PD로 일할 때 가장 답답했던 순간은 MD 본인도 쓰지 않는 상품을 가져와서 방송해 달라고 할 때에요. PD가 아무리 방송을 잘해도 매출이 나올 수 없는 것이죠. 홈쇼핑 매출에서 PD 역량은 많이 잡아도 15% 안팎이에요. 거짓말 해서 물건 팔 순 없으니깐요. 그래서 직접 'PD 인사이트'로 '대박 상품' 찾아보자 해서 MD로 인사발령 내달라고 요청했어요."

'겁도 없다' '정말 바보 같다' 'PD가 MD로 잘 될 확률은 '제로'다' 안 차장이 인사발령 당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이미용 MD만 고집하던 그는 이럴수록 어금니를 악물었다. 전통적으로 GS샵은 이미용업계 선두주자였고 가장 센 이곳에서 인정받고 싶었다는 얘기다.

"PD와 MD는 완전 다른 분야였어요. MD는 상품을 PD한테 가져다 줄 때까지 일하고 PD는 상품을 받고 나서 일하죠. 마치 다른 국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국경에서 만나 일하는 관계 같아요. 저도 PD로 일할 땐 몰랐어요. PD나 MD나 같은 걸 추구하면서도 정작 서로 직업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던 것이죠."

당시 '과장 MD'로 명함을 다시 판 그는 이후로 후배 PD로부터 단 한 번도 '선배'란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그간 큰소리로 꾸짖던 MD들은 응당 안 차장을 몹시도 싫어했다. 크리에이티브한 '대박 상품'을 찾아나선 그의 도전이 커다란 위기에 봉착한 순간이다.

"MD로 이직하고 나서 후회 많이 했죠. PD와 MD란 분야는 너무 많이 달랐고 2년이 지나도록 그야말로 사경을 헤맸죠. 동료 MD들은 판매 목표치 100% 이상을 훌쩍 넘기고 있는데 전 절반도 팔 지 못했거든요. 그렇다고 도와주는 PD와 MD도 없었고 '관둬야 하나'하는 생각만 했죠."

안 차장이 겪어본 MD는 모든 직업 가운데 꼭 '크리에이티브'해야만 버틸 수 있는 직업이었다. 특히 홈쇼핑 MD는 남다른 안목과 더불어 열정과 끼 그리고 독창성 짙은 에너지와 자신감까지 두루 갖춰야 망하지 않는 직업이라고 안 차장은 힘주어 말했다.


◆ '꼴지 MD'가 '1등 MD'로 우뚝…4년 지나자 청담동 원장님들 "안 차장만 믿어요"

"MD는 반드시 마케터(마케팅의 전문가)가 돼야 해요. 상품만 뚫어지게 쳐다보면 한심한 MD죠. 그 상품이 속한 시장의 사이즈와 트렌드 소비자를 먼저 파악해야 하고 나아가 공급자와 경쟁사 유통채널까지 꼼꼼히 챙겨봐야 해요. 이런 특성을 잘 모르면 '창의적인 비즈니스'에 근접할 수 없는 것이 MD더라구요."

몸으로 부딪쳐 가며 차곡차곡 공부해온 안 차장은 전직 2년 만에 '7타수 7안타 7홈런' 타율 10할로 신상품 성공률 100% MD로 우뚝섰다. 수상 소식은 덤이다. 지난 4월 열린 GS샵 신상품대전에서 1등 자리에 오른 그는 신시장 개척(순수 트리트먼트, 젤네일) 공로로 혁신상까지 거머쥐었다. 9·10월 역시 아티스트 뷰티쇼와 헤어스타일링기로 2회 연속 혁신상을 받아 챙겼다.

2년 전 이맘때 거품 염색제 '버블비'로 마수걸이 홈런을 친 안 차장은 진동 파운데이션, LED 젤네일, 헤어 스타일링기를 연속 히트시키며 진정한 '대박 MD'로 거듭났다. 마침내 올해엔 '안옥희의 트리트먼트(머리카락 영양제)'로 불리는 이미용품까지 만들어냈다. 브랜드 영업부터 용기, 디자인, 제형, 컨셉, 시장조사 등 모든 게 그의 창작물이다. '어디에서도 본 적 없던' 이 트리트먼트는 지난 3월 론칭 이후 70억 원을 찍었다.

"진짜 창의적인 '대박 상품'으로 인정받고 싶었어요. 그래서 신(新)시장만 봤어요. 트리트먼트 시장은 국내에선 '밟지 않는 눈밭'이었고 여기에 여배우 김남주씨를 스타일링 해주고 있는 청담동 헤어살롱 '순수' 원장님을 따라다니며 설득해 브랜드를 결정했죠. '청담동 원장님' 이름을 딴 이미용품으로 반짝 대박이 아닌 밀리언셀러에 도전한 것이죠."

트리트먼트 '순수'는 안 차장이 거품 염색제 '버블비'로 만났던 동성제약 연구소와 협업해 1년 만에 만든 가볍고 천연성분이 많은 임상(48시간 보습 등) 가능한 트리트먼트다. 샴푸 없이 단독으로 소비자들의 반응을 이끌어 낸 사례는 '순수'가 업계 최초다. 첫 방송을 끝낸 안 차장은 스튜디오에서 쇼핑호스트와 얼싸안고 '펑펑'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트리트먼트 전후로 히트 상품이 쏟아져 나왔어요. 론칭 6개월 만에 180억 원을 벌어들인 헤어스타일링기 '바비리스 미라컬' 뿐만 아니라 '불경기엔 립스틱이 아닌 셀프네일'이란 경제용어까지 바꾼 LED젤네일도 4개월 만에 50억 원 이상 팔렸죠. 무엇보다 진동 파운데이션은 GS샵을 필두로 전 홈쇼핑이 달려들어 1년 간 800억 원을 팔아 홈쇼핑 색조시장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죠."

여지껏 안 차장이 꼽은 '비주얼 임팩트' 1위는 단연 '바비리스 미라컬'이다. 이 헤어스타일링기는 안 차장이 미국에 본사를 둔 바비리스 아시아허브의 홍콩 사무실을 직접 방문해 단독 계약을 따낸 것으로, 6개월 동안 180억 원 어치 팔렸다.

안 차장의 '청담동 원장님' 다음 시리즈는 '재클린 레인보우 샴푸'다. 이는 파마와 염색 모발 전용 샴프로 용기와 향 용기색 캐릭터 등 전부 안 차장의 '창작 샴푸'다. 온가족이 함께 쓰는 대신 염색·파마 머리만 집중해 '엣지' 하나로 샴푸시장 트렌드를 이끌어 '댕기머리' 이후 역작 샴프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 "MD로 살면서 책이 아닌 길거리에서 '인문학적 교양'을 배울 수 있었다"

안 차장의 꿈은 최고경영자(CEO)다. 지금껏 'CEO 마인드'로 MD 임무를 맡아왔기 때문에 그의 목소리도 우렁찼다. 여기에 MD로 얼굴을 바꾸면서 책에서도 배우지 못한 '인문학적 교양'이란 걸 몸에 익힐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MD로 일하면서 '인문학적 교양'도 얻었어요. PD로 지내면서 겸손하지 못하던 모습을 마주했고 또 있는 그대로 잘못을 받아들이고 반성하면서 성장할 수 있었죠. 이젠 꼭 MD로서가 아니라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는 습관이 생겼고 나의 공을 남에게 돌릴 줄 아는 지혜도 터득했죠."

안 차장은 그래서 MD가 들어야 할 최고의 찬사로 '덕분에 돈 벌었어요'라며 머뭇하지 않고 전했다. MD는 반드시 스스로 사용하고 싶고, 남에게 부끄럽지 않고, 진실로 마케팅할 수 있는 것들만 고르고 만들어야 해서다.

"MD는 어느 직업보다 박탈감이 클 수 있는 포지션이에요. 사장님 원장님들이 아무리 '안 차장만 믿어요'하고 저자세로 말해도 '대박'으로 돈 버는 건 MD가 아니거든요. 그렇지만 MD는 '덕분에 돈 벌었어요'를 칭찬으로 듣고 즐길 줄 알아야 해요. 그렇게 일해온 역량은 나중에 위기를 마주했을 때 극복할 수 있는 '돈 이상의 경험'이 될 것이기 때문이죠."

한경닷컴 글=정현영 기자 jhy@hankyung.com 사진=변성현 기자 byun8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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