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디지털 치매

입력 2013-12-17 21:25   수정 2013-12-18 03:48

가족 전화번호도 외우지 않는 시대
이러다 기억을 못하게되는건 아닌지…

조강래 < IBK투자증권 대표 ckr@ibks.com >



며칠 전 출근하던 중 앞차의 차량번호가 눈에 띄었다. 굉장히 친숙한 숫자여서 어떤 번호였는지 궁금했고, 꼭 기억해 내고 싶었다. 휴대폰을 뒤져보고 아무리 애써도 기억이 나지 않아 하루종일 찜찜했는데, 그날 잠자리에서 불현듯 떠올랐다. 대학 때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나던 친구의 집 전화번호 뒷자리였다. 그 기억을 떠올림과 동시에 친구와 보낸 대학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이른바 ‘아날로그’ 시대를 살던 당시 필자가 기억하는 전화번호는 300개를 훌쩍 넘었다. 가족, 친지, 친구는 물론 영업상 만나는 주요 고객 전화번호도 모두 머릿속에 저장해 놓고 있었다.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능력 중 하나는 암기력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암기에 자신 있었고, 좋아하는 가요나 팝송 가사쯤은 술술 외우고 다녔다. 하지만 모든 것이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저장되는 요즘 외우고 있는 번호가 몇 개나 되나 생각해 보니 손에 꼽을 정도다.

휴대폰이 없던 그 시절, 전화번호 수첩은 가장 소중한 보물이었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수첩이 한 사람의 인간관계가 고스란히 담긴 기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창 영업에 올인하던 때 수첩을 잃어버렸다가 힘들게 찾은 적이 있는데, 그때의 아찔함은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휴대폰을 잃어버려도 아마 비슷한 기분이지 않을까.

휴대폰이 대중화된 지 불과 10년이나 됐나 싶은데, 이제는 인간의 기억 능력을 상당 부분 대신하고 있는 듯하다. 이름이든 전화번호든 애써 외울 필요 없이 손가락만 몇 번 움직이면 모든 정보가 눈앞에 재생되니 말이다.

호프데이 때 직원들과 얘기를 하다가 슬쩍 물어보니 부모님 번호도 못 외운다는 직원이 상당수였다. 굳이 외울 필요도, 외우려 한 적도 없다는 것이다. 가족 전화번호까지 못 외운다는 얘기에 깜짝 놀랐다. 이뿐만 아니라 노래방 기계가 없으면 노래를 못하고, 멀쩡히 다니던 길도 내비게이션이 고장나면 헤매기 일쑤라 한다.

한편으로는 굳이 모든 것을 암기할 필요가 있나, 그 능력을 다른 데 활용하면 되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영 찜찜하다. ‘디지털 치매’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듯하다. 어느 순간, 우리가 기억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때가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지나친 기우일까?

조강래 < IBK투자증권 대표 ckr@ibk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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