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을숙도

입력 2014-01-26 20:29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 고두현 기자 ] 낙동강 1300리를 달려온 물줄기가 마지막으로 쉬었다 가는 곳 을숙도(乙淑島). ‘새(乙)가 많고 물이 맑은(淑)’ 이 섬은 강물뿐만 아니라 수많은 철새와 청춘남녀들의 천국이었다. 갈대밭 둥지의 철새들이 연인들의 발소리에 놀라 날개를 치고, 덩달아 놀란 게들이 뻘구멍 속으로 달아나던 추억의 데이트 장소다.

애국가의 ‘삼천리 화려강산’ 배경화면도 이곳의 새떼가 나는 모습이었다. 평생 부산을 지킨 소설가 김정한의 ‘모래톱 이야기’ 무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을숙도가 지도에 등장한 것은 100년도 안 된다. 1916년까지는 물에 잠긴 뻘바닥이었거나 불규칙한 형태의 모래섬에 불과해서 이름도 없었다. 1950년대 들어서야 섬의 모습이 지금처럼 드러났고, 을숙도라는 이름은 1961년 지명 정비 때 붙여졌다.

그 전에는 하단도(下端島)로 불렸다. 바로 옆의 하단동이 19세기 물류 요충지이자 무역기지였으니 그랬을 것이다. 부산항 개항(1876년) 당시 부산으로 들어오는 모든 물자가 이곳에 모여 낙동강을 타고 내륙으로 갔다고 한다. 상인들이 소금을 싣고 삼랑진, 왜관, 상주로 드나들며 쌀과 교환했다.

예전에는 하단에서 굽이굽이 논밭길을 건너 가야 했던 을숙도를 이제는 지하철 하단역에서 버스로 한 정거장만 가면 닿을 수 있다. 한 때는 몇백 명의 주민이 파를 비롯한 각종 채소와 땅콩을 재배하며 살던 곳이다. 1987년 을숙도를 지나는 낙동강하구둑이 완공되면서 이들은 육지로 이주했고, 그 자리에는 생태공원 등이 들어섰다.

을숙도는 풍부한 퇴적물로 이뤄진 만큼 땅이 비옥하고 갈대와 수초가 무성하다. 게다가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이어서 먹이가 풍부하다. 철새들의 천국이 될 조건은 다 갖춘 셈이다. 겨울에도 물이 얼지 않는 곳이어서 해마다 수십만 마리가 몰려 온다. 대부분이 물새 종류인데 제일 많은 게 오리류이고 다음이 도요새, 물떼새, 가마우지, 백로, 갈매기 종류다. 1월을 전후한 시기가 최고조를 이루니까 바로 요즘이 절정이다.

그런데 전북 고창 등에서 시작된 조류인플루엔자가 이곳까지 번졌다는 소식에 모두들 화들짝 놀랐다. 정밀검사 결과 고병원성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았다고 하니 천만다행이다. 새삼 정완영의 시조에 나오는 풍경처럼 갈매기 울음 소리가 술잔에 와 떨어지던 옛 을숙도의 풍경이 그리워진다. 백발이 갈대밭처럼 서걱이던 늙은 사공은 어디로 갔을까. 방역작업을 하는 줄 모르고 날아오다 흰 연기에 놀란 철새들의 표정은 또 얼마나 뜨악한지.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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