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걸쳐 독창적 파이프오르간 제작…"우리는 기업가아닌 예술가"

입력 2014-02-07 06:57  

김낙훈의 기업인 탐구 - 클라이스 한스 클라이스 회장

1882년에 창업…132년간 한우물
독일 본 베토벤 생가 인근에 위치
65명 종업원 중 마이스터 5명
헤르만 지몬이 지목한 '히든챔피언'

美·英 등 세계 50개국에 설치
광림교회 오르간도 클라이스 작품
마이스터 홍성훈 씨도 이곳서 연마

'남의 것을 절대로 베끼지 않는다'
창의적 디자인 연구에 몰두



[ 김낙훈 기자 ]
쾰른대성당은 높이 솟은 첨탑과 거대한 규모로 유명하다. 에펠탑이 프랑스를 상징한다면 이 성당은 독일을 상징한다. 그 안에 들어서면 정면을 바라보고 왼쪽 벽면 20m 높이 위에 거대한 파이프오르간이 붙어있다. 아헨공대 연구팀이 몇 달 동안 조사한 끝에 이곳이 가장 공명이 잘되는 지점이라는 것을 찾아낸 데 따른 것이다.

미사가 시작되고 파이프오르간이 연주되면 그 넓은 성당 안은 황홀한 음색으로 가득찬다. 때로는 장엄하고 때로는 은은하다. 환희에 가득한 ‘글로리아’가 메아리치기도 한다. 성당은 그 자체가 거대한 울림통이다. 성가대 소리와 합쳐져 ‘천상의 소리’를 빚어낸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는 자신이 오르간 연주자이기도 했고 오르간을 위해 수많은 곡을 작곡했다. 바흐의 곡들이 쾰른대성당에서 울려퍼진다. 악성 베토벤도 오르간곡을 여러 개 작곡했다.

이 파이프오르간을 제작한 기업은 본에 있는 클라이스다. 베토벤 생가 인근에 있다. 창업자인 요하네스 클라이스의 손자인 한스 클라이스 회장(83)이 그의 아들과 공동으로 회사를 이끌고 있다. 손자도 회사에서 일하며 경영을 배우고 있다. 5대째 이어지는 가족기업이다.

클라이스가 있는 본은 통독 전 서독의 수도였다. 클라이스는 도심의 중심부인 중앙역 부근에 있다. 도심 한복판에 작업장이 있다는 게 놀랍다. 공장 안에는 목공시설을 비롯해 주물 제작시설도 있다. 주석 등의 원료를 녹이는 열처리시설이 있고 이를 가공해 파이프를 직접 만든다. 아마도 한국의 대도시 한복판에 있었다면 당장 쫓겨났을지 모른다.

더 놀라운 것은 이곳 주민들은 클라이스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길거리에서 물어보면 누구나 친절하게 ‘아~클라이스요’ 하면서 미소를 지으며 위치를 알려준다. 동시에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인다. 파이프오르간 분야에서 최고의 기업이라는 의미와 함께 본의 자랑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본에는 고색창연한 건물이 많다. 중심 도로에 인접한 클라이스 건물도 마찬가지다. 오래된 도로에는 전차와 자동차가 함께 다닌다. 대로변에 있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니 도서관처럼 책이 가득했다. 한스 클라이스 회장은 “8000권에 이른다”며 “주로 파이프 오르간이나 음악에 관한 책”이라고 소개했다.

65명의 종업원을 둔 작업장은 무척 소박했다. 나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단풍나무 굴참나무 등 수십종의 나무들이 켜켜이 쌓여있었다. 파이프오르간은 외부에선 금속제 파이프만 보이지만 실제 주요 부분은 대부분 목재로 만든다. 이 공정이 70%가 넘는다. 작은 목공소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곳곳에서 숙련기능인력들이 나무를 자르고 대패로 켠다.

한스 클라이스 회장은 겸손했다. 헤르만 지몬이 이 회사를 파이프 오르간 분야의 ‘히든챔피언’으로 꼽았으니 회사 자랑을 할 만도 한데 무척 쑥스러워했다. 그는 “우리는 세계 최고의 오르겔바우(파이프오르간 제작) 기업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회사 역사가 130년이 넘고 그 자신도 50년째 파이프 오르간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그는 “클라이스의 명성을 듣고 왔다”고 해도 “절대로 그렇지 않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의 집은 바로 본사와 붙어있다. 한국에서 손님이 왔다는 소식을 들은 그의 부인은 사무실에 들러 “얼마전 마이스터 홍이 인삼을 보내줘서 고맙게 먹고 있다”며 감사를 표시했다. 마이스터 홍은 이 회사에서 마이스터 수업을 받은 경기 양평 소재 홍성훈오르겔바우의 홍성훈 사장을 말한다.

한스 클라이스 회장은 “독일에는 240개의 파이프오르간 제작업체가 있고 30여곳이 제대로 만드는 업체”라고 설명했다. “세계적인 업체는 15개 있는데 우리는 그 중 하나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클라이스의 특징은 ‘모든 것을 외부에 공개한다’는 것과 ‘남의 것을 절대로 베끼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작은 파이프오르간을 만들 때도 영혼을 담아 제작한다.

이곳에는 5명의 마이스터가 있다. 수십년간 파이프오르간 제작에 참여해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월급을 더 받는 것도 아니다. 그냥 파이프오르간이 좋아서 이 분야에서 평생 작업복을 입고 일할 뿐이다. 더 나은 작품을 만드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마이스터가 아니더라도 대부분 20~30년간 파이프오르간 제작에 관여해온 경력자들이다. 이런 숙련공들이 오늘의 클라이스를 만들었다.

이들이 만든 파이프오르간은 세계 50여개국에 설치돼 있다. 독일 노르웨이 등 유럽은 물론 미국 캐나다 이스라엘 한국 중국 대만 호주 등이다. 대표적인 작품은 쾰른대성당, 도르트문트콘서트홀, 뉘른베르크 성로렌츠교회, 모스크바국제아트센터, 쿠알라룸푸르 쌍둥이빌딩 콘서트홀, 미국 매디슨 오버추어홀, 영국 성베드로바울교회 및 버밍엄심포니홀 등이다. 한스 클라이스 회장은 “한국의 경우 광림교회에 설치한 것은 내가 제작에 참여했고, 서울교회(장로교회)에 세워진 것은 아들이 관여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파이프오르간 제작업체들은 ‘이번에 클라이스가 어떤 작품을 만들었나’ 하고 관심을 보인다. 늘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예술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회사가 이 분야에서 명성을 얻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132년째 한우물을 파온 것이다. 창업자 요하네스 클라이스는 1882년 창업했다. 지금 본사에서 500m 정도 떨어진 곳이다. 창업자는 학창시절 파이프오르간을 접하고 그 길로 파이프오르간 수리부터 배웠다.

둘째, 기술력이다. 마이스터 5명을 포함한 직원은 한결같이 ‘천직’으로 여기고 일을 한다. 이곳에서는 목공일을 하건, 주물 일을 하건 자신들은 천상의 소리를 만든다는 사명감으로 일한다. 한스 클라이스 회장의 집이 작업장과 붙어있는 것도 작업장이 생활터전이자 일터라는 생각에서다. 수시로 작업장에 와 일을 하고 독서를 하며 아이디어를 구상한다.

셋째, 음악에 대한 사랑이다. 클라이스 사장은 “우리는 ‘기업’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예술작품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가 독일의 오르겔바우 업체 사장들을 초청해 작업장을 보여주고 제작과정을 모두 공개하는 것도 위대한 음악유산을 공유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어느 기업인이 경쟁사 사장들을 초청해 자신들의 내부를 속속들이 보여주고 설명해주겠는가.

그는 베토벤협회 임원으로 38년째 재임 중이다. 틈이 나는 대로 음악과 악기에 대한 서적을 읽고 사색한다. 사고가 깊이가 예술작품을 만드는 데도 반영되는 듯하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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