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지 못한 걸작 영화 10선, 뭔가 봤더니…

입력 2014-04-04 13:47  



영화사상 최대의 프로젝트였으나 무산돼 여러 사람을 안타깝게 한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영화 '사구'가 지난 3월21일 북미지역에서 다큐멘터리로 개봉했다.

BBC방송은 지난달 24일 '사구'처럼 완성되지 못해 아쉬운 영화 10선을 꼽았다.

히치콕의 '카레이도스코프', 큐브릭의 '나폴레옹', 레오네의 '레닌그라드의 900일', 비스콘티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맬릭의 '무비고어', 웰즈의 '어둠의 심연'과 '돈키호테', 길리엄의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린치의 '로니 로켓', 에이젠슈타인의'아메리칸 트래지디' 등이다.

#알프레도 히치콕의 '카레이도스코프'

히치콕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도발적인 영화 '욕망'을 본 뒤 센세이션을 일으킬 영화를 기획했다. 영화는 세 장소에서 일어난 세 건의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히치콕이 제작비를 100만 달러 이하로 제안했으나 제작사는 투자를 거절했다. 결국 제작사를 찾지 못해 영화는 좌초되고 말았다. 하지만 히치콕의 1972년 작 '프렌지'에서 '카레이도스코프'의 장면들은 일부 살아났다.

#스탠리 큐브릭의 '나폴레옹'

영화팬들에게 스크린에 걸리지 못해 가장 아쉬운 영화를 물으면 대게 스탠리 큐브릭의 '나폴레옹'을 꼽는다.

큐브릭은 수년간 나폴레옹에 대해 조사하며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후속편으로 나폴레옹 전기 영화를 기획했다. '줄 앤 짐'의 오스카 웨너를 나폴레옹으로, 오드리 헵번을 나폴레옹의 황후 조제핀 역으로 낙점했다. 하지만 엄청난 제작비로 안해 제작·배급사인 MGM이 프로젝트를 취소했다. '나폴레옹'은 결국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지난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프랑스 방송 카날 플뤼스와의 인터뷰에서 큐브릭 감독의 '나폴레옹'을 텔레비전 미니시리즈로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레닌그라드의 900일'

1984년 레오네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완성하고 전쟁 서사영화를 기획했다. 특히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동부전선 레닌그라드에서 일어난 전투에 대해 쓴 해리슨 솔즈베리의 '900일(The 900 days)'에 푹 빠져있었다.

이를 영화화하며 레닌그라드에서 독일군에게 수년 간 포위된 미국 종군 사진작가역으로 로버트 드 니로를 캐스팅했다. 그리고 제작비 10억 달러와 소련 정부의 협력도 약속받았다. 엔리오 모리코네가 음악감독을 맡았다. 하지만 1989년 레오네가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사망해 영화는 완성되지 못했다.



#루치노 비스콘티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이탈리아 영화감독 루치노 비스콘티의 특기는 장편 영화제작과 문학 각색이다. 주세페 디 람페두사의 소설을 영화화 한 1963년 작 '표범'은 러닝타임 3시간30분에 달한다.

비스콘티는 1960년 대에 수년간 파리와 노르망디에서 자료를 수집하며 프루스트의 7권짜리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영화화를 준비했다. 영화제작 비용이 엄청나게 막대해 투자사를 찾을 수 없었고 영화는 좌절됐다.

그 후 조셉 로지가 해럴드 핀터의 극본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영화로 만들려고 했다. 이 또한 실패했다.

#테렌스 맬릭의 '무비고어'

1978년 아름다운 풍광으로 유명한 영화 '천국의 나날들'이 비평가들에게 극찬을 받은 후 맬릭은 파리로 이사했다. 그는 1980년 대에 파리에 살며 심심풀이 삼아 영화 몇 개를 기획한다. 일상보다 영화와 책에서 더 많은 의미를 찾았다. 가족과 직업으로부터 멀어진 남자에 대한 워커퍼시의 실존주의 소설 '무비고어'도 그 중 하나였다.

비록 '무비고어'는 스크린에 걸리지 못했지만 한 남자의 내면에 대한 잔잔한 관점은 그의 2011년 작 '트리 오브 라이프'와 2013년 작 '투 더 원더'의 뿌리가 됐다.

#오슨 웰즈의 '어둠의 심연'

오슨 웰즈의 '우주 전쟁'이 라디오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1940년 RKO픽쳐스사는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편집권을 보장받으며 영화 두 편을 제작하는 내용이다. 웰즈는 첫 번째 영화로 조지프 콘래드의 '어둠의 심연'을 택했다.

웰즈는 작품 속 화자인 말로를 연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든다는 것이 밝혀지고 결국 웰즈는 '어둠의 심연'을 포기했다. 대신 제작한 영화가 영화사에 길이 남을 '시민 케인'이다.

#오슨 웰즈의 '돈키호테'

스크린에 걸리지 못한 웰즈의 영화는 '어둠의 심연'만이 아니다. 웰즈의 영화 기획은 수 없이 좌초됐다. '돈키호테'도 그 중 하나.

웰즈는 1950년 대 중반부터 여러 번 '돈키호테'의 제작을 시도했다. 프랭크 시나트라가 2만5000달러를 투자했으나 다른 제작사로부터 투자를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촬영한 일부 장면들이 편집돼 유작으로 재탄생했다. '돈키호테'를 향한 그의 열정을 기리기 위해 종종 영화제에서 상영되고 있다.

#테리 길리엄의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웰즈뿐만 아니라 길리엄의 돈키호테도 여러번 좌초됐다.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는 1998년 처음 조니 뎁을 주연으로 제작준비 단계에 들어갔다. 조니 뎁은 돈키호테의 시대를 시간여행하는 현대인 역이다. 프랑스 배우 장 로슈포르가 연기한 돈키호테는 조니 뎁이 산초라고 생각하며 그를 모험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2000년 촬영 당시 로슈포르의 건강이 악화되고 제작 지원도 받지 못해 촬영은 중지됐다. 이때 촬영된 장면은 다큐멘터리 '로스트 인 라만차'의 일부로 상영됐다.

길리엄은 좌절하지 않고 로버트 듀발을 돈키호테로, 이완 맥그리거를 시간여행자로 정해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의 제작을 시도했다. 이 역시 실패하고 만다.

길리엄은 올해 말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의 일곱 번 째 촬영을 시도한다.

#데이빗 린치의 '로니 로켓'

멜 브룩스와 스튜어트 콘펠드는 데이빗 린치의 1977년 작 '이레이저 헤드'에 큰 감명을 받아 영화 제작을 제안했다. 이들은 '로니 로켓'을 기획한다.

'로니 로켓'은 다른 차원을 여행하는 탐정이 수술 중 불의의 사고를 당하며 전기 장치에 연결돼 살아가는 10대를 만나는 이야기다. 그는 로니 로켓이라는 이름의 락스타가 된다.

브룩스는 흥행이 어렵다고 판단해 대신 '앨리펀트 맨'을 제작하자고 제안했다. ‘로니 로켓’은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로니 로켓'의 테마는 훗날 린치의 '트윈 픽스', '로스트 하이웨이',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되살아난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아메리칸 트래지디'

1920년대 말, 스탈린과 소련은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에게 '형식주의자'라는 꼬리표를 붙이며 비판했다. 결국 에이젠슈타인은 자본주의 국가를 향해 떠났고 할리우드에 당도했다.

에이젠슈타인이 미국에서 만난 파라마운트픽쳐스사의 사장 제스 래스키는 그의 영화에 매료됐고 영화 제작을 제안한다. 테오도르 드라이저의 소설 '아메리칸 트래지디'를 각색하는 조건으로 10만 달러를 지원하는 계약이다.

6개월 후 에이젠슈타인은 각본을 완성했다. 래스키는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어렵다고 판단, 계약을 종료했다. 에이젠슈타인은 모스크바로 돌아갔고 '아메리칸 트래지디'는 무산됐다.
한경닷컴 오수연 인턴기자(숙명여대 법학 4년) suyon9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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