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벚꽃이 질 때

입력 2014-04-04 20:32   수정 2014-04-05 04:23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영원을 위해 스스로/ 독배(毒杯)를 드는 연인들의/ 마지막 입맞춤 같이/ 벚꽃은/ 아름다움의 절정에서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종말을 거부하는 죽음의 의식,/ 정사(情死)의/ 미학.’ 오세영 시인은 벚꽃의 생명을 비장미와 극치미의 절정까지 끌어올렸다가 한순간에 불꽃같은 정사의 의식으로 소멸시킨다.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인 꽃이 벚꽃이다. 가장 극적인 낙화의 미학을 보여준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도 벚꽃 때문에 발을 헛디뎠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비를 마중하느라, 길바닥에 하얗게 누운 꽃잎을 밟지 않으려고 몇 번씩 휘청거렸다. 꽃말이 순결, 담백이어서 그럴까. 벚꽃은 언제나 마음 한켠을 아리게 한다.

꽃잎은 연약하지만 사실 벚나무 재질은 아주 단단하다. 그래서 조각재, 칠기, 인쇄용 목재로 많이 쓴다. 고려팔만대장경판도 벚나무로 깎았다. 올해는 여의도 벚꽃이 열흘이나 일찍 피었다. 이상고온 때문이다. 벚꽃축제도 부랴부랴 앞당겨졌다. 벚나무가 날씨를 알아보는 것은 기온 변화에 대응하는 ‘온도계 단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올해 이른 벚꽃은 창경궁과 진해, 하동 쌍계사 십리벚꽃길, 순천 송광사 벚꽃길, 충주호 벚꽃터널, 수안보 벚꽃길, 경포호 등에서 마음껏 즐길 수 있다. 해마다 벚꽃 명소도 늘어나고 있다.

일본에서는 흔히 벚꽃을 사무라이의 상징으로 그린다. 교토의 한 공원에서 신랑이 사무라이 복장에 일본도를 들고 촬영하는 모습을 본 적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산 아래에서 꼭대기까지 벚나무를 심어놓고 봄 내내 꽃놀이를 즐겼다는 얘기도 유명하다.

일본 벚꽃 축제 명소로는 세 곳이 꼽힌다. 나가노현의 다카토조시 공원은 ‘천하제일 벚꽃 세상’으로 통한다. 아오모리현의 히로사키 공원에서도 5000여 그루의 벚꽃 장관을 볼 수 있다. 나라현의 요시노야마엔 3만여 그루의 벚나무 천지가 펼쳐져 있다. 우타노 쇼고의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등 문학작품에도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이기철 시인은 벚꽃 그늘 아래 잠시 생애를 벗어놓으면 ‘무겁고 불편한 오늘과/ 저당잡힌 내일이/ 새의 날개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노래한다. 그의 시처럼 우리도 떨어지는 벚꽃 아래 일상의 무게를 한번 내려놓아 보자. ‘입던 옷 신던 신발 벗어놓고/ 누구의 아비 누구의 남편도 벗어놓고/ 햇살처럼 쨍쨍한 맨몸으로 앉아보렴/ 직업도 이름도 벗어놓고/ 본적도 주소도 벗어놓고/ 구름처럼 하이얗게 벚꽃 그늘에 앉아보렴…’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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