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권 쥔 기재부, 전주 이전 대비 인력 확대 ‘묵살’
이 기사는 04월04일(11:41)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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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올 초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지침 강화안이 논의될 때의 일이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미묘한 견해 차이를 빚고 있었다. 운용역들은 의결권 행사가 기금 수익률을 올리는데 직접적인 효과가 있을 지에 의문을 품었다. 대안으로 “배당 확대를 제시”(기금본부 관계자)했지만 복지부는 이를 묵살했다. 국민연금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의 의제 설정을 복지부 공무원이 맡고 있는 탓에 운용역들은 함구할 수 밖에 없었다.
#2. 올해 기금운용본부의 신규 채용은 ‘제로’다. 작년 이맘 때 전주 이전에 대비해 향후 3년간 100여 명을 늘려달라고 기획재정부에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해외 투자 전문가 육성을 위해 글로벌 인재를 채용하려고 해도 평균 연봉 7000만원으론 시도조차 하기 어렵다. 기재부에 예산권을 빼앗긴 국민연금의 현주소다.
150여 명 운용역들로 구성된 기금운용본부는 연금 고갈을 막기 위한 최일선 부서다. 작년 말 430조원에서 2060년이면 2000조원까지 불어날 연금을 효과적으로 운용해야 대한민국의 노후가 보장된다.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복지부와 기재부 두 곳이 경쟁적으로 시어머니 노릇을 하는 데다 2016년 전주 이전까지 겹쳐 운용역들은 국민연금을 떠나려하고 있다.
○복지부가 핵심 의제 '관할'
국민연금 기금운용을 총괄한 조국준, 오성근, 김선정, 이찬우 전 본부장 등 역대(2~5대) CIO들도 “연금의 독립성이 크게 훼손돼 있다”고 일제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의 외압으로 운용에만 전념할 수 없는 구조라는 비판이다.
5명의 역대 CIO 가운데 3년 임기를 ‘해프닝’없이 끝까지 마친 이는 이찬우 전 본부장이 유일하다. 조국준 전 본부장은 3년을 역임하긴 했지만 2년차에 “투자 결정권이 없는 CIO는 못하겠다”며 사표를 냈다가 반려됐다. 오성근 전 본부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사퇴 압력을 받고 중도에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김성근 전 본부장은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정부로부터 국내 주식 투자 금액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받았다”고 증언했다.
이찬우 전 본부장은 “국민연금법상 복지부가 연금 관리를 국민연금공단에 위탁한 것으로 돼 있고, 이에 근거해 기금운용위원회 간사를 복지부 재정과장이 맡고 있다”며 “기금운용의 큰 틀은 복지부 입김에 좌우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강화에 대한 운용역들과 복지부 공무원 간 의견 차이가 대표적인 사례다. 조국준 2대 본부장은 “의결권 행사가 국민연금의 본질이냐”며 “연금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기업인에 대해선 해당 주식을 매각하면 그만”이라고 꼬집었다. 2011년 국민연금이 포스코와 공동으로 브라질 리튬 광산에 투자, 해외 자원에 첫 발을 뗐을 때도 운용역들은 복지부의 반발을 극복해야했다.
○기재부 관할에서 벗어나야
기재부가 예산권을 쥐고 있는 것도 국민연금 독립성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국민연금은 공공기관으로 지정돼 있어 공공기관운영에관한법률(이하 공운법)을 적용받는다.
김선정 전 본부장은 “공운법에 따라 국민연금 기금 수익률이 이사장 평가의 주요 항목이 되자 이사장이 기금 운용과 기금 조직 인사에 개입할 명분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이 임명한 이사장이 기금운용본부의 투자 내역을 들여다보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얘기다. 이준행 서울여대 교수는 “국민연금 제도의 입법 취지는 투자 실무를 CIO가, 리스크 관리를 CEO가 각각 분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찬우 전 본부장은 “기금운용본부 내 두 개의 명령체계가 존재함으로써 발생하는 혼란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독립성이 흔들리면서 기금 고갈에 대한 책임의 경계도 모호해지고 있다. 신진영 연세대 교수는 “권한과 책임을 분명하게 규정하지 않을 경우 투자 실패에 대한 책임을 서로 상대방에게 떠넘길 수 있다”며 “기금운용 지배구조를 제대로 정립하는 것이 기금운용과 관련해 시급한 현안”이라고 강조했다.
박동휘/좌동욱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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