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지침 모호…통상임금 관련 소송 증가 우려

입력 2014-04-21 10:31  


“통상임금과 근로시간 단축, 정년연장 등 노사 모두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노동시장 현안들은 모두가 열린 마음으로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설명하는 대국민담화에서 통상임금 문제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기상여금 등을 퇴직금 산정시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는 지난해 12월 대법원 판결 이후 노사간 소송이 줄이을 것이라는 우려에 대한 대응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대통령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노사간 소송이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고용노동부가 지난 1월 발표한 통상임금 관련 지침이 소송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그 동안 정기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해 온 이유는 정부의 통상임금 지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지침이 법에 어긋난다는 판결이 나왔지만 재차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지침에 대해서도 논란이 발생한 것이다. 정부 지침 때문에 노사 양측이 소송 전에 돌입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법에 어긋난 지침 만들었던 정부, 새 지침으로 혼란 가중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 산정범위에서 제외된 것은 1988년 정부가 만든 ‘통상임금 산정지침’이라는 예규 때문이다. 이후 대부분의 기업들이 퇴직금 등의 기준인 통상임금을 산정할 때 정기상여금은 제외해왔다.

정부의 통상임금 산정지침에도 불구하고 퇴직자들의 퇴직금 청구소송에서 법원은 통상임금에 정기상여금과 수당 등을 포함해야 한다는 판결을 수차례 내렸다. 결국 지난해 갑을오토텍 퇴직자들의 퇴직금 청구소송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수당과 정기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판결에서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 여부가 확정되자 정부의 지침을 따라온 기업들은 일시에 불법을 저지른 셈이 됐다.

중소기업계는 이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해 12월 판결에 대한 논평을 통해 “그 동안 정부의 지침을 근거로 임금을 지급해 온 기업들은 이번 판결로 인해 우리나라 법률 제도에 대한 신뢰를 잃고 혼란에 휩싸일 것”이라며 “정부는 이번 판결 결과를 바탕으로 더 이상의 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기존의 예규 변경에 그치지 말고 근로기준법 시행령을 조속히 개정해 통상임금 범위에 대해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월 올해 상반기 중으로 통상임금에 관한 근로기준법 시행령 개정 등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 올 임금단체협약을 앞두고 “노사간 불필요한 혼란과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 대법원 판결을 기초로 한 ‘통상임금 노사지도지침’을 발표했다.

그러나 새로운 노사지도지침 역시 소송의 불씨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2월 중소기업중앙회가 개최한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 설명회’에 참석한 한 기업의 인사담당자는 “설명회에서 소송을 피할 방법을 찾고자 했는데, 소송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느꼈다”고 난처해 했다.

연자로 나선 고용노동부 임금근로시간 개혁추진단 강검윤 사무관은 “가급적 노사간 대화를 통해 합의를 도출하는 것을 권한다”며 “소송을 하더라도 하급심에서는 중재 결정을 내리는 추세”라고 말했다.

소송의 불씨는 노사간에 정기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한 경우다. 대법원은 이에 대해 상반된 논의를 하나의 판결문에서 제시해 논란을 키웠다.

“노사합의는 무효”라더니 “신의칙 적용 예외있어”

대법원은 우선 “사용자와 근로자가 통상임금의 의미나 범위 등에 관하여 단체협약 등에 의해 따로 합의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라며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한 노사간 합의는 무효라는 점을 확인했다. 근로기준법은 당사자의 의사와 합의를 떠나서 강제로 적용되는 강행규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경우에서 노사간 합의가 무효는 아니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노사합의의 내용이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을 위반한다고 하여 그 노사합의의 무효 주장에 대하여 예외없이 신의칙의 적용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신의칙 적용 요건을 갖춘 예외적인 경우에는 “노사합의의 무효를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에 위배되어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신의칙은 ‘신의성실의 원칙’의 줄임말로, 민법 제2조에 규정된 민사계약의 대원칙이다.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방법으로 권리행사를 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다. 노사간의 약속이 있었다면 이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서는 대법관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있었다. 판결문에는 대법관 중 세 명이 신의칙 적용을 인정한 다수의견에 대한 반대의견을 제시한 사실이 적시돼 있다. 이들은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성을 인정하면서도 신의칙으로 그 강행규정성을 배척하는 다수의견의 논리는 너무 낯선 것이어서 당혹감마저 든다”며 “거듭 살펴보아도 그 논리에서 합리성을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이러한 노사합의가 관행으로 정착되어 왔다는 사정을 인정할 근거자료를 찾아볼 수 없다”며 “그러한 관행이 근로자에 의하여 유발되거나 그 주된 원인이 근로자에게 있지 아니한 이상”에는 “그와같은 사용자의 신뢰는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이를 먼저 보호하게 되면 법에 위반된 관행을 강행규정에 우선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물론 신의칙이 무조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강 사무관은 설명회에서 판결문을 근거로 ▲합의 내용이 일정기간마다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일 것과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노사가 인식한 상태에서 합의를 하고, 이를 토대로 임금인상률 등 그 밖의 임금 조건을 정했을 것 두 가지에만 신의칙이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기존 통상임금 노사합의, 법원서 판단할 수밖에 없어

고용노동부는 이에 대해 노사지도지침의 해설 Q&A에서 “판결 취지를 감안하면, 바로 기존 합의의 신의칙이 부정된다고 단정할 수 없는 것인 바, 가급적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노사간 협의로 통상임금을 명확히 정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민주노총은 지난 1월 발표한 성명서에서 고용노동부의 이같은 해석이 “현재 임·단협 기간이 만료하고 새로운 임·단협이 체결되기 전까지는 노동조합의 체불임금 청구권을 제한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또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포함하여 추가임금을 청구하는 것이 신의칙에 의해 제한되는지 여부는 민·형사 재판과정에서 사용자에게 주장·입증책임이 있는 항변사유일 뿐이고, 고용노동부가 사전적·적극적으로 판단할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강 사무관 역시 설명회에서 신의칙 적용 여부는 “다툼이 발생했을 때 법원에서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미”라며 “정기상여금을 무조건 안 줘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결국 기존 통상임금에 대한 노사합의가 무효인지 여부는 법원을 통해 가릴 수밖에 없다고도 해석이 가능하다. 소송을 자제하라는 정부의 지침이 오히려 소송의 당위성을 설명한 셈이다. 애초에 법에 어긋난 지침을 만들어 문제의 불씨를 키운 정부가, 소송을 자제하라며 내놓은 지침에서는 소송의 당위성을 설명해버린 셈이다.

한경 경영지원단에서는 검증된 전문가들과 함께 기업의 통상임금 이슈 등 다양한 애로사항을 해결해 주고 있다.

(한경 경영지원단, 02-6959-1699, http://clean.hankyung.com / 출처: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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