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틀리 디자이너가 말한다…덜어내야 강렬해진다…럭셔리의 답은 '헝그리'

입력 2014-05-02 21:28   수정 2014-05-03 03:59

Car&Joy

선 하나 그린 후 수만번 되묻는다
과연 10년 후에도 벤틀리다운 것일까



[ 최진석 기자 ]
‘이탈리아 슈퍼카의 정수로 꼽히는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를 디자인한 벨기에 디자이너, 루크 동커볼케’.

‘우람한 근육의 미국 정통 머슬카, 쉐보레 ‘카마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한국인 디자이너, 이상엽’.

세계 자동차 및 디자인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 영국 럭셔리 세단 벤틀리의 디자인을 책임지고 있다.

동커볼케는 디자인 총괄 책임자로, 이상엽은 외관 디자인 총괄로 각각 2012년과 2013년 임명됐다. 벤틀리는 2016년에 첫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를 내놓고, 2019년 창립 100주년을 맞아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디자인 비전을 제시할 예정이다.

막중한 임무를 수행 중이지만 지난달 21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만난 두 사람에게선 특유의 여유가 느껴졌다. 디자이너로서 20년 넘게 다져진 기풍이 그것이다.

이들은 홍익대 디자인학부에서 진행하는 산학협력 강좌 ‘벤틀리의 미래 디자인 프로젝트’ 중간 과제 검토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이들에게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를 더하는 것, 클래식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뜬구름 잡는 듯한 질문에 두 디자이너는 알기 쉽게 애플 ‘아이팟’을 예로 들며 세 가지를 말했다. △덜어냄 △완벽한 정제 △다양한 요소 간의 조화였다. 훌륭한 디자이너의 조건으로는 망설임 없이 ‘헝그리 정신’을 강조했다.

▷클래식의 예로 아이팟을 든 이유가 있습니까.

루크 동커볼케(이하 루크) “2000년 이전까진 소니 워크맨이 다양한 컬러로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2001년 출시된 아이팟은 하나의 컬러(흰색), 다섯 개의 버튼 등 극단적인 단순함으로 세계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디자인 역사에서 엄청난 사건이었죠.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디자인은 그만큼 강한 생명력을 갖게 됩니다. 쓸데없는 요소를 걷어내야 마침내 정수(精髓)가 남는다는 얘기입니다. 저와 상엽 모두 지금까지 1세대 아이팟을 사용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자동차 중에선 포르쉐 911이 대표적입니다.”

▷더하지 말고 오히려 비워야 한다는 뜻이군요.

이상엽(이하 상엽) “벤틀리를 보면 면과 선이 굉장히 단순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도로에서 벤틀리는 항상 눈길을 끄는 존재감을 갖고 있죠. 많은 직선과 곡선으로 치장한 자동차는 화려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스타일링’에만 신경 쓴 차들이 10년, 100년 후에도 명차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클래식이란 보면 볼수록 멋이 우러나야 합니다.”

▷비운다는 의미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상엽 “벤틀리 외관은 몇 개의 선으로만 구성됩니다. 저는 선 하나를 그린 후 스스로 수천, 수만번 되묻습니다. ‘이 선이 과연 10년 후에도 가장 벤틀리다운 것일까.’ 디자인이 단순해질수록 선의 길이가 4㎜에서 5㎜로 1㎜만 늘어나도 전체 디자인의 균형이 깨질 수 있습니다. 차가 아닌 작품을 만든다는 장인정신이 있어야만 해낼 수 있는 작업이죠.”

▷하지만 디자인이 너무 단순해지면 표현력이 떨어질 수 있을 텐데요.

루크 “자동차는 외관 디자인이 전부가 아닙니다. 가죽의 촉감과 냄새, 박음질의 패턴, 버튼의 모양 등 자동차를 구성하는 요소는 많습니다. 이런 요소들로 무한정에 가까운 조합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요리사가 다양한 재료로 훌륭한 음식을 만들 듯, 디자이너도 가장 완벽한 조합을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죠.”

▷훌륭한 디자이너는 어떤 역량을 갖춰야 합니까.

상엽 “배고파야 합니다. 항상 도전에 목말라해야 하고 자동차에 대한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헝그리정신은 디자이너의 필수조건입니다.”

루크 “개개인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팀원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내는 능력도 무척 중요합니다. 자동차는 한 사람이 디자인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2016년 출시를 목표로 현재 개발 중인 벤틀리 SUV는 어떤 차인가요.

루크 “벤틀리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SUV 특유의 강한 인상을 줄 것입니다. 벤틀리의 첫 번째 SUV(사진)인 만큼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올해 10월 파리모터쇼에서 만날 수 있을 겁니다.”

루크 동커볼케 벤틀리 디자인 총괄 책임자

벨기에 출신의 자동차 디자이너. 이탈리아 슈퍼카 브랜드 람보르기니의 역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 ‘무르시엘라고’(2001~2010년)를 디자인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1992년 폭스바겐그룹에 입사해 아우디를 거쳐 스코다, 람보르기니, 세아트 등 그룹 내 주요 브랜드의 디자인 총괄을 맡았고, 2012년 9월 벤틀리 디자인 총괄 책임자로 임명됐다. 폭스바겐그룹의 수석 디자이너이자 세계 3대 디자이너 중 한 명인 발터 드 실바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

이상엽 벤틀리 외관 디자인 총괄

글로벌 무대에서 활약 중인 한국인 디자이너. 가장 미국적인 차량으로 불리는 ‘머슬카’(근육질의 힘센 스포츠카)의 대표 모델인 쉐보레 ‘카마로’(2009년~현재)를 디자인하며 주목받았다. 카마로는 영화 ‘트랜스포머’에 ‘범블비’로 출연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제네럴모터스(GM)에서 1999년부터 2009년까지 근무한 뒤 2010년 폭스바겐그룹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에서 폭스바겐 아우디 스코다 포르쉐 등 그룹 내 다양한 브랜드의 선행 디자인을 진행했고 지난해 5월 벤틀리의 외관 디자인 총괄로 임명됐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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