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부의 DNA를 변화시켜라

입력 2014-05-19 20:34   수정 2014-05-20 05:38

"한강의 기적 일군 추격형 관료들
이젠 창조적 전문지식 무장해야
직무군제도 도입해야 하는 이유"

김태유 < 서울대 교수·경제학 tykim@snu.ac.kr >



세월호 참사 이후 세간의 비판이 정부와 관료에 집중되고 있다. 관료 마피아, 부처이기주의, 전문성 부족 등 온갖 비난이 난무하고 있다.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통해 공무원의 인사와 조직을 관장하는 행정혁신처를 총리실에 신설, 관료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것을 약속했다.

도대체 대한민국 관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일등공신이 엘리트 관료들이었다는 것은 세계의 석학들도 대부분 인정한 사실이다. 국민소득 100달러도 안 돼 원조받던 가난한 나라가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보는, 원조하는 의로운 나라로 거듭나게 한 유능하고 충성스러운 대한민국의 관료들은, 도대체 왜 모두 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렸을까?

1960년대 산업화를 시작한 제3공화국은 공개 경쟁시험에 의한 행정(기술)고등고시 제도를 확립했고 당사자의 적성이나 전문성과 상관없이 순환보직제를 시행했다. 모방경제시대에 가장 유능한 관료는 담당 업무에 대한 전문성보다 선진국 사례를 빨리 모방할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였기 때문이다. 지뢰밭 통과에 가장 유능한 사람은 지뢰 전문가가 아니라 앞사람의 발자국을 그대로 밟고 뒤따라가는 사람이다. 이들이 바로 한강의 기적을 성공시킨 엘리트 제너럴리스트 관료들이다.

그런데 이제 시대가 단순모방이 가능했던 초기산업사회에서 창조경제시대인 지식기반사회로 이행하고 있다. 또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어서 선진국 수준에 근접하면서 더 이상 모방하고 따라할 성공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워진 것이다. 지뢰밭에 발자국이 없으면 지뢰 매설에 관한 전문 지식이 있어야 지뢰밭을 통과할 수 있다. 제너럴리스트가 아니라 스페셜리스트가 필요한 시대가 온 것이다.

정부가 시대 변화에 먼저 적응하느냐 못 하느냐가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결정한다. 16세기 폴란드는 무적의 기병대 ‘후사르’를 앞세워 모스크바를 점령하고 동유럽에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런데 산업혁명과 시대환경 변화에 무지했던 폴란드 정부는 기계화 부대를 창설하지 않아 후사르는 독일 탱크부대에 전멸당하고, 폴란드의 슬픈 치욕의 역사가 시작됐다. 모방경제 시대의 유물인 제너럴리스트들를 데리고 창조경제 시대에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뤄보려는 것은 말탄 기병으로 탱크 부대를 무찌르려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다. 기병을 아무리 강화해도 탱크부대가 될 수 없는 것처럼 공직자를 윽박지르고, 승진과 전보가 어렵도록 만들고, 은퇴 후 재취업의 기회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등 역대 정권들이 모두 실패했던 그런 구태의연한 방법을 또 다시 총동원한다고 해서 공직개혁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제안하는 공직개혁은 발상의 전환을 통해 고급공무원의 유전자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고급공무원이 평생 특정 부처에 소속돼 있고 이질적인 업무를 돌아가며 ‘순환 보직’하는 것이 아니라, 고급 공무원의 소속이 직무군으로 바뀌고 승진과 전보가 부처 간의 벽을 넘어 유사·관련 직무들 사이에서 이뤄지는 ‘직무군제도’의 도입을 통해 고급공무원의 전문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직무군제도 하에서는 공무원이 특정 부처에 소속되지 않기 때문에 ‘관피아’가 있을 수 없다. 또, 승진과 전보가 직무군 내에서 부처의 벽을 넘나들게 돼 당장 일하는 부처는 달라도 전임자와 후임자 사이이기 때문에 부처 간 칸막이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한 직무군에 평생 소속된 공무원은 저절로 전문가 정책관료가 될 수밖에 없다.

창조경제 시대이든 지식기반사회이든 새로운 제도가 새로운 사람을 만들고, 새로운 사람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것이다. 하루빨리 ‘직무군제도’를 도입해 제2 한강의 기적을 앞당기자.

김태유 < 서울대 교수·경제학 tykim@sn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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