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걷고 싶었습니다] 복잡한 건 弱하고 단순한 건 强해, 그게 경영의 이치

입력 2014-05-28 21:34   수정 2014-05-29 04:03

윤석철 서울대 명예교수와 양재천에서 정구학의 '사색의 길 따라'

정주영 회장의 투자결론은 수학으로 찾은 결과와 같아
고객의 필요·아픔·정서를 읽어내는 감수성 키워야




별. 어떤 사람은 별을 보고 견우와 직녀를 떠올린다. 어떤 이는 만유인력을 발견했다. 인문학은 사람을 파고든다. 자연과학은 우주구성 물리(物理)를 캔다. 요즘은 인문과 자연의 벽을 허물고 세상을 보려고 한다.

1960년대 서울대에서 독어독문학과 물리학을 전공한 뒤 미국에서 전기공학, 경영학의 2개 박사학위를 딴 윤석철 서울대 명예교수(74). 학문을 통섭한 그는 어떤 지혜로 세상을 읽을까. 초여름 기온을 보인 지난 21일 오후 3시 서울 양재천에서 만나 2시간 동안 함께 걷고 차를 마셨다.

▷양재천에 수풀이 우거졌네요.

“이런 걸 보면 선진국이 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 저기 보세요.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가 ‘구름처럼 외로이 헤매다가 나는 보았네(I wandered lonely as a cloud)’로 시작하는 ‘수선화(The Daffodils)’란 시에 나오는 그 꽃이에요. 참 예쁘죠.”

▷문학 쪽에 관심이 많았나요.

“우리 때는 악기가 필요한 예능은 못 하고, 물감도 없었죠. 가장 하기 좋은 게 독서라서 백일장밖에 없었죠.”

▷왜 물리학과로 전공을 바꿨습니까.

“라인강의 기적을 이룬 독일을 배우려고 독어독문학과에 입학해 1년간 배워보니 나라에 큰 도움이 안 되겠더라고요. 고민하고 있는데 선배가 ‘야! 미국이 잘나가는 이유가 뭐야? 일본에 원자탄을 던져서잖아. 원자탄이 뭐야? 물리학에서 나왔잖아’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2학년 때 물리학으로 전공을 바꿔 졸업했죠. 문과에서 이과로 바꾼 학생은 처음이었어요.”

▷물리학 공부가 어렵지는 않았나요.

“물리학과에 와보니 딴 세상 같았어요. 독문과에서 공부하던 언어와 문학은 인간이 만들어낸 창조물이었죠. 그러나 물리학과에서 공부하는 자연은 인간이 아닌 신이나 조물주의 창조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국에서는 무엇을 공부했습니까.

“당시 한국 교수분들한테 상담했더니 ‘물리학을 공부해선 한국에서 살기 어렵다. 한국이 워낙 가난하니까 공학을 하라’고 말씀해주셔서 미국 유학갈 때 전기공학으로 전공을 바꿨죠.”

▷첫 박사학위를 전기공학으로 받았는데 경영학 박사는 어떻게 받았나요.

“전기공학 박사를 받고 지도교수로부터 박사후과정(포스트닥)을 밟는데 시간이 남더라고요. 그래서 강의를 더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당시 제가 다니던 펜실베이니아대(유펜)가 미국 내 경영학에서 1, 2위를 다투더라고요. 그래서 경영학을 공부했죠. 와튼스쿨(펜실베이니아 경영전문대학원)에 등록했는데 전기공학을 공부할 때 선택으로 들었던 과목들이 경영과학의 전공과목이었어요. 같은 대학이니까 학점을 인정해줘 박사학위까지 땄죠.”

▷양재천 길은 잠실에서 과천 입구까지 이어지는데요.

“아내와 거의 매일 걷는데 나이도 있어서 많이는 안 걷고 이 주변(양재동)에서 걸어요. 여기 아주 좋아요.(윤 교수는 양재천에서 가까운 양재동 빌라에서 20년째 살고 있다.)”

▷부인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여동생이라면서요.

“대학 다닐 때 한성실업이란 곳에서 장학금을 받았어요. 당시 김우중 회장이 대우를 세우기 전에 한성실업에서 부장으로 근무하면서 장학금을 담당했어요. 김 회장의 모친인 제 장모님께서 어느날 불러서 나갔는데 ‘내 딸 한번 만나보라’고 권유해 결혼하게 됐죠. 그땐 중매를 통해 서너 번 만나보고 결혼하던 시절이었죠.”

▷김 회장이 대우로 와서 도와달라고 안 했나요.

“사람이 부족하다며 몇 차례나 심각하게 요청했었죠. 제가 ‘장학금을 받아서 공부한 거 알지 않느냐? 공부 끝냈다고 기업에 들어가면 어떡하냐?’고 말했죠. 후학들을 가르쳐서 국가에 기여해야겠다는 논리가 합당하니까 안 간거죠.”

▷서울대에선 무슨 과목을 가르쳤습니까.

“당시에 서울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은 교수가 딱 두 명이었는데 1호인 나웅배 씨가 해태제과 전무로 옮기는 바람에 제가 유일했죠. 미국에서 당시 수학과 컴퓨터를 활용한 경영학이 시작됐어요. 서울대에서도 그걸 가르쳤죠. 의사결정을 할 때 수학과 컴퓨터를 사용해 최적의 해법을 구하는 거죠.”

▷수학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언어로 풀 수 없는 세상의 이치를 수학적 기호와 등식으로 풀어냈으니까 중요하죠.”

▷수학으로 세상만사를 풀 수 있습니까.

“세상은 수학적인 것과 비수학적인 게 절반씩이에요. 젊어서 공부할 땐 수학이 전부인 줄 알았어요. 나중에 보니까 수학적 분석으로 아무리 통계를 내도 최종 의사결정을 할 때는 철학의 문제에 부딪히더라고요. 도덕 양심과 같은 인간 가치관의 문제죠.”

▷경영자는 수학과 철학을 모두 공부하라는 얘기인가요.

“공부하면 좋겠죠.(웃음) 희한하게도 고 정주영 회장 같은 분의 투자 결론은 수학적인 분석과 똑같이 나옵니다.”

▷정주영 회장은 초등학교 4년만 다니고도 큰 업적을 이뤘는데요.

“전문가들이 이룩한 지식은 제도적 교육을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지혜의 세계는 그렇지 않죠. 그래서 어려워요. 이런 점에서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경영자 한 분을 꼽으라면 고등교육이나 선대의 유산상속 없이 자신의 노력으로 세계적 기업을 일군 고 정주영 회장일 것입니다.”

▷지식과 진리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선 ‘알아야 할 것들’이 많이 존재합니다. ‘알아야 할 것들’에 관해 인간이 현재 알고 있는 상태를 지식이라 부르고, 지식이 진실과 합쳐지면 진리가 되죠.”

▷인문학과 자연과학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나요.

“자연 속에는 인간이 배워야 할 풍부한 자원이 많아요. 먼저 탄생한 학문도 과학기술이죠. 구리에다 10% 정도의 주석을 섞었더니 강도가 250% 높아지는 걸 발견했죠. 이것은 인문사회학이 아닌 과학기술입니다. 이후 2500년이 지나서 서양의 아리스토텔레스나 동양의 공자 같은 명석한 분들을 통해 인문사회학이 나왔습니다. 과학기술의 역사가 인문사회보다 배가 되는 셈이죠. 그러나 인문사회학이 인간사회를 위해 기여한 공로는 결코 과학기술에 뒤지지 않아요.”

▷경영이란 무엇입니까.

“인간은 일을 해야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일을 잘하면 잘살 수 있고 잘못하면 그만큼 잘못살죠. 경영이란 일을 잘하기 위한 학문적 노력이죠.”

▷학문적으로 분석한 경영이 실제 경영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경영학은 인간 삶의 실제에 적용하기 위한 학문입니다. 학문적으로 분석한 경영학 이론이 실제 경영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그것은 잘못된 이론이에요.”

▷선생님이 개발한 생존부등식은 무엇입니까.

“생존부등식은 제품(서비스 포함)의 가치, 가격, 원가 사이에 유지돼야 할 관계를 간결하게 표현한 부등식(不等式)이죠. 즉, 가치(Value)>가격(Price)>원가(Cost)가 그것이죠.”

▷이걸 기업경영이 아닌 인생경영에 적용해보면.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해서 월 100만원을 받는다고 하면 ‘나는 100만원을 받으니까 100만원어치만 일하면 떳떳하겠지’라고 생각하면 곧 도태당합니다. 예컨대 300만원 이상의 가치(V)를 창출할 때 그 직원은 ‘300만원-100만원=200만원’의 경쟁력을 갖게 돼죠. 이 직원이 받는 가격(월급)>원가(생활비)의 문제는 근검절약으로 해결해야죠.”

▷경영환경이 복잡해지고 있는데요.

“그렇더라도 복잡한 것은 약하고, 단순한 것이 강합니다. 세상을 단순하게 사는 방법은 삶의 문제를 목적함수와 수단매체로 이원화하는 것이죠. 0과 1만을 쓰는 2진법을 사용해 인간은 컴퓨터와 디지털 문명을 이룩했죠. 복잡하게 생각하면 성공하지 못합니다. 학생들에게 ‘연애할 때도 복잡하게 생각하고, 복잡하게 말하는 사람하곤 때려치워버려라’고 강조했습니다.(웃음)”

▷기업이 미래시장을 개척하려면.

“목적함수는 소비자 만족에 두고, 수단매체는 소비자가 느끼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탐색하는 것이죠.”

▷수단매체로서 강조한 감수성은 뭔가요.

“고객의 필요 아픔 정서를 읽어낼 수 있는 능력입니다.”

▷감수성을 키우려면.

“고급 승용차의 검은 유리창, 고층 건물의 화려한 사무실 속에서만 머물면 감수성은 퇴보합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진실하게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을 자주 찾아가 어울릴 때 감수성은 커질 것입니다.”

요즘도 한국발전론을 연구하고 있다는 그는 평생 공부하는 학자다.

윤석철 교수는…

1940 년 충남 공주 출생. 대전고 졸. 서울대 독어독문학과에 입학해 물리학과를 수석졸업한 뒤 미국에서 전기공학,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 서울대 경영대 교수직을 정년퇴임하고 한양대 석좌교수와 서울대 명예교수로 있다. 10년 주기로 《삶의 정도》(2011년) 등 책을 냈다.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융합적 틀로 경영 통찰력을 이끌어내는 학자다.

편집국 부국장 c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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