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장 100개 창고에 안팔린 수입쌀 50만t

입력 2014-06-18 22:05   수정 2014-06-19 10:24

새 경제팀, 경제적폐부터 없애라
(4) 통상문제 확실히 매듭지어라

쌀 관세화 미룬 대가 '톡톡'
수입쌀 보관료만 年 200억…1100원에 사서 300원에 '땡처리'

시장개방 유예 조건으로 매년 2만t씩 수입량 늘려
쌀 비축기지 턱없이 부족…민간 냉장창고까지 빌려
"공급 넘쳐 농민들도 손해"



[ 고은이 기자 ]
지난 16일 경기 평택의 한라마이스터 신선물류센터 창고. 거대한 지하 냉장창고 문을 열자 천장까지 빽빽하게 쌓여있는 쌀 부대가 눈에 들어왔다. 어림잡아 수십만부대는 돼 보이는 엄청난 양의 쌀이 축구장 2개 넓이(13000㎡) 창고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이 창고는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수입한 외국쌀 1만여t이 보관돼 있는 곳. 부대 겉면에는 ‘중국산·2013년 11월 입고’라는 표시가 선명했다.

정부가 미국 중국 태국 등에서 수입한 수십만t의 쌀이 이런 대규모 창고에 수년째 쌓여있다. 20년 전 한국이 쌀 시장 개방 시기를 미루는 대가로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으로부터 의무 수입하는 물량(MMA)이다.

농림축산식품부와 aT 등에 따르면 4월 말 현재 전국 정부양곡창고에 보관 중인 MMA 재고는 50만t에 달한다. 축구장 100개 넓이의 창고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양이다. 2008년 9만3000t에서 2010년 18만2000t, 2012년 30만t 등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윤석원 aT 마이스터비축기지 관리소장은 “수입쌀 재고가 워낙 많아 전국 10여개 aT 비축기지에 나눠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평택 비축기지에 보관 중인 수입쌀은 대부분 지난해 중국에서 수입한 것이다. 올해 의무 수입 물량(40만8700t)은 아직 들여오지도 않았는데 평택 비축기지엔 남는 공간이 거의 없다. 국민 식생활의 질이 좋아지고 있는데 의무 수입 쌀은 품질이 나빠 잘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aT 국영무역처 품질안전팀 관계자는 “1주일에 세 번 경매를 하고 있지만 대규모 식당에 쌀을 공급하는 도매업체조차 구매를 꺼리고 있다”고 전했다.

비싼 비용을 지급하며 냉장보관을 하는 이유도 언제 팔릴지 모르는 수입쌀의 보관 기간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이같이 넘쳐나고 있는 수입쌀 재고는 국내 쌀 농가에도 큰 부담이다. 1인당 쌀 소비량이 내리막을 걷고 있는 상황에서 쌀 시장 개방 유예로 의무수입물량(MMA)이 계속 늘어나면서 좀처럼 쌀 가격이 오르지 않고 있는 것. 올해 국내 쌀 자급률은 92%에 달해 MMA(9%)를 합치면 이미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양상은 20년 전 쌀 시장 개방을 유예하면서 일찌감치 예고됐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타결로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 대부분의 농산물 시장이 전면 개방됐지만 한국은 국내 쌀 시장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개방을 미뤘다. WTO는 그 대가로 회원국들이 생산하는 일정 물량의 쌀을 매년 의무적으로 저관세(5%)로 사들이도록 했다.

현재 평택을 비롯한 전국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비축기지에 쌓여 있는 수입쌀 재고가 바로 이 MMA다. 이 물량은 개방 첫해인 1995년엔 국내 쌀 생산량의 1%에 불과했지만 2004년엔 4%, 올해 9%까지 늘었다. 쌀 시장 개방을 계속 미룰 경우 매년 2만씩 MMA를 늘리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입한 쌀은 아무리 재고가 많아도 재수출이 금지되고 무조건 한국에서 소비해야 한다.

하지만 시장에서 제대로 소화되지 않아 매년 수십만t씩 재고가 쌓이다보니 당국은 수입쌀의 보관 장소를 구하는 데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aT가 보유한 전국 비축기지에 넣고도 공간이 모자라 한라마이스터 등 민간업체의 냉장창고까지 빌리고 있다. 지난해 MMA 보관료만 200억원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2008년 90억원에서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이 같은 부담을 견디지 못한 정부는 들여온 값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 금액에 수입쌀을 ‘땡처리’하고 있다. 가공용 수입쌀 중 상당량을 주정용(술 제조용)으로 내다팔고 있는 것. ㎏당 900~1100원대에 들여온 수입쌀을 주정용으로 팔면 ㎏당 300원가량밖에 받지 못한다. 박수진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정책과장은 “보관을 오래 하면 할수록 관리비가 들어가기 때문에 손해를 보더라도 팔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주정용으로 떨이 처리하는 수입쌀 규모만 매년 5만~20만에 달한다. MMA의 30~60%에 달하는 양이다.

문제는 이 같은 상황에도 매년 비싼 값에 쌀을 들여올 수밖에 없다는 것. 2004년 한국이 쌀 시장 개방을 10년 더 미루면서 WTO 회원국과 유예협상을 할 때 나라별 MMA 쿼터를 받았다. 매년 중국으로부터 11만6000, 미국 5만, 태국 2만9000, 호주에서 9000 등을 수입해야 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나라별 쿼터 때문에 수입쌀 가격 변동 등 상황에 따라 수입물량을 조정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고 토로했다.

만약 정부가 내년으로 다가온 쌀 시장 개방을 또다시 미룰 경우 MMA는 지금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개방을 유예하려면 다른 회원국의 동의가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MMA 증대와 다른 농축산물 추가 개방 등의 요구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필리핀도 2011년 쌀 시장 개방 유예조치를 연장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뒤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다른 회원국들의 무리한 추가 개방 요구 등으로 아직도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현재 회원국들이 필리핀에 요구하고 있는 MMA 증대 조건을 한국에 적용해보면 쌀 시장 개방 유예 시 한국의 MMA는 2025년 94만에 이른다. 지난해 기준 전체 국내 생산량의 22.2% 수준이다.

게다가 개방 직전의 MMA는 앞으로도 영원히 들여와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한국이 내년부터 쌀 관세화를 하더라도 올해 기준 40만8700은 매년 수입해야 한다는 얘기다. 일본이 1998년 일찌감치 관세화를 결정한 이유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개방을 미룰수록 미래의 MMA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만큼 국내 쌀 농가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적절한 수준에서 관세화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평택=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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