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설탕세

입력 2014-06-29 20:38   수정 2014-06-30 04:25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설탕은 오랫동안 약으로 쓰였다. 11세기 아라비아에서는 만병통치약으로 통했다. 12세기 비잔틴제국 황실 의사는 설탕에 절인 장미꽃잎으로 해열제를 처방했다. ‘흑사병’이라고 불린 페스트가 유럽을 휩쓸 때에도 설탕은 큰 효과를 발휘했다. 17세기 초까지 설탕과 차는 약국에서 취급될 만큼 귀중한 약품이었다.

병에 걸린 것도 아니면서 설탕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특권층뿐이었다. 그 ‘대단한’ 신분이 ‘평범한’ 신분으로 바뀐 것은 산업혁명 이후였다. 그 무렵 영국 도시노동자에게 가장 적합한 아침 식사는 뜨거운 홍차와 설탕, 빵과 포리지(죽)였다. 특히 설탕을 넣은 홍차는 카페인이 듬뿍 든 즉효성 칼로리원이었다. 이 에너지는 일하는 도중의 ‘티 브레이크’에서도 발휘됐다.

설탕은 후추나 향료처럼 고급스러운 조미료이기도 했다. ‘하얀 금’으로 불린 백설탕은 정교한 세공품으로 만들어져 파티를 빛냈다. 결혼피로연의 웨딩케이크 기원도 여기서 비롯됐다. 순백의 설탕과 화려한 초콜릿, 달콤한 케이크는 예나 지금이나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설탕은 이제 비만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다. 국제기구는 비만과 당뇨 때문에 쓰는 의료비용이 한 해 5000억달러나 된다고 경고한다.

설탕에 세금을 매기는 나라도 늘고 있다. 남미의 ‘뚱보 나라’로 꼽히는 멕시코는 지난해 탄산음료에 설탕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연간 9억달러를 징수해 재정적자 해소에 쓴다고 한다. ‘비만 국가’ 1위인 미국도 올 들어 가공식품 의무 표기에 설탕 첨가량을 포함시켰다.

영국은 한 발 더 나가고 있다. 식품회사에 설탕세를 부과하면서 대형마트의 계산대 곁에 설탕 함유 식품을 놓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영국음료연합회가 “모든 식단에서 탄산음료 비중은 3%에 불과한 데다 기업들이 설탕 함량을 낮추고 저칼로리 음료 광고 비중을 49%까지 끌어올렸는데도 규제만 앞세운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설탕세가 효과 없을 것이라는 견해도 만만찮다. 몇 년 전 덴마크가 고열량 식품에 비만세를 부과했다가 1년 만에 폐지했다.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컸기 때문이다. 비만 억제와 의료재정 안정화를 위해 도입했으나 사람들이 고지방 식품 소비를 줄이는 게 아니라 값이 싼 이웃나라에서 사오기 시작한 것이다. 관련 산업 경쟁력이 약화되고 고용이 감소하자 당국은 두 손을 들고 설탕세와 초콜릿세 도입까지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정책이라도 실물경제 원리에 맞지 않으면 엉뚱한 결과를 낳는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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